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농구협회의 역대 회장)] [[파일:external/img.etnews.com/article_08174606795233.jpg|width=200]] 徐成煥 1924년 7월 14일 ~ 2003년 1월 9일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기업인. 대한민국 화장품업계 양대 업체인[* 2010년대 초까지는 아모레퍼시픽이 부동의 1위였지만 [[한한령|사드 한국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 영향으로 실적이 나빠져 [[LG생활건강]]에 1위를 내줬다.] [[아모레퍼시픽|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을 창업했다. 현재 [[아모레퍼시픽]] 회장을 맡고 있는 [[서경배]]가 서성환의 차남이다. [[1924년]] [[7월 14일]],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 신답리[* [[이천 서씨]] 집성촌이다.][[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030109/7900237/1|#]]에서 [[아버지]] 서대근(徐大根)과 [[어머니]] 윤독정(尹獨亭)의 3남 3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이천 서씨|이천]](利川)이며 본적은 [[평안남도]]이다. 호는 장원(粧源). == 일생 == 어머니 윤독정씨가 동백기름 등을 짜서 내다팔면서 시작한 [[화장품]] 가내 수공업을 가업으로 이어받아[* 어머니가 사업을 하던 곳이 [[개성특급시|개성]]이었는데 어머니 곁에서 동백기름의 재료를 조달하는 법이나 브랜드 경영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특히나 어머니의 경영 기법은 지금도 유명한 '''개성상인''' 특유의 경영 방식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아모레퍼시픽]]을 개성상인의 핏줄이 흐르는 기업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으로 키웠다. 개성 중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9년부터 어머니의 가업을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사업의 길을 걸었다.그리고 [[광복]] 직후인 1945년 국내 첫 화장품 제조회사인 [[아모레 퍼시픽|태평양화학공업사]]를 세워 화장품 사업을 키웠다. [[국학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뒤,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한국]] 최초의 사외보이자 [[여성]] 교양지 `화장계'를 발간하고 1960년대 [[주부]] 인력을 `아모레' 방문판매사원으로 투입했으며, 1979년에 태평양박물관을 개관하는 등 [[불모지]]였던 국내 화장문화를 선도해왔다. [[차]]에도 관심이 많아서 [[제주도]]에서 차를 재배하며[* [[서귀포시]]에 있는 오설록 티 뮤지엄 일대의 차밭이 [[아모레퍼시픽]] 소유 부지다.] 차사업에도 공을 들였는데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녹차 중에서도 유명한 '설록차'다. [[태평양화학]] 회장과 태평양그룹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1987년 말에는 프로야구에도 뛰어들어 [[인천광역시|인천]]·[[경기도|경기]]·[[강원도|강원]]·[[이북5도]] 연고의 [[청보 핀토스]] 야구단을 인수해[* 사실 서성환 회장은 1984년에도 [[이북5도]] 연고로 태평양 야구단을 만들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 본인의 고향인 이북지역에 대해 애착이 많았다고 한다.] [[태평양 돌핀스]]를 창단하고 초대 구단주가 된다. 변금주와 [[결혼]]해 총 2남 4녀를 두었다. 화장품 계열사인 [[아모레퍼시픽|태평양화학]]은 [[차남]]인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에게 물려주고 [[장남]]인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에게 금융, 건설, 금속 등의 계열사를 넘겨줬다. 차남 [[서경배]] 회장이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차녀 신윤경과 결혼하여 신 회장과 사돈을 맺었다. [[2003년]] [[1월 9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0세(만 78세). == 둘러보기 == [include(틀:대한민국농구협회의 역대 회장)] [[분류:평산군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1924년 출생]][[분류:2003년 사망]][[분류:실향민]][[분류:이천 서씨]][[분류:고려대학교 출신/전신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