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동음이의어/ㅅ]] [[분류:한나라의 반란자]] [[분류:대한민국의 승려]] [목차] = [[후한]] 말의 인물 서봉(徐奉) = (? ~ 184?) 환관으로 184년의 태평도의 대방인 [[마원의]]가 봉기를 위해 형주, 양주의 수만 명을 모아 기일을 정해 업에서 거병하는 한편, 낙양에 출입하면서 [[봉서]]와 함께 [[황건적]]이 3월 5일에 봉기하면 내응하기로 약속했는데, [[장각]]이 거병하기 전에 [[당주#s-2|당주]]가 고발하면서 일이 발각되었다. 이로 인해 황실에서는 마원의를 거열형에 처하고 당주의 고발문을 삼공, 사예교위 등이 보게 하면서 궁성의 경비와 장각에 가담한 자들을 찾아내 색출하면서 천 여 명을 주살시켰는데, 사망이 명시되지 않아 명확하지 않지만 이 때 죽은 것으로 보인다. == 창작물에서 == 김경한 삼국지에서는 봉서 밑에서 일하는 환관으로 마원의가 낙양을 조사하러 갔다가 돌아올 때 보고하는데, 태평도의 신자로 마원의에게 몇 번 다리를 놓아 봉서를 만나게 해서 태평도가 봉서와 내통할 수 있게 했다. 이로 인해 봉서를 만난 마원의의 말에 따르면 봉서가 태평도의 일을 황제께 좋게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또한 궁중 정치에도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마원의가 봉서에게 돈을 빌려줬다고 하며, 이미 들어간 돈이 수천만전이 되었다고 한다. = [[독립운동가]] [[양세봉]]의 [[이명#s-3|이명]] 서봉(瑞鳳) = 양세봉의 다른 이명인 윤봉(允奉)과 함께 또다른 이명이다. 양세봉의 행적에 대해선 [[양세봉]] 문서 참조 = [[승려]] 서봉(瑞峰) = 속명은 박승룡(朴承龍). 법명은 성후(晟厚). 태고종 승려이다. [[1916년]]에 태어났고 [[1996]]년 숨졌다. [[1928년]] [[경기도]] [[용주사]]에서 윤호순을 은사로 삼아 출가한 후, [[용주사]] [[강원]]에서 대교과를 마치고 [[1942년|42년]] 동국대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였다. [[1953년]] 비구·대처의 분규가 있기 전까지 [[용주사]]에서 주요 보직을 맡았다. [[1964년]] 한국불교 조계종 종회의원으로 취임하기까지 조계종 총무원의 주요 보직을 거쳤으며, [[1970년]]에 한국불교 태고종 종회의원으로 취임하였다. [[1971년]]에 태고종 종회 부의장, [[1981년]]에 태고종 부원장, [[1984년]]에 태고종 제14대 총무원장으로 취임했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1972년]]에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되기도 하였으나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3년]] 태고종 제16대 총무원장으로 또다시 취임하였으며, 그 이후 [[1994년]]부터 죽 신촌 봉원사 조실을 역임했다. 나이 81세, 법랍 68세로 봉원사 문수각에서 입적하였다. = 사전적 의미의 서봉(西峯) = 서쪽 봉우리라는 뜻, 로마자 표기로는 Seobong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