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미국의 군인]] [[분류:6.25 전쟁/군인]] [[분류:1925년 출생]] [[분류:2015년 사망]] [[분류:뉴욕 주 출신 인물]] [[분류:군인 자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amuel_S_Walker.jpg]] [목차] == 개요 == Sam Sims Walker 샘 심즈 워커 [[1925년]] [[7월 31일]] ~ [[2015년]] [[8월 8일]] '''[[월튼 워커|세대에 걸쳐]] [[대한민국]][[한국전쟁|을 지켜준]] [[전쟁 영웅]], 호부호자의 대표적 사례.''' 이분의 아버지가 [[한국전쟁]] 최고의 전쟁 영웅 중 한 명인 [[월튼 워커]]이고, 샘 워커 본인도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미8군]]사령관이었던 아버지와 같이 낙동강 방어선의 최전방에서 공산군과 맞서 싸웠다. 이 당시 아버지는 중장, 본인은 대위였다. == 생애 == 1925년에 [[미국]] [[뉴욕]] 웨스트포인트에서 월튼 워커의 [[무매독자]] [[외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인 월튼 워커가 37세 때 태어난 늦둥이였다. 샘 워커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1941년 [[버지니아군사대학]](VMI)에 입교했으며, VMI 재학 중 미 육사 시험을 준비하여 이듬해인 1942년 [[미국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1946년 미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 주일미군 제11공수사단에서 일본 점령군으로 복무했고, 6·25전쟁 당시에는 미 육군 제 24보병사단 보병 [[중대장]]으로 참전했다. 6·25 전쟁 초기 1년간 참전하여 초기 지연전과 낙동강 방어전투, 38선 돌파, 중공군 공세로 인한 후퇴를 다 경험했다. 샘 워커는 6·25 전쟁에서 은성무공훈장을 수훈했다. 그러나 1950년의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 자신에게 직접 훈장을 달아주기 위해 아들이 있던 부대로 오고 있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때 미국 정부에서는 샘 워커에게 부친상을 치르라고 특별휴가를 줬는데, ''그는 아버지의 뜻을 자기가 대신 이뤄야 한다면서 이 휴가를 거절하고 한국에 남아서 계속 전쟁에 참여했고, 오죽했으면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이 샘 워커에게 휴가를 다녀오라고 직접 명령을 내려야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샘 워커는 개인사유로 군의 사기에 영향을 끼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맥아더의 명령을 거부하고 계속 싸우기를 고집했다. 더군다나 샘 워커는 한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을 효도라고 생각하고 한국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한반도에 남아서 공산군과 싸웠다는'' 얘기가 항간에 퍼져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샘 워커 대위는 부친의 영정을 미국으로 운구했고, 상주로서 장례식을 끝까지 지켰다. 장례식 이후 규정에 따라 휴가 복귀하여 1년의 파병을 기간을 끝까지 다 채우고, 1951년 미 육군 보병학교로 전근, 교관으로 근무했다.[[https://en.wikipedia.org/wiki/Sam_S._Walker|#]] 1957년 지휘참모대학 졸업, 미 육군본부, 미 육군사관학교 전술장교, 주한미군 사령부를 거쳐 1963년 국방참모대학을 졸업했다. 30보병 1대대장을 거쳐 [[베트남 전쟁]]에 참전, 제1보병사단 작전참모(G-3)로 근무했으며, 중령 계급으로 동 사단 2여단장으로 애틀보로 작전(Operation Attleboro)에 참가했다. 1년 간의 베트남전 파병을 마친 이후 [[하버드 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육군참모차장실 동원기획관 근무, 미국외교협회(CFR) 파견 근무, 1968년 준장 진급, 제82공수사단 부사단장, 미 육군 사관학교 생도대장, 소장 진급, 제3보병사단장, 중장 진급, 미 육군 전력사령관, 1977년 미군 역사상 최연소 [[육군]] [[대장(계급)|대장]]으로 진급 후 주터키 터미연합 남동 지상군(COMLANDSOUTHEAST) 사령관 역임. 아버지 윌튼 워커 [[중장]]이 대장으로 사후 추서되었기 때문에 '''[[미국 육군]] 역사상 최초로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대장을 단 군인'''으로 남게 되었다.[* 참고로 미군 전체에서는 [[미국 해군]]의 [[존 매케인]] 부자(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조부-부친)가 각각 1949년(추서)과 1967년에 4성 [[제독]]으로 진급한 전례가 있고, [[미국 공군]]에서는 존 라이언, 마이클 라이언 부자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사례가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C%83%98_S._%EC%9B%8C%EC%BB%A4|21세기 들어서는]] 2015년에 [[크레이튼 에이브럼스]]의 둘째 아들이 4성 장군에 올랐고, 2015년 3남도 4성을 달았다. 이 집안은 아버지와 아들 둘이 대장이고, 맏아들 역시 [[준장]]까지 지냈다.] 1978년에 퇴역했다. 퇴역 이후에는 1981~1988년까지 버지니아 군사대학(VMI) 총장을 역임했고, 한미국제교류재단 이사, 한미 안보연구 협의회 이사, 국립 디데이 박물관 이사, 터미친선협회 이사를 지냈다. 2005년 미 육군 사관학교 총동문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2015년 8월 8일 별세하였다. [[향년]] 90세. 슬하의 아들들도 다 군대에 입대했고, 그 중 한 명은 [[대령]]으로 제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