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center><table width=600><table bordercolor=#00001b><bgcolor=#ffffff> [[파일:external/www.gannett-cdn.com/ap-100-days-out-us-olympics-4_3.jpg|width=100%]] || ||<bgcolor=#00001b> '''{{{#white 이름}}}''' ||<bgcolor=#ffffff> 새미 리(Sammy Lee) || ||<bgcolor=#00001b> '''{{{#white 국적}}}''' ||<bgcolor=#ffffff> [[미국]][[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 ||<bgcolor=#00001b> '''{{{#white 생몰년도}}}''' ||<bgcolor=#ffffff> [[1920년]] [[8월 1일]], [[캘리포니아|캘리포니아 주]] 프레조노~[br][[2016년]] [[12월 2일]], [[캘리포니아|캘리포니아 주]] 뉴포트비치 || ||<bgcolor=#00001b> '''{{{#white 신체}}}''' ||<bgcolor=#ffffff> 157cm, 58kg || ||<bgcolor=#00001b> '''{{{#white 종목}}}''' ||<bgcolor=#ffffff> [[다이빙]] || ||<bgcolor=#00001b> '''{{{#white 주종목}}}''' ||<bgcolor=#ffffff> 3m 스프링보드, 10m 플랫폼 || [목차] == 소개 == [[미국]]의 前 [[다이빙]] 선수이자 코치였다. [[부친]]이 한국인으로, [[한국계 미국인|이민 2세]]이다. '''미국 최초의 아시아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 업적으로 미국 올림픽 [[명예의 전당]]에도 헌정되었다. 개인자격으로는 미국의 올림픽 참여 역사를 통틀어 96명만이 누린 영예이다. 동시에 [[손기정]]에 이어 한민족 사상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유년 시절 == 새미 리의 부친 이순기는 [[하와이]]를 거쳐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미국 이민 초기 세대였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던 새미 리는 12세였을 때 [[1932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생생히 지켜보게 되고, 자기도 반드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꿈을 갖게 된다. 그 후 다이빙을 시작하게 되는데, 157cm의 [[단신]]이라는 핸디캡이 비교적 덜한 종목으로 다이빙을 택한 것이다. 당시 유색인종들은 수영장 이용에 있어서도 많은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훈련에 애로를 겪는다. 일주일에 한 번 겨우 입장이 허용되었고, 수영장에 입장을 못하는 날엔 구덩이에 모래를 채워놓고 그 가운데로 뛰어내리는 식으로 연습했다고 한다. 훗날 [[인종차별]] 타파를 위해 여러 활동을 하게 된 데에는 이런 유년시절의 경험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새미 리의 부친은 당시 이민자로서는 드물게 영어에 유창했고, 대학에 입학하여 학위까지 받았음에도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직장을 얻지 못하고 식료품점을 운영했다. 이런 부친을 지근거리에서 보면서 느낀 점도 많았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다닐 땐 학생회장 선거에 도전하기도 했다. 교사들은 이 학교에서 백인이 아닌 학생이 회장을 한 적이 없다며, 상처받지 말고 그냥 포기하라고 권했으나 새미 리는 선거를 완주했고 끝내 당선되기까지 했다. 훗날 새미 리가 금메달을 목에 걸자 모교에서는 이 날을 '새미 리의 날'로 정하는데, 이 때 기념식에 참석한 리는 학생들에게 "여러분의 꿈을 짓밟는 잘못된 관습에 굴복하지 마라"는 연설을 남긴다. == 올림픽 영웅이 되다 == 1942년에 열린 전미 다이빙선수권에서 10m와 3m 두 종목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유색인종이 미국 다이빙 챔피언이 된 것은 최초이다. 종전 후 열린 첫번째 올림픽인 [[1948 런던 올림픽]]에서 미국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하여 10m에서 금메달, 3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0m 경기를 할 때 1차시기부터 입수를 잘못해 몸으로 입수하며 감점을 많이 받았고 많이 뒤처진 채로 시작했으나 나머지 시기에서 실수없이 기술을 선보여 극적으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tablebordercolor=#00001b><table bgcolor=white> [[파일:external/t1.daumcdn.net/20120627092105125.jpg|width=100%]] || 올림픽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새미 리의 모습. 왼쪽은 같은 미국 대표였던 브루스 할란(은메달)[* 이 선수가 3m 종목에서 리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오른쪽은 동메달리스트인 멕시코의 호아킨 카피야이다. ||<tablebordercolor=#00001b><table bgcolor=white> [[파일:external/tradingcardspace.com/normal_24%20Sammy%20Lee.jpg|width=100%]] || 4년 후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는 10m 한 종목만 참가하여 다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올림픽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 역시 올림픽 다이빙 역사를 통틀어 최초. 당시 32세로 다이빙 선수로서는 전성기가 지난 나이임을 고려하면 이 자체로도 대단한 성적이다. ||<tablebordercolor=#00001b><bgcolor=#ffffff> [youtube(2J6i1QA1WeI)] || ||<bgcolor=#ffffff> [[1952 헬싱키 올림픽]] || 새미 리의 경기장면은 42초부터 나온다. 유독 단신이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다. 4년 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카피야 선수가 이번에도 새미 리에게 밀려 은메달에 머무른 것을 볼 수 있다. 다음 해인 1953년에는 미국 체육계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아마추어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인 제임스 설리번 상을 수상했다. 훗날 1990년에 새미 리는 미국 올림픽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여담으로 이 때 동시에 헌액된 인물 중에는 [[조지 포먼]]도 있었다. == 은퇴 이후 == 운동을 하면서도 학업을 병행했던 새미 리는 이미 [[의대]]를 졸업하여 의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었다. 이는 인종차별을 생생히 겪은 부친이 아들로 하여금 의사 같은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직업을 가지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역에서 은퇴한 후 [[군의관]]으로 자원입대하여, 1953년부터 1955년까지 [[주한미군]]에서 복무할 수 있었다. 이 때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경무대]]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승만은 과거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 그의 부친 이순기와 쌓았던 친분을 회상했다고 한다. 새미 리의 명성은 국제적으로도 드높았기에 각국 다이빙 대표팀에서 거액을 약속하며 코치로 와달라는 제안이 많았으나 그는 딱 두 나라의 선수들만 지도했는데, 바로 미국과 한국이었다. 특히 [[1964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던 일본 대표팀에서 리에게 끈질기게 구애했으나 이를 단호히 뿌리치고, 혼자 자비로 일본으로 가서 한국 선수들을 찾아가 지도해 주기도 했다. 같은 소수민족이었던 [[사모아]]계인 그렉 루가니스를 지도한 것 역시 새미 리이다. 루가니스가 15살일 때부터 그의 재능을 알아본 리는 직접 한국음식을 해 먹이며 아들처럼 키웠고 루가니스는 리의 지도를 받은 지 1년만에 미국 최연소 국가대표로 뽑혔다. 이후 1984, 1988 두 번의 올림픽에서 연속으로 10m와 3m 두 종목에 걸린 금메달을 싹쓸이하는데, 특히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예선에서 연기를 펼치다 스프링보드에 머리를 부딪혀 피가 흐르는데도 마취제 없이 상처를 즉석에서 꿰맨 후 바로 결선 연기에 임해 금메달을 따는 모습은 아직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하지만 HIV 보균자인 루가니스가 나중에 감염 사실을 공개했을 때 이때의 투혼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1956 멜버른 올림픽]], [[1972 뮌헨 올림픽]], [[1988 서울 올림픽]]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임명한 특사 자격으로 올림픽에 참관하는데 이 때 국제 스포츠계에 두터운 인맥을 쌓았다. 이 인맥을 활용해 [[평창군]]이 동계올림픽 개최에 도전할 때 적극적으로 나서 지원하기도 했다. == 수상 기록 == ||<-3><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001b><table width=350><bgcolor=#00001b> {{{#white 올림픽}}} || ||<bgcolor=#ffd700> 금메달 ||<bgcolor=#ffffff> [[1948 런던 올림픽|1948 런던]] ||<bgcolor=#ffffff> 10m 플랫폼 || ||<bgcolor=#ffd700> 금메달 ||<bgcolor=#ffffff> [[1952 헬싱키 올림픽|1952 헬싱키]] ||<bgcolor=#ffffff> 10m 플랫폼 || ||<bgcolor=#cd7f32> 동메달 ||<bgcolor=#ffffff> [[1948 런던 올림픽|1948 런던]] ||<bgcolor=#ffffff> 3m 스프링보드 || ||<-3><bgcolor=#00001b> {{{#white 팬아메리칸 게임}}} || ||<bgcolor=#c0c0c0> 은메달 ||<bgcolor=#ffffff> [[1951 부에노스 아이레스 팬아메리칸 게임|1951 부에노스 아이레스]] ||<bgcolor=#ffffff> 10m 플랫폼 || ||<bgcolor=#cd7f32> 동메달 ||<bgcolor=#ffffff> [[1951 부에노스 아이레스 팬아메리칸 게임|1951 부에노스 아이레스]] ||<bgcolor=#ffffff> 3m 스프링보드 || == 기타 == * 사진 맨 왼쪽이 새미 리이고, 가운데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인물이 김영옥이다. 미국의 전쟁 영웅 [[김영옥(군인)|김영옥]] 대령과는 말 그대로 [[죽마고우]]이자 [[불알친구]]였다. 어렸을 때부터 일본군을 때려부수는 전쟁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한다. 사족으로 맨 오른쪽의 인물은 [[조지 타케이]]이다. ||<tablebordercolor=#00001b><table bgcolor=white> [[파일:external/blog.joins.com/colkim-0006.jpg|width=100%]] || * [[손기정]]과도 친분이 돈독했다. 둘은 1947년에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 아마 손기정이 [[보스턴]] 마라톤에 코치로서 참가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만남을 가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1948 런던 올림픽]]에서도 각각 선수와 코치로서 런던을 찾아 친분을 다졌고 이후 올림픽이 개최될 때마다 만났다고 한다.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당시 개막식 전날에 손기정은 성화봉송 주자로서 LA [[한인타운]]을 달리는데, 이 때 손기정으로부터 성화를 넘겨받은 인물이 바로 새미 리였다. ||<tablebordercolor=#00001b><table bgcolor=white> [[파일:external/pbs.twimg.com/CoA1-wPUsAANmGT.jpg|width=100%]] || * 군복무를 마친 후 LA로 돌아왔는데 [[오렌지 카운티]]에서 집을 사려고 해도 백인들이 하나같이 거래를 거부했다고 한다. 새미 리는 이를 기자 지인에게 털어놓았고 그 기자는 "올림픽 챔피언이 인종차별 때문에 집 한 채도 못사고 있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는 미국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고, 당시 미국 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까지 나서서 리를 도와주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집을 팔기를 거부했던 오렌지 카운티의 집주인들과 부동산업자들은 거하게 까였고, 결국 리는 원하는 집을 얻을 수 있었다. * 한국계 미국인들 사이에선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존재로 널리 존경받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는 새미 리의 이름을 따서 이름붙인 새미 리 광장(Sammy Lee Square)이 있고, 새미 리의 이름을 딴 [[https://www.youtube.com/watch?v=wwYUSqFdwqc|초등학교]]도 있다. * 말년에는 아무래도 고령이다 보니 약간의 치매 증상을 앓있다고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0404_0011974655&cID=10104&pID=10100|한다.]] *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는 새미 리가 올림픽 출전 당시 착용했던 수영복과 트레이닝복이 소장되어 있다. 이 옷들은 등록문화재로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 2016년 12월 2일 향년 96세로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2/04/0200000000AKR20161204010100009.HTML?input=1195m|타계하였다.]] [각주] [[분류:수영 선수]][[분류:의사]][[분류:미국의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캘리포니아 주 출신 인물]][[분류:1920년 출생]][[분류:201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