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삼대목'''([[三]][[代]][[目]])은 [[신라]] 후기 [[진성여왕]] 2년(888), 각간 [[위홍]]이 대구화상(大矩和尙)과 함께 편찬했다는 한국 최고(最古)의 [[향가]]집이다. 현재는 소실되어 전하지 않고, 『[[삼국사기]]』 진성여왕 본기에 '삼대목이란 가집이 편찬되었다.'는 기록만 전해진다. == 의미 == [[신라]] 시대를 3등분하여 상대, 중대, 하대의 향가로 분류해서 삼대목이라고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당대에도 현재를 하대로 인식했는지는 불명이다. 신라가 언제 멸망해 언제가 왕조 후기에 해당하는지 미래인들은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당연히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말 그대로 상대, 중대, 하대가 아닌 성골 시대, 무열왕계 진골 시대, 내물왕계 진골 시대 등으로 구분했을 개연성도 있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rp0703&index_id=rp07030115&content_id=rp070301150001&search_left_menu=2|이 곳]]에 삼대목의 뜻과 관련된 다양한 주장이 있다. == 내용 == * 만약 오늘날 발견된다면 경제적, 문학적, 역사적 가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특히 [[고대 한국어]]는 남아있는 자료가 매우 부실해서[* 현대에 와서는 목간이 발굴되어 고대 한국어에 대한 연구가 조금씩 진척되긴 하지만, 목간이라고 해도 그 양이 많지 않으므로 한계는 뚜렷하다.] 재구할 수 있는 단어가 고작 수십여 개일 정도이므로, 이렇게 통시적으로 정리된 문집이 발견된다면 고대 한국어 연구는 발견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도 있다. * 이러한 삼대목의 레어템적인 특성(...)이 학계에서 워낙 유명하여, [[국어국문학과]]나 [[사학과]] 강의에서 삼대목 이야기가 나온다면 담당교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교수님의 세부전공은 고전문학, 고전시가, 국어사 혹은 고대사 전공일 가능성이 높다.]들이 높은 확률로 "삼대목이 친・외가 고택에 묻혀 있는지 찾아보고, '''있으면 조용히 연락해달라.'''" 하고 당부하곤 한다는 일화가 있다. * 이와 관련한 우스갯소리가 하나 더 있는데, 만일 나중에 발견된다면 [[수학능력시험|대학입시생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공시생들,]] [[국어|임용]][[한국사|고시생]]들이 비명을 지를 것이라고. ~~Burn it~~ *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는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 905년 편찬)을 시작으로 칙찬 가집이 등장하였다. [[분류:향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