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고려]][[분류:고려/건축]][[분류:행궁]][[분류:조선 시대의 없어진 건축물]][[분류:조선의 별궁과 궁가]][[분류:방화로 소실된 문화재]] [include(틀:고려의 궁궐)] [include(틀:조선의 별궁과 궁가)] [include(틀:조선의 행궁)] [목차] == 개요 == [[고려시대]]부터 조선초기까지 사용되었던 행궁. == 상세 == [[고려시대]]에 사용된 행궁으로 조선초기까지 사용되었다. 고려시대 말기에 [[홍건적]] 침입으로 이곳을 이용한 사람으로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가 있다. == 주요 건축물 == 기록에 따르면 중심권역에는 정전이 있었으며 그 옆으로 15칸 규모의 행재소가 있었다. 왕이 머물는 침실이 6칸 규모로 지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 초기부터는 경상감영이 들어섰으나 임진왜란 당시 모두 불타 사라졌다. 정전 정면8칸 측면3칸 규모의 [[정전]]이 있었다. 훗날 조선 초기에는 경상감영 [[선화당]] 건물로 사용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어 현재 남아있지 않다. 행재소 고려시대에 설치된 [[행궁|행재소]]로 이곳에서 숙식을 담당하는 관청이 있었다. 하지만 조선초기까지 사용되었으며 상주의 고서적들을 임시로 보관하기도 하였다. 이곳에 보관되었던 고문서들은 모두 상주의 역사와 지리,정보등이 보관되어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중심 권역에는 정전이 있었으며 그 옆으로 15칸 규모의 행재소가 있었다. 왕이 머물는 침실이 6칸 규모로 지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 초기부터는 경상감영이 들어섰으나 임진왜란 당시 모두 불타 사라졌다. 왕산 행궁의 뒤에 위치한 산으로 [[후원]]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공원으로 변하였으며 산 정상에 [[공민왕]]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졌던 300년 된 나무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벌목하여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오련당 행궁의 정문 앞에 위치하였다는 5개의 연꽃이 피었다는 연못이다. == 위치 == 지금의 상주 왕산공원 일대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