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8000><bgcolor=#008000> '''{{{#white 서필 둘러보기 틀}}}''' || ||<bgcolor=#fff> {{{#!wiki style="margin: 0px -1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고려의 개국공신)] [include(틀:고려의 배향공신)] ||<-3><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191970><bgcolor=#191970> '''{{{#white {{{+1 이천 서씨 3대 배향공신}}}}}}''' || ||<bgcolor=#191970> '''{{{#white 정민공 서필}}}''' ||<bgcolor=white>'''장위공 [[서희]]''' ||<bgcolor=white>'''원숙공 [[서눌]]''' || }}}}}} || ||<-2><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8000><bgcolor=#008000> '''{{{#white 고려국 내사문하성 내사령[br]고려국 태사[br]{{{+1 서필}}}}}}''' || ||<bgcolor=#008000> '''{{{#white 시호}}}''' ||<bgcolor=white>'''개국정민공(開國貞敏公)''' || ||<bgcolor=#008000> '''{{{#white 삼사}}}''' ||<bgcolor=white>'''태사(太師)''' || ||<bgcolor=#008000> '''{{{#white 본관}}}''' ||<bgcolor=white>[[이천 서씨]] || ||<bgcolor=#008000> '''{{{#white 이름}}}''' ||<bgcolor=white>필(弼) || ||<bgcolor=#008000> '''{{{#white 아들}}}''' ||<bgcolor=white>[[서희]], 서영, 서렴 || ||<bgcolor=#008000> '''{{{#white 생몰연도}}}''' ||<bgcolor=white>900 ~ 965 ||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려]] 왕조 [[광종(고려)|광종 대성대왕]] 대의 문신. [[경기도]] [[이천시]] 출신으로 [[이천 서씨]] 재상가를 시작한 인물. == 역임 관작 == ||<-3><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8000><bgcolor=#008000> '''{{{#white 서필의 생전 관작}}}''' || ||<bgcolor=#008000> '''{{{#white 향직 품계}}}''' ||<bgcolor=white>대광(大匡) ||<bgcolor=white>2품 1등위 품계. || ||<bgcolor=#008000> '''{{{#white 직위}}}''' ||<bgcolor=white>내의령(內議令) ||<bgcolor=white>[[중서문하성|내의성]]의 명목상 최고위직. || ||<-3><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8000><bgcolor=#008000> '''{{{#white 서필의 사후 관작}}}''' || ||<bgcolor=#008000> '''{{{#white 향직 품계}}}''' ||<bgcolor=white>삼중대광(三重大匡) ||<bgcolor=white>1품 1등위 최고위 품계. || ||<bgcolor=#008000> '''{{{#white 직위}}}''' ||<bgcolor=white>[[태사]](太師) - 내사령(內史令) ||<bgcolor=white>태사는 [[삼사]] 직 중 하나, 내사령은 내의성이 내사성으로 바뀌면서 내의령의 바뀐 직함이다. || ||<bgcolor=#008000> '''{{{#white 시호}}}''' ||<bgcolor=white>정민공(貞敏公) ||<bgcolor=white>광종 대성왕의 배향공신이다. || == 상세 == 광종대왕은 그동안 왕을 칭한 선왕들과는 다르게[* 흔히 고려를 [[외왕내제]]라고 하지만 실은 내부적으로 황제를 칭한 적도 광종이 잠깐 칭한게 유일하다. 외왕내제라 하는 것은 황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모든 형식을 황제식으로 해서 사실상 황제처럼 행동했기에 황제로 치는 것일 뿐이다.] 대내외적으로 스스로를 [[황제]]라 불렀다. 광종은 [[권력]]을 쥐고 [[조정]]을 압도하니 '철혈 군주'였다. [[고려사]] 광종 세가에 명시되었을 정도로 신하들은 광종을 두려워했는데 유일하게 서필만이 철혈 군주에게 직언을 올렸다. 고려사 서필 열전에 따르면 서필은 하급 [[관리]] 출신이었다고 한다. 유력 [[호족]] 출신은 아니었을 확률이 높은데 점차 [[승진]]을 거듭해 2품 1등위 대광 품계를 가지고 장관급인 내의령 직위에 봉해졌다. 서필이 남긴 일화는 배짱이 매우 두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만월대|본궐]] 소유의 말이 죽었다. 광종은 말 관리를 제대로 못한 담당자를 처형하려 했는데 서필은 [[공자]]의 예를 들며[* [[논어]] 향당편에서, 공자가 출타한 사이에 마굿간에 불이 났는데 공자가 돌아와 이를 듣고 “혹시 사람이 다쳤느냐”라고만 묻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고 했다.] 광종에게 반대 의사를 드러냈고 결국 명령을 거두었다. * 광종이 서필 등 중신들에게 귀한 [[그릇]]을 하사했다. 서필만이 거부했는데 이유는 비싼 그릇은 오로지 임금만이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음에 든 광종은 "경이 [[보물]]을 귀히 여기지 않으니 나는 경의 말을 귀히 여기겠소."라 대꾸했다. * 광종은 호족 세력을 누르기 위해 [[귀화]]인들을 중용하였다. 호족을 길들이기 위해 호족 출신 신하들의 [[집]]을 뺏어 귀화인 출신 신하에게 주었는데 서필이 광종에게 자신의 집을 통째로 바치겠다고 아뢰었다. 광종이 이유를 묻자 서필이 이렇게 말했다. "귀화인들이 오니 재상의 집은 모조리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 집은 누추하나 가져가시고 저는 은퇴할 때 봉급을 모아 작은 집을 사서 늙겠습니다." 광종은 이를 듣고 짜증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호족 누르기가 과해졌다고 여겼고 집 뺏기를 멈추었다. * 서필이 광종에게 "공이 있는 자에게만 상을 주셔야 하고 공이 없는 자에게는 상을 뺏어야 합니다."라 아뢰었다. 광종이 듣고서는 아무 대꾸가 없었는데 다음날 측근 몇 명을 서필에게 보내 '공이 있는 자'와 '공이 없는 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서필은 "공이 있는 자란 호족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 중앙 정부의 통치가 닿게 한 신하 식회(式會)를 의미하오. 공이 없는 자는 당신들이니 이 말 그대로 아뢰시오"라 말했다. 당시 제 일을 하는 신하들을 광종의 측근들이 [[모함]]하고 [[시기]]한 것을 면전에서 대고 직언을 올린 것이다. 이렇게 사사건건 광종에게 [[클레임]]을 걸며 직언을 올렸지만 광종은 서필의 목숨을 거두기는 커녕 오히려 그를 중용했고[* 사실 광종의 숙청 대상은 [[왕권]]에 반감을 드러내는 유력 호족들이었지, 자기 할 일을 잘하는 관료들은 아니었으며 호족들의 숙청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재위 말기에는 지속적으로 과거를 실시하여 본격적으로 신진 관료들을 등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서필도 직언을 거듭 올리며 광종의 개혁에 일조했다. 광종 재위 16년차에 세상을 떠나니 [[시호]]를 받아 사후 광종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아들인 [[서희]]와 손자 [[서눌]]까지 재상이 되는 영예를 누리는 것은 물론 성실히 고려를 이끌어 나갔다. == 기타 == 서필의 먼 [[후손]]인 서공(徐恭)[* 서필 → 서희 → 서눌 → 서유걸 → 서정 → 서균 → 서공 순이다. 고려사에 본인 열전이 있다.]의 묘지명이 현존하는데 서공 묘지명에서는 서필이 '태조성조공신(太祖聖朝功臣)'이라 밝히고 있다. 태조성조공신은 [[신흥사]] 공신당에 [[초상화]]가 그려진 삼한공신들을 의미하는데 이천 서씨 가문이 후삼국 전쟁 때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예지 태묘조에 기록된 배향공신 중 개국공신에도 임명된 신하는 시호에 개국(開國) 미칭이 붙어있다. 서필은 시호에 개국이 붙어 있어 그가 고려 개국에 일조했음을 알 수 있다. == 대중 매체에서 == [[제국의 아침]]에서는 [[태조 왕건]]에서 [[도선]] 대사 역으로 유명한 [[이대로]]가 열연했다. 실제 [[역사]]에서의 행적 그대로 깐깐하고 꼬장꼬장한 노신으로 묘사되며 그릇 하사를 거부한 일화는 극중에서 재현되어 나왔다. 드라마 초장부터 [[왕규]] 일파가 실행하는 정책들에 대해 논리적인 근거로 맞서며 반대하는가 하면 [[왕식렴]]과 [[정종(고려 3대)|정종]]이 서경 천도를 강압적으로 밀어붙이자 이에 대해서도 극렬히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회에서 끝까지 서경 천도에 반대하자 당시 집정이었던 왕식렴이 직접 그를 집으로 초대해 차를 대접했다. 그러나 서필은 얼른 차만 마시고는 앞서 자신과 같이 왕식렴과 독대한 후 향리로 돌아간 염상과는 달리 본인은 머리를 내 놓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반대할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서필의 강직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 후에 광종 역시 서필의 직언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도 많았지만 짜증을 내거나 [[환관]]들에게 명하여 쫓아내기도 했으며 심지어 처형하려고도 했지만 측근들을 비롯한 대신들의 만류로 참형 직전에 명을 거둔 적도 있다. 마지막화인 94화에서 사망하는 것으로 극에서 퇴장하는데 [[갈등]]을 빚은 적도 많았으나 내심 직언을 서슴치 않던 서필을 아꼈던 광종은 슬퍼하며 친히 [[장례식]]장으로 행차했으며, 장례비용까지 전액 지원해주었다. [[분류:고려의 개국공신]][[분류:고려의 배향공신]][[분류:이천 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