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right><table bordercolor=#000000><bgcolor=#fffff9> '''{{{+1 서능욱 [br] 徐能旭, Seo Nung-wuk}}}''' || ||<-2> [[파일:서능욱.jpg|width=300]] || ||<bgcolor=#000000> '''{{{#white 직업}}}''' ||<bgcolor=#fffff9> 바둑기사 || ||<bgcolor=#000000> ''' {{{#white 소속}}}''' ||<bgcolor=#fffff9> [[한국기원]] || ||<bgcolor=#000000> ''' {{{#white 생년월일}}}''' ||<bgcolor=#fffff9> [[1958년]] [[5월 5일]] || ||<bgcolor=#000000> ''' {{{#white 국적}}}''' ||<bgcolor=#fffff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8]] [[대한민국]] || ||<bgcolor=#000000> ''' {{{#white 출신지}}}''' ||<bgcolor=#fffff9> [[인천광역시]] || ||<bgcolor=#000000> ''' {{{#white 학력}}}''' ||<bgcolor=#fffff9> [[리라공업고등학교]] || ||<bgcolor=#000000> ''' {{{#white 입단}}}''' ||<bgcolor=#fffff9> [[1972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한국]]의 [[바둑]][[기사(바둑)|기사]]. 九단이다. [[인천광역시]] 출신. [[조훈현]] 九단, [[서봉수]] 九단 등과 함께 한국 바둑계를 수놓았던 바둑 [[기사(바둑)|기사]] 중 한 명. 본관은 [[이천 서씨]] == 플레이 스타일 == 전투와 [[패]]싸움을 굉장히 좋아한다. [[축]], 장문 안 되면 다 끊고 본다는 기풍의 소유자. 그 때문에 '''[[손오공]]'''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 천재성을 진작 인정받아,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도 훨씬 성적이 좋으리라는 주위 사람들의 안타까움 섞인 한탄을 듣곤 했다. 굉장한 속기파로, 같은 속기파로 유명한 [[김희중(바둑)|김희중]]과 대국을 둘 때는 불과 30분만에 끝내 버리고 자리를 훌훌 털어 버렸던 일화도 있다. 이후 입회인이 와서 "아니 왜 이 사람들 안 왔어?"라고 하자 계시원이 "아, 대국 끝나고 가셨는데요" 해서 입회인이 당황했던 일화는 유명. 이 속기를 고치기 위해 부인이 사 준 염주를 들고 대국을 했던 적도 있었는데, 버릇 못 버린다고 손이 빨리 나가다가 염주가 모두 끊어져 염주알이 바둑판 위에 굴러다녔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현재도 그 버릇을 못 버려 통산 1000승을 달성하는 자리에서도 고작 49분만에 판을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207302211163&sec_id=530101&pt=nv|끝내버렸다]]. 또한 그의 뛰어난 속기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던 대국으로 1991년 88체육관에서 벌어진 111명과의 동시대국을 꼽는데, 장장 8시간에 걸쳐 71승 40패를 기록했다. 사실 이게 중요한 건 아닌데 그의 주요 경력을 보자. == [[콩라인]] == ||1972년: 입단. 1978년: 왕위전 본선. 기도문화상 신예[[기사(바둑)|기사]]상 수상. 1979년: 제4기 최강자전 '''준우승''' 1980년: 제1기 전일왕위전 '''준우승''' 1983년: 제1기 대왕전 '''준우승''' 1984년: 제2기 대왕전 '''준우승''' 1985년: 제3기 대왕전 '''준우승''' 1986년: 제4기 대왕전 '''준우승''' 1987년: 최고위전 '''준우승''', 바둑왕전 '''준우승''' 1988년: 왕위전 본선 1989년: 바둑왕전 '''준우승'''. 동양증권배 본선 1990년: 九단 승단. 제8기 제왕전 '''준우승''', 바둑왕전 '''준우승'''. 왕위전, 기왕전 본선. 1991년: 제27기 패왕전 '''준우승''', 31기 최고위전 '''준우승.''' 1993년: 기왕전, 왕위전, 국기전, 최고위전 본선 1994년: 기성전 본선, 천원전 '''준우승 ''' 1995년: 제2 롯데배 한.중대항전 대표, 명인전, 제3기 한국이동통신배. 제31기 패왕전 본선 1996년: 제3회 롯데배 한.중대항전 대표, 동양증권배, 삼성화재배 본선 1999년: 제34기 패왕전 본선 2000년: 제35기 패왕전 본선 2003년: 제22기 KBS바둑왕전 본선. 제37기 패왕전 본선. 2004년: 제9기 [[GS칼텍스배|LG정유배]] 본선 진출. 2005년: 제7회 [[맥심커피배]] 16강. || 준우승만 14회. 그야말로 '''[[콩라인]] 중의 콩라인.''' 거기다 콩라인이라면 옵션으로 갖춰줘야 할 '''[[전승준]]까지 4번. 게다가 2번 연속 전승준도 달성하셨다.''' [[홍진호]]가 매번 결승전에서 당대 최강의 테란들만 만나 우승을 놓쳤듯이 그는 14번의 결승진출 중 1'''2'''번은 초대 본좌 [[조훈현]] 九단, '''2'''번은 '''2'''대 본좌 [[이창호]] 九단을 만났다. 정말 안타까운 케이스. 사실 한국 바둑계는 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조훈현]] 九단과 [[서봉수]] 九단 철저한 양강체제였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타이틀을 휩쓰는 황제 조훈현과 거기에 맞서는 유일한 도전자 서봉수 구도. 일명 조국수와 서명인 시대. 그리고 이 2명에게 도전하는 5명의 [[기사(바둑)|기사]]. 바로 서능욱 九단을 선두로 [[강훈]] 九단, [[김수장]] 九단, [[장수영]] 九단, [[백성호]] 九단. 소위 '''도전 5강'''이었다. 그러나 도전 5강은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결국 조훈현, 서봉수를 '''단 한번도''' 넘지 못했다. [* 강훈이 한번 우승하기는 했으나 조훈현과 서봉수를 상대하지 않았다. 대신 당시 완전히 한물가 있던 김인을 꺾고 우승.~~스타크래프트로 따지면 [[한동욱|이 테란]]급의 천운우승이다~~] 일단 본선에서 서봉수한테 막혔고, 정말 어쩌다가 서봉수를 넘어서도 챔피언결정전에서 조훈현에게 '''처참하게 발렸다.''' 그나마 도전 5강 중에서 결승전까지 가장 많이 가본 게 서능욱 九단이었지만...[* 심지어 도전 5강 중에서 조훈현 다음으로 당대 최강자 [[이창호]]를 상대로 가장 많이 이겨봤던 것도 바로 서능욱이었다.]성적은... 2011년 12월 27일 조훈현을 이기고 '''제2기 대주배 우승'''[* 1기 우승자는 조훈현 九단]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때 상금이 천만원 정도였는데 회식때 고깃값으로 천만원보다 더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무척이나 기뻐했다고 한다.] 1972년 입단 이후 13번의 준우승을 거쳐 첫 우승. 또 한명 콩라인의 배신자가 탄생! 이렇게 은퇴한 황신을 또 한번 깠다. 하지만, 제한기전이므로 이벤트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제한기전이란 참가하는 데 제한이 있는 기전을 의미하며, 대주배의 경우는 만 50세 이상만 참가 가능한 시니어 기전이다. 정식 명칭도 '대주배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2018년 부활한 [[대주배 남녀프로시니어최강자전|대주배]]는 남성(=시니어)들로만 참가하는 방식이 아닌 --일부--여자기사도 포함하여 참가하는 대회가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준결승에서는 서봉수 九단을 이기고, 결승전에서는 자신에게 12번이나 좌절을 안긴 조훈현 국수를 올라서며 거둔 우승이다. 제한기전이라고 해서 무시할 수준은 결코 아니며, 당사자 개인에게는 정말 큰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홍진호]]의 이벤트전 우승도 결코 무시할수 없는 리그가 많다. 대표적으로 스니커즈 올스타리그의 경우 [[이윤열]] 같은 최고의 테란을 꺾고 우승한 대회지만 이벤트전 우승이라고 폄하 당했다~~ 바둑은 사실 전면 개방된 대회보다는 제한기전이 훨씬 더 많다. [[2000년]]까지만 해도 개방기전이 거의 100%였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바둑]]의 인기를 더 늘려야 살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으로 인해 제한기전을 많이 개최하여 대회 수를 늘려 주목도를 끌려는 것이다. [* 프로바둑에서 시니어, 여자기전의 경우 정식 기전만큼의 권위를 당연히 인정받을 수 없다. 제한기전 중 정식 기전만큼의 권위를 인정받는 유일한 기전은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으로, 九단만 참가가능한 대회다.] [[http://www.hani.co.kr/arti/sports/baduk/516578.html|한겨레신문에서 대주배 우승후 서능욱 九단과 인터뷰하여 기사를 실었다.]] 2012년 지지옥션배에서 한국기원 사상 다섯 번째로 1000승에 성공했다.[[http://news.sportsseoul.com/read/life/1068738.htm|#]] 그리고 2013년 1월 9일 서봉수를 이기고 '''제3기 대주배 우승'''을 차지,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두 번'''의 대주배 우승은 프로 통산 우승 횟수를 '''2회'''로 바꿔 놓았다. 우승 비결로 인터넷 바둑이 비결이라고. ~~진호야, 보고 있니?~~ ~~홍진호는 2등 하는것도 2등인 진정한 콩라인이다.~~ == 주요 기사들과의 상대 전적[* 2020년 9월 7일 현재] == === "도전 5강" 기사 === 강 훈 九단 34:30 김수장 九단 21:27:1 무승부 장수영 九단 20:25:1 무승부 백성호 九단 26:20 === 그 외의 기사 === 서봉수 九단 31:50 유창혁 九단 10:22 이창호 九단 5:28 조훈현 九단 12:59 == 그외 == 한때 [[타이젬바둑]]의 이사였으나 이사 자리에서 내려왔다. 본인에 의하면 주식을 다 팔았더니 곧바로 잘랐다고 한다... 위에 비결에서 나왔듯이 인터넷 바둑을 즐겨한다고 한다 타이젬[* 인터넷바둑사이트]에선 유명인사이며 거기에서도 굉장한 속기로 상대를 격파하고 다니신다고 ... 인터넷 바둑 사이트 아이디는 'joonki'이다. 이 유명한 아이디의 의미가 아들 이름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은 처음 아이디를 만들 때에 서능욱 九단이 컴퓨터가 서툴러서 부인 현인숙씨 회사의 직원 이준기씨가 만들어 등록해 준 것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25/2013012501311.html?Dep0=twitter&d=2013012501311]]] [[분류:1958년 출생]][[분류:바둑 기사]][[분류:인천광역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