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right> [[파일:서정진회장.jpg|width=360]] || || '''이름''' ||'''서정진'''(徐廷珍) || || '''출생''' ||[[1957년]] [[10월 23일]] ([age(1957-10-23)]세), [[충청북도]] [[청주시]] || ||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8]] [[대한민국]] || || '''키''' ||182cm || || '''형제''' ||동생 서정수[* [[셀트리온제약]] 대표이사(사장)] || || '''배우자''' ||박경옥[* 셀트리온복지재단 이사장] || || '''자녀''' ||장남 서진석[* [[셀트리온]] 수석부사장 ([[서울대학교]] 동물자원학과 학사,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박사)], 차남 서준석[* [[셀트리온]] 이사] || || '''거주지''' ||[[인천광역시]] [[연수구]] || || '''학력''' ||[[제물포고등학교]][br] [[건국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학사[br] [[건국대학교]] [[경영대학원]] [[MBA|경영학]] 석사[br] [[충북대학교]] 명예 [[약학]] 박사 || || '''현직''' ||[[셀트리온]] 회장[br] [[셀트리온제약]] 대표이사회장 || || '''수상''' ||2012년 매경이코노미 선정 올해의 CEO [br] 2010년 존경받는 기업인 최우수상 [br] 2012년 대통령 표창 [br] 2009년 제46회 무역의날 금탑산업훈장 [br] 2006년 국무총리 표창 || || '''재산''' ||'''123억 달러 (한화 약 14조 7680억 원)'''[* 2020. 06. 26. / 포브스 기준.][* 세계 부자 순위 135위. 또한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며 [[한국 부자 순위|한국 '''1위''' 부자]]가 되었다.] || || '''종교''' ||[[개신교]]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기업인. [[셀트리온]]의 회장 겸 [[셀트리온제약]] 회장이다. == 상세 == [[1957년]] 10월23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충북지방산림청 산림공무원 출신이었으며 일가친척 거의 대부분이 현 [[세종시]] 일대에 거주해왔다. [[건국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전기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생산성본부로 자리를 옮겨 [[대우자동차]]를 컨설팅하다 [[김우중]] 전 회장의 눈에 들어 대우자동차 기획재무 고문으로 일했다. 이 때가 불과 34세의 젊은 나이로 이 나이대 청년으로선 상상조차 힘든 파격적 대우로 스카웃되었다. 김우중 회장이 그만큼 그를 눈여겨 보고 신뢰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때 [[대우그룹]]이 다들 알다시피 부도났다. [[김우중]] 전 회장은 [[1999년]] [[중국]] [[산동성]] 옌타이 공장 착공식 참가를 마지막으로 잠적했고[* 이때부터 김우중 전 회장은 기나긴 도피행각을 시작했으며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일대와 [[프랑스]], [[폴란드]] 등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그 때 노조에서 '''김우중 체포조'''를 구성해 그를 찾아다니기도 했고 실제로도 [[인터폴]]에 적색수배자 신세로 전락했다. 결국 나중에 기나긴 도피를 마치고 자진귀국했다.] 잘 나가던 [[대우자동차]]는 워크아웃을 신청했으며 결국 직장을 잃었다. 이 때인 [[1999년]]에서 [[2002년]] 사이가 서정진 회장이 가장 힘들 때였다. 이 때쯤 똑같은 신세가 된 동료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하루아침에 잘 나가는 대기업 임원에서 백수로 전락했고 결국 서울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얻어 차기 사업에 대한 담론을 벌였다. [[IT]] 부터 해서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오는 와중에[* 항간에서는 [[중국집]] 등 음식점을 차리라는 권유도 있었다고 한다.] 이 중 그때까지 미개척지 오브 미개척지인 바이오산업이 유망하다는 판단에 따라 [[대우자동차]] 출신 동료 10여 명과 함께 넥솔을 창업했다. 넥솔은 셀트리온의 전신이다. 이후 [[2002년]] 미국 벡스젠사와 제휴를 맺으며 사업을 본 궤도에 올리기 시작했으며 [[2004년]] 쯤이면 모든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마침내 [[인천광역시]] [[송도국제도시]]에 셀트리온 1공장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사업은 점차 번창, [[2007년]] 쯤 되면 완전히 모양새를 갖춤은 물론 인맥도 꽤 많이 얻게 되며 [[2009년]] 이후에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벤쳐기업 선두주자로 거듭난다. 결과적으로 [[1999년]]에서 [[2002년]]까지 계속되던 힘든 시간을 이겨낸 덕에 20년 남짓한 시간에 셀트리온을 바이오시밀러[* 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키웠다. [[2020년]] [[12월 31일]], 한국나이로 65세가 될 때 은퇴하겠다는 공약을 지켜, [[셀트리온]] 회장직에서 사임하고 퇴사하기로 했다. 셀트리온 직원들과 출입기자, 주주들한테 [[이메일]]로 보낸 고별사에서 "언제나 은퇴를 생각해왔다"며, "원격의료 [[스타트업]]에서 새출발하겠다.", "셀트리온은 후배들이 알아서 잘 경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 학력 == [[청주시]] 소재 [[청주중학교]]를 입학하였다가 가족들이 모두 서울로 상경하면서 전학을 갔다. 당시 [[산림청]] 소속 충북지방삼림청 공무원이었던 부친이 퇴직한 후 서울 [[은평구]] [[구파발역]] 인근의 기자촌에 정착하며 상경하여 졸지에 아는 사람도 없던 서울로 가게 된다. 이후 [[인천광역시]] 소재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박남춘]] 현 인천광역시장과 제고 21기 동기이자 친구사이다. 또한 [[유정복]] 전 인천광역시장의 1년 후배다. [[건국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정청래]] 국회의원과 학과 선후배 관계이다. [[건국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친 뒤, [[충북대학교]]에서 명예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경력 == 1983년 [[삼성전기]] 입사 1985년 [[한국생산성본부]]로 자리를 옮겨 기업 컨설팅 관련 업무를 맡았다. 1991년 34살의 나이에 [[대우자동차]] 기획재무 고문으로 발탁돼 임원에 올랐다. 1992년 한국품질경영연구원 원장을 지냈다. 1998년 IMF 구제금융사태가 닥치면서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 1999년 넥솔을 창업했다. 넥솔은 2009년 이름이 셀트리온홀딩스로 변경된다. 2000년 셀트리온지에스씨를 설립했고 이 회사를 통해 한스킨을 인수했다. 이후 한스킨을 '셀트리온스킨큐어'로 이름을 바꾸고 셀트리온지에스씨와 합병했다. 2002년 셀트리온을 설립해 회장에 올랐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자회사 셀트리온제약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2009년 [[셀트리온헬스케어]]를 설립했다. 2012년 드림E&M을 설립한 뒤 2017년에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을 변경했다. 2015년 셀트리온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 이야깃거리 == [[자수성가]]형 자산가다. 집이 아주아주 가난했다. 애초 [[충청북도]] 산림공무원 집안이 [[1960년대]] 당시에 뻔했다. 서울 상경 후 대학에 진학해서는 밤에는 택시운전을 하고 낮에는 대학교 학과공부를 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서울 상경 후 현재 [[구파발역]] 인근인 [[은평구]] 진관내동 기자촌에 식구들이 정착한 후 아버지는 작은 연탄가게를 했다고 한다. 초창기 사업 때 신뢰도가 0에 가까운 만큼 돈 구하기도 쉽지가 않았다. 하필 시국이 시국(...)인 IMF 이후인지라 자금조달 자체가 어려웠다. 이 때 결국 명동 [[사채]] 시장에서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돈을 빌린적이 있고 삶이 힘들어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게 다 서회장의 가장 힘든 시기인 [[1999년]]에서 [[2002년]] 3년 사이의 일들이었다. 그리고 [[미국]]이고 [[독일]], [[스위스]]고 [[일본]]이고 [[홍콩]]이고 어디든 날아가서 아무 사람이나 만나고 싶다며 들이대고 만나고 다니고 하기도 했다. 당연히 99%는 퇴짜맞았다. 미국에서는 맨날 같은 컵에 싸구려 커피를 리필하자 점원이 '''살 것 같지도 않아서''' 새 컵으로 갈아줬다고도 한다. 워낙 거지꼴로 다니던 동양인 남자라 그들 눈엔 희한하게 보였을 것이다.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로 연예계에도 진출을 시도했으나 이쪽 안목은 영 아닌거 같다. [[자전차왕 엄복동]] 제작에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의 130억 투자를 결정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영화는 예상대로 대실패했다. 아무래도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원래 전문분야도 아니고 사람들 하는 말만 듣고 하는데다 안목이 영 없어보인다.하지만 서정진은 이 영화는 돈벌려고 만든게 아니라고 나중에 밥이나 한끼 먹자고 했다고 한다.사실 재벌들이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곳에 문어발 뻗었다 장렬하게 대실패하는 경우는 흔하니 이상한 건 아니다. 당장 그 [[삼성]]도 삼성자동차로 자동차에 손대었으나 결국 [[르노]]에 팔아넘겨 르노삼성이 되었으며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 스테이크라는 [[레스토랑]] 체인을 냈으나 결국 말아먹었다. [[대한민국]] [[재벌]] 아니랄까봐 기업의 요직에 자기 남동생, 아내, 아들들을 앉히는 등 족벌 경영을 척척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138083&memberNo=1916966|진행중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셀트리온 주가가 급상승하면서,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가 선정한 한국 갑부 순위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0042896191|#]] 거기에 항체치료제가 가시화되면서 기대를 모으고도 있다. 이후 1위였던 이건희 회장이 사망하면서 1위에 등극했다. == 주가조작 == 자사주로 받은 대출의 반대매매를 막기 위해 주가조작을 한 혐의로 벌금 3억원을 받은 바 있다.[[https://news.joins.com/article/15236089|#]]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1957년 출생]][[분류:청주시 출신 인물]][[분류:제물포고등학교 출신]][[분류:건국대학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범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