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서강대학교]] [[분류:경제학파]] [include(틀:상위 문서, top1=서강대학교)] ||||<-3><tablealign=center><bgcolor=#ffffff><tablewidth=100%><tablebordercolor=#b60005> {{{#!wiki style="margin: -10px;" ||<tablebordercolor=#ffffff><tablebgcolor=#ffffff><tablecolor=#b60005> [[서강대학교|[[파일:SGU Symbol.png|width=40]]]]||[[서강대학교|[[파일:SGU Signature(Korean).jpg|height=20]]]][br][[서강대학교/서강학파|{{{#!wiki style="margin: -2px -0px;" {{{+5 {{{#000000 '''서강학파'''}}}}}}}}}]] ||}}} || ||<-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20D14, #B60005, #B60005, #920D14);" }}}|| ||<-3><bgcolor=#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서강학파 계보.jpg|width=100%]]}}} || [목차] == 개요 == ||<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b60005><tablewidth=100%><bgcolor=#FFFFFF> {{{#!wiki style="margin:-10px; margin-top:-5px; margin-bottom:-6px" [youtube(YWiwx7yvA98, width=100%)]}}} || ||<bgcolor=#b60005><:> {{{#FFFFFF '''서강학파 소개 영상'''}}}|| 서강대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서강학파는 1970년대에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의 이론적 기반을 완성해 한국의 고도성장을 기획했던 서강대 교수 출신 경제 관료집단을 칭하는 말이다. 서강학파의 주요 인사들은 실제로 경제기획원, 재무부 등에서 [[테크노크라트]]로 활약하여 한강의 기적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역사 == ||<table align=center><tablewidth=70%><tablebordercolor=#b60005><bgcolor=#FFFFFF> {{{#!wiki style="margin:-10px; margin-top:-5px; margin-bottom:-6px" [[파일:attachment/sogangteam01.jpg|width=100%]]}}} || ||<bgcolor=#B60005><:>'''{{{#ffffff 남덕우 전 총리 임명 기사}}}'''|| 다른 학교도 아니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진들이 경제개발 과정에서 활약하게 된 것은 교수진의 대다수가 [[미국]]에서 '선진 경제학'을 배워온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1965년 당시 국내 대학 경제학과 교수 가운데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는 서강대 3명, [[연세대]] 2명 뿐이었고, 1971년에도 서강대 5명, 연세대 3명, [[서울대]] 2명에 불과했다. 그 시절에 서강대 [[경제학과]]는 경제학 전공 미국 유학 1세대 가운데 3분의 1을 교수진으로 영입했는데, 이는 당시 [[예수회]] 위스콘신 관구에서 서강대 교수들의 월급을 일률적으로 [[미국 달러]]로 지급했던 덕분이기도 했다. 이렇게 재단의 전폭적인 투자에 힘입어 우수한 교수진을 대거 확보한 경제학과는 당시 경제정책 입안자들의 인재풀(pool)이 될 수밖에 없었다. [[파일:attachment/sogangteam00.jpg|width=560]] [[남덕우]] 전 총리, 김만제 전 부총리, [[이승윤]] 교수 등이 각각 재무장관과 금융통화운영위원,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을 맡은 '서강학파 1세대'이고, 이들은 '8.3조치'에 따른 [[사채]] 동결과 [[제2금융권]] 개발([[1972년]]), [[부가가치세]] 도입([[1976년]]) 등도 대표적 성과로 평가된다. 2세대는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 [[김종인]] 現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꼽히고 3세대로는 [[김광두]], 김경환, 남성일 현 서강대 교수들이 대표적이다. 한편 서강학파의 맥은 [[1997년]] [[외환위기]] 시기 전후로 끊길 뻔 하였으나 아직 4세대 서강학파로 최인, 조장옥, 김홍균 서강대 교수 등이 있고, 5세대로는 허정, 전현배 서강대 현 교수 등이 현직에 재직중이다 당시 경제위기에 대한 경제관료들의 책임론이 급부상했고, 여야간 정권교체도 이뤄졌다. == 평가 == 서강학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국의 압축성장에 기여했다는 찬사만큼이나 논란의 대상에 오른 적도 많다. 1960년대 '자주경제론', 1970년대 '종속론' 등을 따르는 경제학자들은 개방경제 모델을 지지하는 서강학파 1~2세대와 끊임없이 대립했고, 8.3조치 도입이나, [[부마민주항쟁]]의 빌미가 된 [[부가가치세]] 도입에 대한 비판들이 잇따른다.[* 앞서 남덕우 전 총리가 "정통시장경제"라 했지만, 사실 1980년대의 자유주의 경제학의 기준으로 따져봤을 때 서강학파의 개발론이 그렇게 "정통"이라 보기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오히려 비정통인 [[장하준]] 등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을 정도. [[한강의 기적]] 참조.]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청와대]]가 "서강학파의 불균형 성장론은 실패했고, 이를 대체할 새 이론이 나와야 한다"며 공개 비판하자 이 학과 교수들이 "[[대학생]] 수준"이라며 날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렇듯 서강학파의 공과(功過)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근대화와 경제성장이란 소명에 충실했음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적다. '''"성장을 해서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감을 모르는 사람은 그 때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의 말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밖에도 서강학파는 서강대 경제학과를 한국 유수의 경제학과로 성장케 하는 원동력이 됐고, 서강대의 인지도 향상에 기여했다. == 향후 ==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선출 전후로 이 서강학파 밑에서 수학한 학생 세대가 주류를 이룬 서강대학교 출신 금융인 모임('''서'''강'''금'''융인'''회'''), 일명 '서금회'가 새로운 경제인 세력으로 금융권 장악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고려대에 이어--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1/25/2014112504050.html?rsMobile=false|서금회 출신 금융권 要職 차지 보도]] 19대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 보좌진 중에도 서강대의 [[조윤제]], [[김광두]] 교수가 참여했다. 미국 경제학회에서 매긴 랭킹에서 서강대 경제학과는 고려대, 서울대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소속 교수로는 Almas Heshmati 교수, 최인 교수, 조장옥 교수 등이 20위 이내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http://www.ssodam.com/content/57399?prev=9&prev_content=/all|캡쳐본]] [[https://ideas.repec.org/top/top.southkorea.html|최신버전]] == 둘러보기 == [include(틀:서강대학교)] [include(틀:경제학사(한국))]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서강대학교, version=2087, paragraph=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