[include(틀:일제강점기 불교 31본산)] [[파일:external/www.bulgyofocus.net/59748_31166_3810.jpg]] [[일제강점기]] 때의 석왕사 전경 [목차] == 개요 == 재북한문화재이자 사찰. 광복 당시 행정구역으로는 [[함경남도(이북5도위원회)|함경남도]] [[안변군]] 석왕사면 사기리(沙器里), 현 북한 행정구역으로는 [[강원도(북한)|강원도]] [[고산군]] 설봉리에 있다. 참고로 이 절은 설봉산 기슭에 있다. 석왕사는 [[조선]] [[태조(조선)|태조 이성계]]에게 꿈을 해몽해준데 대한 보답으로 창건한 사찰로, 조선왕조의 보호를 받았다. 행정구역 명칭이 '석왕사면'으로 지정되었을 정도이며(절 이름을 읍면 이름으로 딴 사례는 유일무이), 31본산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치하에 들면서 [[6.25 전쟁]] 때 큰 파괴를 당했다. 한편 1952년 개편으로 석왕사면이 없어지고 석왕사는 설봉리에 속하게 되었다. 석왕사로 가는 주요 교통로였던 [[경원선]] 석왕사역은 다른 리에 속하게 되었는데, 1961년 석왕사역 주변은 평화리와 릉복리를 합쳐 석왕사리가 된다. 그러나 석왕사리라는 지명마저도 1981년, [[김일성]]과 [[김정숙(북한)|김정숙]], [[김정일]] 일가가 1947년에 이곳을 방문하여 인민들의 앞길을 환하게 ~~막아~~밝혀주었다는 이유로 광명리가 되었고, 석왕사역 또한 [[광명역(강원선)|광명역]]으로 개칭되었다. == 현황 == 한때 건물이 53동에 달하는 큰 사찰이었으나, 6.25전쟁의 여파로 지금은 불이문·조계문·호지문(護持門)·설성동루(雪城東樓) 등 일부만 남아 있다. 사실상 폐사지나 다름없어졌는데, 절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 이성계가 오백나한을 안치했던 응진전조차도 사라져 터만 남았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용비루와 인지루도 1987년 홍수로 유실되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 방치된 상태로 남아있었으나, 최근 북한에서 새로 복원한 석왕사의 모습이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1213500088&wlog_tag3=naver#csidx3b000624fa2dbaba511f71c41cce99a|공개되었다.]] 물론 고증을 얼마나 잘 따랐을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파일:external/www.bulgyofocus.net/59748_31167_3848.jpg]] 석왕사 설성동루(雪城東樓). [[분류:북한의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