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사산 제국 샤한샤)] [[파일:external/iranpoliticsclub.net/Shapour%20the%20Great%20Sassanid,%20Valerian,%20Senator,%20Savar%20&%20Female%20Sardar.jpg]] [목차] == 개요 == '''Shapur I'''. 샤푸르 1세는 [[사산 왕조]]의 [[황제]]로 재위기간은 242-272년이다. 로마 황제를 포로로 잡아들이고 굴복시킨 [[샤한샤]]이며 페르시아의 재부흥을 일궈낸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 외치 == 이 시기 사산 페르시아는 [[로마 제국]]과의 전쟁이 지속되었는데, 재위 초기에 군대를 보내 시리아 일대를 공략하였지만 [[고르디아누스 3세]]의 선방에 막혀 실패한다. 이후 로마와 한동안 평화를 지속하다 로마가 [[게르만족]]의 침략으로 혼란에 빠지자 로마 제국의 동쪽 국경을 공격하여 아르메니아를 점령하고, 253년에는 시리아의 안티오크를 약탈하였다. 결국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점령당한 지역을 수복하기 위해 시리아로 향하였다. 그러던 중 260년 에데사에 머무르던 [[발레리아누스]]의 군대 내부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였다. 전투력을 상실한 로마군은 페르시아군과 휴전협상을 시도하였다. 이때 계략을 사용하여 샤푸르 1세는 발레리아누스를 포로로 잡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경호병력을 최소화하자는 조건을 내걸었는데, 이러한 조건을 충실히 이행한 게 발레리아누스에게는 크나큰 실책이였다.][* 샤푸르가 직접 전쟁에서 승리해서 발레리아누스를 포획했다기 보다는 책략을 써서 잡았다는 의견이 유력하다.] 반대로 말하자면 로마 입장에서는 '''역사상 황제가 적국에게 최초로 포로가 된 엄청난 치욕인 셈이다.''' ||[[파일:attachment/shapur_valerian.jpg]]|| || 포로로 잡힌 발레리아누스 앞의 샤푸르 1세를 새긴 부조[* 이란 [[쉬라즈]] 근처의 [[낙쉐 로스탐|나크쉐 루스탐]] 유적에 있는 [[다리우스 1세]]의 무덤 바로 옆에 새겨져 있다.] || 샤푸르 1세의 군사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애초에 국력차가 현격한 로마 제국 상대로 수비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 한들 한번은 시리아와 카파도키아를 성공적으로 공격하여 6만대군을 패배시킨 사례가 있으며, 그 외에도 로마 제국의 아시아 속주 여러지역을 공격하고 약탈하여 명성을 드높인 바 있다. 더불어 어린시절에 아버지 아르다시르 1세의 전투에 여러 차례 참여하여 성과를 올렸으며, 로마와의 휴전 기간에는 쿠샨 제국과 중앙아시아를 공략하여 영향권을 크게 넓히기도 하였다. 이후 온갖 [[능욕]][* 황제(샤푸르)가 말을 탈 때의 디딤돌로 쓰이기도 했다.]을 다 당한 발레리아누스는 260년 말 무렵에 옥사한다. 샤푸르 1세는 발레리아누스의 시신을 돌려보내거나 안장하지 않고 가죽을 벗겨 주황색 염료로 [[염색]]된 상태에서 속에는 지푸라기로 채워서 [[박제]]되어 신전에 전시했다. 이는 승리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함과 동시에 로마 사신들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용도로 이용되었다. 단, 이것은 과장 또는 날조로 실제로는 홧병으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상 황제가 그 정도로 가혹하게 당했다면 로마 측에서도 나중에 국가를 재건한 뒤 정식으로 문제 삼든지, 보복할 때 명분으로라도 썼을 텐데 그런 사례가 전혀 없다.[* 적국 군주로도 지나치게 모욕을 주면 신격화된 고대군주의 특성상 신이 아닌 인간으로 보일 여지를 가지게 되며 이는 귀족들이 도전할 여지를 준다.] 어쨌든 샤푸르 1세는 바위 절벽에 이러한 업적을 기념하는 조각을 새겨넣었다. 이 부조에는 고르디아누스 3세 암살 후 휴전조약을 체결한 [[필리푸스 아라부스]]도 비판하고 있다. 참고로 역대 페르시아 황제들이 즐겨 하던 행동으로 큰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러한 부조를 많이 만들었다. == 내정 == 이후 샤푸르 1세는 군데샤푸르[* Gundeshapur. '''[[군대]]'''샤푸르가 아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는 영어식 발음인 준디샤푸르라고 부른다. 뜻은 "샤푸르의 칼"이다.]라는 대도시를 [[수사#s-7]] 부근에 건설하고 사로잡은 포로를 사역하여, 카른 강을 막아서 유명한 농경용 수리 공사를 완성하였다. 이는 페르시아 관개농업의 기초가 되었다. 외정과 내치면에서 훌륭한 면모를 보여준 사산 왕조의 몇 안 되는 [[명군]]이었다. 종교적인 성향으로는 한때 [[마니교]]를 비호하기는 했지만 얼마안가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한다. [[분류:사산 왕조 샤한샤]][[분류:27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