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三武一宗法難 || [목차] == 개요 == [[중국사]] 및 [[불교]] 용어 중 하나. 삼무일종법난(三武一宗法難)이란 [[중국]] [[중세]]시기에 일어났던 네번의 대대적인 불교 탄압([[법난]])을 일컫는 용어이다. '''폐불'''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삼무일종폐불, 혹은 줄여서 삼무일종이라고 한다. * [[북위]](北魏) [[태무제|태'''무'''제]](太武帝) - 446 ~ 452 황제가 [[도교]]를 신봉하여 빚어졌다. 다른 황제들과는 달리, 이쪽은 승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까지 이루어 졌다. * [[남북조시대]] [[북주]](北周) [[우문옹|'''무'''제]](武帝) (북주파불北周破佛) - 574 ~ 577 황제가 문무백관을 모아 유불도 삼교를 논의하게 한 뒤, 유교를 제일로 놓고 도교와 불교를 탄압했다. 다만 도교에 대해서는 형식적이였다고. * [[당나라|당]](唐) [[무종|'''무'''종]](武宗) (회창폐불 會昌廢佛) - 840 ~ 846 --이러면 이무이종도 되는거 아닌가-- 당의 국력이 쇠퇴해짐에 따라 개방적이던 사회 분위기가 차츰 폐쇄적으로 변하였고, 한참 흥성했던 불교에 대해 [[한유]]와 같은 유학자들의 비판이 강해졌으며, 결국 당무종 때에 불교 탄압책이 실시되었다. 이때에 불교 뿐만 아니라 [[서역]]에서 전래된 모든 종교, 즉 [[경교]](네스토리우스교), 현교([[조로아스터교]]), [[마니교]]도 모두 탄압을 당했다. * [[오대십국시대]] [[후주]](後周) [[세종#s-1.1.4|세'''종''']](世宗) - 954~959 국가의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서 일어났다. 이 네 명의 황제에 의해 일어났다고 해서 '''삼무일종'''이라고 부른다. == 원인 == 이러한 대대적인 종교 탄압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외래 종교인 불교에 대한 거부감, 중국 전통 사상인 [[유학]]과 [[도교]]의 반발, 불교 교단의 병폐, 세수와 노동력 및 병역인구의 확보, 위정자들의 의도 등이 꼽히고 있다. 여담으로, 삼무일종의 법난을 일으킨 네 황제 중 당무종을 제외하면 전부 [[명군]]의 반열에 드는 황제들이라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심지어 당무종도 최소한 당나라 최후의 개혁군주 정도로 평가받는다. 보통은 이들 군주들이 지배체제의 개혁과 정비, 중앙집권화와 한화 과정에서 불교를 장애물로 여기게 되면서 탄압이 시작된 편이다. == 진행과 결과 == 종교 탄압에는 강력한 물리력이 동원되었으며 불교 외에도 외래에서 들어온 3이교, 즉 [[경교]]([[기독교]] 네스토리우스파), 현교([[조로아스터교]]=배화교), 화교([[마니교]])가 모두 대상이 되어 박해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삼무일종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은 불교가 가장 세가 강성했기 때문에 그만큼 피해도 많았고, 3이교에까지 박해가 가해진 것은 당무종의 회창폐불 때 뿐이며, 거기다 불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는 이 박해를 견뎌내지 못하고 중국 내에서 거의 소멸해 버렸기 때문이다.(그래도 네스토리우스파의 경우 [[유목민족]]들에게는 여전히 세가 컸고, 마니교는 민중들 사이로 녹아들어가 각종 [[밀교]]의 기원이 된다.) 탄압의 결과 초기에는 남쪽에 비해 우세했던 북중국 일대의 불교가 크게 쇠락하였고 [[교종]]계열 불교 대신 [[달마]]에서 시작된 [[선종(불교)|선종]]계열 불교가 중국 불교의 주류가 되었다. 사실 선종 역시 달마의 의발을 이은 [[혜가]], [[승찬]]이 북주파불도 견디며 포교하는 등 북쪽에서 발전했으나, 당나라 초기를 거치며 [[혜능]]의 남선종과 대비되어 [[신수]]의 북선종은 점차 세를 잃었다. == 여담 == [[조선]]의 [[정도전]]과 [[태종(조선)|태종]] 등에게 주도된 [[숭유억불]]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다만 어느 쪽이든 불교 사원에 대한 폐쇄, 강제환속 조치 등이 이루어졌으나 대규모 학살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아무리 강경한 반불의식을 가진 유학자들도 적어도 "중놈들을 싹 다 죽여버리죠?" 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이러한 성리학의 불교비판론은 [[남송]]시대 불교세력에게 비난받았던 [[성리학]]의 시초 [[주자(철학자)|주희]](주자)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돌고 도는 박해-- 하지만 무종 때의 한유 등 주희 이전의 유학자들도 불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였다. 다만 중국의 법난은 도교의 주도가 더 크다. 특히 [[당나라]]때는 도교의 흥성으로 불교가 쇠퇴했고, (마치 불교가 중국에서 고구려로 전해졌듯이) [[도사]]들이 [[연개소문]]시대의 [[고구려]]에 파견되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런 분위기속에 고구려의 승려들은 [[백제]]나 [[신라]]로 망명하는데, [[삼국유사]]의 [[연개소문]][* 삼국유사에 따르면, 세[[솥]]발처럼 유,불,선(도)가 균형을 이뤄야하는데 도교가 부족하다면서 도사들을 청했다고 한다. --[[천하삼분지계]]?--]에 비판적인 태도와 심지어 도사들이 당나라의 첩자였다는 등의 설화는 이러한 불교계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불교[[안티]][[방법]]-- [[서유기]]에서 도교와 불교의 대립 그리고 (비교적) 도사=악[* 대개 도사로 위장한 요괴들에게 붙어먹으며(다만 본인들도 요괴가 위장한 것인 줄은 몰랐다.) 승려들을 탄압하고 부려먹는 이들로 나온다.] 승려=선[* 당초 주인공인 손오공만 해도 '''승려'''인 삼장법사를 모시고 있는 데다가 스토리도 삼장법사가 서역으로 불경을 가지고 가는 것이니 어쨌든 승려를 악으로 묘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으로 묘사되는 것 역시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단 서유기가 쓰여진 시기는 오히려 명나라 시기였다. 당나라 때는 오히려 [[노자]]가 국성인 이씨라며 도교를 대단히 숭상하였기 때문이다.] [[우문옹|북주 무제]]는 "이런 짓을 하면 불[[지옥]]간다"라는 승려들의 비난에 "백성들이 편할 수만 있다면 내 몸 불지옥에 가도 상관 없다"라는 위엄찬 태도로 받아쳤다. 과연 후대 불교 설화들에서는 --소원대로-- 북주 무제를 불지옥을 보내서(...) 지옥에서 "불교를 박해하지 말껄.."하고 후회하고 있다는 [[디스]]성 이야기들이 덧붙여진다(...) --불교판 [[불신지옥]]인가-- [[태무제]] 역시 44세에 끔살을 당했고, 무제(35세), 무종(32세), 세종(38세)은 요절했기에 "벌을 받았다"라는 식의 말이 꼭 덧붙여진다. 실제로 무제와 세종의 경우 손자가 [[수나라|다음]] [[북송|왕조]]들에서 찬탈을 당하고 그 왕조에서 [[통일]]이 이어진지라 정말 팔자가 제대로 사나웠다고 볼 수 있다. 세종의 경우 불상을 녹여 화폐인 주통전을 만들게 했는데 세종이 요절하자 당시 세간에선 “주통전이 유통되는한 세종은 지옥에서 구제받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고한다. == 관련 항목 == * [[법난]] [각주] [[분류:불교의 역사]] [[분류:중국의 역사]] [[분류:불교 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