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KOF 캐릭터 애쉬 크림존의 초필살기, rd1=애쉬 크림존)] [[분류:프랑스 혁명기의 정파]]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ans-culotte.jpg|width=300]] [목차] >상퀼로트는 [[불량배]]인가? 그는 '''[[민중|항상 발로 걷는 사람]]'''이며, 당신들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무산계급|돈도 없는 사람]]'''이고, 자신을 위한 시종이나 성도 없으며, 4층이나 5층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단출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는 '''유용하다.''' 왜냐하면 그는 들판에서 일하는 법을 알고, 쇠를 주조할 줄 알고, 톱을 사용할 줄 알며, 쇠붙이 가는 줄을 사용할 줄 알며, 집에 지붕을 얹을 줄 알고, 신발을 만들 줄 알고, [[공화국]]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마지막 피 한 방울을 흘릴 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노동을 하므로''' 당신은 카페 드 샤르트르에서 그를 분명 만나지 못할 것이고, 사람들이 작당을 하고 도박을 하는 도박장에서도 보지 못할 것이다. >저녁에 그는 분칠하지도, 향수를 뿌리지도, 혹은 여성 관중의 눈을 사로잡으려고 말숙한 부츠를 신지도 않은 채 자신의 구역으로 간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좋은 제안을 지지하고, 혐오스러운 정치인 도당이 제시한 제안들을 분쇄할 준비가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상퀼로트는 '''[[혁명]]의 모든 적들의 귀를 자를 날카로운 [[사브르]]를 항상 지니고 있다.''' >---- >「주제넘은 질문에 대한 답변 : 상퀼로트는 누구인가?」, <1775~1830년의 혁명들>, 머린 윌리엄스, p100~101 == 개요 == Sans-culotte.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정국을 주도한 파리의 빈민 대중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 어원 == [[앙시앵 레짐]] 당시 귀족들은 주로 브리치 또는 [[퀼로트]]라고 불리는 ~~쫄쫄이 반바지~~ 하의를 착용했기 때문에, 긴 바지를 입고 다니는 평민들을 경멸하는 어조로 상 퀼로트(sans은 영어의 without과 같은 의미이다.)라고 불렀다. 한국의 사례로 보자면 '[[족보]]에도 없는 놈'과 비슷한 뜻이었던 셈. 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파리의 급진적 대중들이 자신들을 자랑스럽게 지칭하는 표현으로 뜻을 바꾸어 부르면서 오늘날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 내용 == 상퀼로트를 이룬 주요 계층들은 소농, 상공업자 등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사회 경제적 평등을 기치로 내걸고 자신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고정 임금제]], 빵을 비롯한 식료품의 가격 통제, 대중 민주주의, 지방 자치제와 같은 정책을 주장했고, 상당 부분을 관철시켰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 베르사유 행진, [[발미 전투]][* [[프랑스 혁명전쟁]] 당시 프로이센 군을 상대로 프랑스 국민군이 최초로 승리한 전투.] 등 프랑스 혁명 굵직굵직한 사건의 주축을 맡았으며 정치적으로는 [[자코뱅]], 그 중에서도 가장 급진주의 계열인 [[산악파]], [[에베르파]] 등과 밀접한 관계였다. 특히나 1792년 자코뱅 [[지롱드당]]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 뒤에는 정치적 위상이 급속도로 높아져서 진정한 혁명 정신의 소유자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심지어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한창인 시기에는 조금만 반동으로 몰려도 [[단두대]]로 직행했기 때문에 부르주아 출신의 온건 좌파나 귀족 출신들까지도 '여러분 저 비록 출신은 부르주아이지만 심정적으로는 여러분과 동질적인거 아시죠?'라는 점을 어필하려고 퀼로트를 벗어던지고 상퀼로트를 착용했다고 한다(...) ~~진정한 서민 [[코스프레]]~~] 하지만 [[프랑스 혁명전쟁]]이 격화되면서 자코뱅과 상퀼로트의 연합전선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혁명전쟁이 격화되면서 [[로베스피에르]]는 [[징병]]과 같은 중앙집권적인 정책을 펼쳐야 했고 여기에 상퀼로트가 반발했기 때문. 결국 1794년 3월 에베르를 비롯해 [[어보아지]]라고 불리던 상퀼로트의 주요 지도부들이 [[공안위원회]]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키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당하면서 상퀼로트는 몰락하고 만다. 한가지 아이러니처럼 것은, 이 처형으로 인하여 로베스피에르는 [[자충수|자신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를 자신의 손으로 숙청한 셈이 됐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은 같은해 7월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자신도 처형당하고 만다(...) 잔존한 상퀼로트 일파들은 1795년 [[파리(프랑스)|파리]]에서 총재정부에 저항하는 봉기를 일으켰으나 무참히 진압당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상퀼로트의 이념은 살아남아서 [[7월 혁명]], [[2월 혁명]] 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파리 코뮌]] 역시 상퀼로트적 전통을 계승한 최후의 시도라고 평가받는다.[* 이후로는 사회주의자들의 대다수가 상퀼로트와 같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멸한다.] == 평가 == 우파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 입장에서는 좋게 볼래야 좋게 볼 수가 없는 집단이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과격한 도시 민중의 원형' 정도이며 [[폭도]]로 단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시각을 가지는 것은 다름아닌 9월 대학살 때문이었는데, 계속 프로이센을 이기지 못해 파리 코앞까지 다가오자 [[장폴 마라]]가 언론을 통해 귀족과 성직자들을 죽이자고 선동하자 감옥에 갇힌 성직자를 비롯한 귀족들을 모두 학살했다. 이 중에 여성들도 강간을 당하고 살해당하는 등의 사실이 전 유럽에 퍼져서 많은 국가들이 기겁했다.]. 반면 좌파 진영에서는 이들을 사회주의의 초석을 다진 세력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다만 좌파 내에서도 평가는 엇갈리는데, [[마르크스주의]] 계열 역사학자들은 이들에 대해서 꽤나 박한 평가를 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관점에 따르면 봉건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의 진입은 '''불가피한 역사적 진보'''이고 이 자본주의 내에서 다시 모순이 쌓이고 쌓여 폭발하는 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다. 그러나 상퀼로트들이 꿈꾸었던 사회는 소규모 자영농과 소상공인들이 주축이 되는 전근대 사회였는데 이러한 사상도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라고 불리며, [[사회주의]] 계열의 한 갈래이기는 하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과학적 사회주의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즉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보기에 상퀼로트는 역사가 공산사회로 이행하는 데 있어 '''장애물''' 정도였던 셈. 틀린 평가는 아닌게 상퀼로트들이 자코뱅 집권 시기 실시한 소농, 소상공인들을 위한 각종 사회 정책들이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프랑스는 산업자본주의가 발전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기도 했고, [[프랑스 2월 혁명]]이 터져 공화국이 되었음에도 [[루이 나폴레옹]]에게 몰표를 던져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등 프랑스의 보수화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프랑스는 선진국치고는 사회에서 소농들의 비율이 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