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중국]]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의 인물 == 司馬岐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로 [[사마지]]의 아들이며 [[사마의]]의 큰[[조카]]. 아버지 사마지가 죽자 작위를 이었으며, 그 후 하남의 승으로부터 정위정으로 전임되었다가 진류의 상으로 승진한다. 이 때 양군에 죄인들이 붙잡혔지만 몇 년이 지나도 해결이 안돼서 벌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조방]]은 조서를 내려 사마기의 관할하에 있는 현으로 재판을 옮기도록 하면서[* 그의 아버지 사마지가 뛰어난 법률가였기에 이런 결정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죄수들은 워낙에 조사 과정에서 무엇을 속여야 할지 교묘하게 속이는 놈이었으며, 현에서는 형구를 미리 설치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사마기는 >지금 죄인은 수십 명이고, 그들의 말은 교활하고 거짓이 있어 부합되기 어렵지만 이미 그 정황은 쉽게 판단할 수 있소. 어찌 또 감옥에서 오랫동안 있도록 하겠소? 죄인들이 도착한 다음에 심문을 하니 그들은 모두 감히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는 이가 없었으므로 하룻만에 판결을 끝마쳐 질질 끌던 사건을 해결하니 사마기는 정위로 발탁되었다. 이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조상]]이 [[하안]], [[등양]] 등과 함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남양의 [[규태]]가 조상의 뜻에 어긋나는 말을 해서 체포되어 정위에 구류되었다. 조상 일파인 등양은 당연히 심문을 통해 규태를 무거운 형벌에 처했는데, 사마기가 겁도 없이 등양에게 여러 차례 말하길 >당신은 국가의 정치를 움직이는 대신이고, 왕실의 보좌를 맡고 있습니다. 당신은 왕실의 교화를 돕고 도덕을 완성하여 옛날 사람과 아름다움을 견줄 수 없고 마음 내키는 대로 당신의 사사로운 분한을 발설하고 무고한 사람에게 억지로 형벌을 정했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위급하다는 마음을 갖게 했으니 이것이 그르지 않다면 또 무엇이겠습니까? 이 말에 등양은 부끄러워하면서도 화가 나서 물러갔는데, 이를 본 사마기는 두려움에 떨면서 질병이 생겨 관직에서 떠났다가 결국 1년도 안되어 서른 다섯 살의 젊은 나이로 죽어 아들 [[사마조]]가 작위를 잇는다. 그에 대한 평으로는 [[진교]]전에 한 구절이 나오지만 그 구절이 참 [[안습]]한데, 위에서 보듯 법률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관직을 법률과 관계된 곳에서 지내 이와 관련되어 뛰어난 법을 처리하는 능력에 대한 일화가 2가지나 있지만 법률을 읽지 않은 [[진본]]이 더 우수했다고 나온다. == [[중국]] [[서진]]의 인물 == 司馬機 생몰년도 미상 서진의 황족. 자는 태현(太玄). [[사마소]]의 7남. 청혜정후 사마경이 죽자 그의 후사를 잇게 되었고 265년에 연왕에 봉해져 식읍이 6663호였고 함녕 초에 보병교위가 되었다가 여남군이 그의 봉지로 더해지면서 시중을 겸하게 되었다. 청하군독, 진동장군, 가절을 받고 북평군, 상곡군, 광영군 등 10337호의 봉지를 더해졌다. [[사마염]]이 [[사마감]]과 함께 이 두 명을 위해 덕망과 자질이 뛰어난 사람을 사우로 발탁하면서 이 둘이 나란히 장대해 그들의 길을 도울 사우를 얻어야 했으며, 또한 유학을 취해 의를 행하면서 절약과 검소로 엄정함을 족히 여기게 하고 옛날에 한기[*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신인 한궐의 아들로 진도공 때 상경이 되었다.]가 전소[*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현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와 더불어 떠돌면서 선을 행하기를 좋아한 옛 사례를 들면서 그들에게 그 사람됨을 얻게 해야 한다고 했다. 사후에는 아들이 없어 제왕 사마경의 아들인 사마기가 후사를 계승했지만 팔왕의 난 때 사마경이 패하면서 그 봉지인 연국이 폐지되었다. [[분류:서진의 황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