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 桜井 広大 || || 생년월일 || 1983년 7월 1일 || || 국적 || [[일본]] || || 출신지 || 시가현 [[야스시]] || || 포지션 || [[외야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2001년 드래프트 4위 || || 소속팀 || [[한신 타이거즈]] (2002~2011) || 전 [[한신 타이거즈]] 소속의 야구선수. 포지션은 [[외야수]]로 주로 [[우익수]]를 맡지만, 종종 [[중견수]]를 맡을 때도 있다. 등번호는 51번. 아버지가 야구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키가 170cm에 이르렀을 정도로 신체 조건이 좋았다. 중학교 때 육상 대회에 출전하여 높이뛰기, 투포환 던지기, 100m 달리기에서 현 1위를 차지한 바도 있다. 고등학교는 야구 명문인 [[PL학원고등학교]]으로 진학했으나 부내 폭력 사건을 저질러서 1년간 출장 정지를 먹기도 했다. 고3 때 벤치프레스 120kg, 배근력 280kg, 악력 70kg을 기록했다고 할 정도의 신체능력을 갖고 있다. 2001년 드래프트 4위로 [[한신 타이거즈]]에 입단. 한신이 워낙 PL학원과 악연이 많았던 터라, PL학원에서 고졸 후 바로 한신에 입단한 최초의 케이스이다. 입단 직후부터 2군에서 [[클린업]]을 맡을 정도로 타격면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수비가 불안했다. 더군다나 한신 1군의 외야진은 워낙 쟁쟁한 선수가 많았던 터라 5년 동안 2군에 머물렀다. 07년에 주전들의 부진을 틈타 비로소 1군에 데뷔했다. 괜찮은 [[타율]]과 높은 [[득점권 타율]], 9개의 [[홈런]] 등 어린 선수로는 충분한 성적을 남겼지만, 10월에 [[주니치 드래곤즈]]의 [[타이론 우즈]]와 충돌하면서 왼쪽 무릎을 다쳤다. 부상의 여파인지 08년에는 성적이 썩 좋지 못 하고 2군에 많이 머물렀다. 09년에는 [[중견수]]로도 출장 기회를 많이 얻으면서 1군에 복귀. 비록 [[규정 타석]]은 채우지 못 했지만, 3할을 넘는 [[타율]]과 12[[홈런]], 42[[타점]] 등으로 크게 활약했다. 한신의 두터운 외야진을 뚫고, QT 프론트의 압박[* 용병이라고 데려오는 게 퇴물된 케빈 멘치 정도. 결국 09년에 미국 스카우터를 교체했다.]을 뚫은 눈물 나는 사례다. 2010년에는 개막 주전 우익수로 선발, 팀의 시즌 1호 홈런을 날리는 등 출발은 그럭저럭이었지만 7월 11일,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2군으로 내려간다. 8월 10일에 복귀해서 조지마 켄지, 카노 케이스케와 함께 백투백투백 홈런을 날리지만 팔꿈치가 완치되지 않아 오프시즌에 수술을 받게 된다. 2011년에는 팔꿈치가 낫지 않아서 2군에만 머물다가 10월 9일에 전력외 통보를 받고 12월 2일에 자유계약 공시되었다. 2012년 2월 16일 일본 독립리그인 시코쿠 아일랜드리그Plus의 카가와 올리브 가이너스에 입단하였다. 여기서의 등번호는 0번. 여기에서 2년 연속 베스트나인(지명타자 부문)에 뽑히는 등, 어느 정도 기록을 남겼지만 프로에 돌아가지 못하고 2013 시즌 종료 후 은퇴하였다. 통산 308경기 출장 2할7푼3리 30홈런 116타점. 터프한 외견과는 달리 술, 담배를 전혀 하지 못 한다. [각주] [[분류:일본의 야구 선수]][[분류:야스시 출신 인물]][[분류:1983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