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독일의 범죄자]] [[분류:독일 국방군/인물]] [[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 [[분류:1925년 출생]] [[분류:1946년 사망]] [[분류:참수된 인물]][[분류:전쟁범죄자/나치 독일]] ||||<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666> {{{#!wiki style="margin: -4px -9px" [[파일:헤롤트.jpg|width=100%]]}}}|||| ||<#666> {{{#FFF 이름}}} ||<(>'''Willy Paul "Willi" Herold'''[br] 빌리 파울 '빌리' 헤롤트|| ||<#666> {{{#FFF 출생}}} ||<(>[[1925년]] [[9월 11일]], [[작센]] 룬체나우 || ||<#666> {{{#FFF 사망}}} ||<(>[[1946년]] [[11월 14일]], [[연합군 점령하 독일]] 볼펜뷔텔 || ||<#666> {{{#FFF 복무}}} ||<(>[[독일 국방군]] (1943년 ~ 1945년) || ||<#666> {{{#FFF 최종계급}}} ||<(>[[루프트바페]] [[공수부대]] [[일병]] || ||<#666> {{{#FFF 주요 참전}}} ||<(>[[이탈리아 전선]] [br] [[몬테카시노 전투]] [br] [[서부전선]] || ||<#666> {{{#FFF 주요 서훈}}} ||<(> [[철십자 훈장|1급 철십자장]] || [목차] == 개요 == 빌리 파울 "빌리" 헤롤트(Willy Paul "Willi" Herold; 1925년 9월 11일 ~ 1946년 11월 14일) [[제2차 세계대전]]에 종군한 [[군인]]이자 [[전쟁범죄]][[범죄자|자]]이다. == 생애 == === 성장기 === 1925년 9월 11일, 빌리 헤롤트는 [[작센]]의 룬체나우(Lunzenau)에서 태어났으며, 청소년기에는 [[굴뚝]] [[청소부]] 교육을 받기도 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그 역시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했었는데, 이후 몇 가지 필수 과정의 이수를 거부하여 1936년에 제적되었고, 대신 국가노동봉사단(Reichsarbeitsdienst, RAD)에 배치되었다. === 군 복무 === 1943년 9월 30일, 18세가 된 헤롤트는 [[입대]]를 해야 했으며, 이를 위해 [[독일 공군(나치 독일)|루프트바페]]의 [[공수부대]]에 지원했다. 헤롤트가 배치된 공수[[연대(군대)|연대]]는 [[공군]] 제1공수[[사단(군대)|사단]] 예하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됐고, 그는 [[몬테카시노 전투]]와 살레르노 전투를 겪으며 [[영국 육군]]의 [[전차]] 2대를 격파하는 등 용맹하게 싸워, [[철십자 훈장|1급 철십자장]]을 [[병(군인)|병]] 신분으로 받는 등 나름대로 모범적인 군생활을 하고 있었다. 1945년 3월, [[서부전선]]으로 재배치된 그의 부대는 연합군의 공격에 계속 후퇴했고, 한 달 뒤인 4월 초에 [[일병]]이던 그는 부대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탈영]]하였다. 도망다니던 와중에, 그로나우와 바드 벤트하임 근처에서 헤롤트는 1대의 유기된 공군 [[승용차]]를 발견하는데, 여기에서 공군 공수 [[군사특기|특기]]의 [[대위]] [[계급장]]과 각종 [[훈장(상훈)|훈장]](1급 철십자장, 공수부대휘장, [[노르웨이 전역#s-3.2.5|나르비크 전투]]와 [[크레타 전투]] 참전장 등)이 달린 [[군복]] 한 세트를 입수한다. 이 때부터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공군 비행복[* 당시 독일 공군은 비행복으로 고안된 이 피복을 일반 전투복으로도 지급했다.]을 벗어버리고, 대위의 [[근무복]]과 [[정모(의복)|정모]], [[코트]]를 착용하고 다니며 [[장교]]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이미 공군에서 1년 반 가량을, 그것도 제복의 주인과 같은 공군 공수부대원으로 근무해 봤던 그로선 장교 흉내를 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 장교 사칭 및 범죄 행각 === 단순히 장교임을 사칭하며 여기저기 도망다니거나 하는 정도였다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는 대위 행세를 하면서 주변에 돌아다니던 다른 공군 탈영병들 및 낙오병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이 때부터 점점 걷잡을 수 없는 길로 가기 시작했다. 당시엔 탈영 뿐 아니라 단순 낙오 등도 [[군사경찰|헌병]]들이 탈영으로 간주해 즉결처분하는 게 일상적이었기에, 장교를 사칭하는 헤롤트의 곁에 있으면 안전이 보장될 것이라 여긴 그들은 두말않고 헤롤트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모은 병력으로 자칭 [[아돌프 히틀러]] [[총통]]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는 특수 임무부대, "헤롤트 특임대"를 사칭하던 헤롤트는 4월 11일에 아셴도르퍼모어(Aschendorfermoor) 범죄자 수용소에 도착한다. 이 수용소의 수감자들은 대부분 독일 육군의 탈영병 등이었고, 헤롤트는 여기서 처음으로 전쟁 범죄를 저지른다. 바로 90명의 수감자를 총통의 특명을 사칭하여 살해한 것이다. 얼마 뒤, 연합군의 [[공습]]으로 수용소가 파괴되어, 수감자와 헤롤트 특임대원들 일부는 사망하거나 도주했다. 헤롤트는 이 공습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았고, 남아 있던 부하들을 모음과 동시에 일부 수감자도 자기 권한으로 석방, 자기 부하로 편입시켜 수용소를 버리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몇몇 마을을 돌아다니며 [[백기]]를 걸었다는 이유로 [[농부]]를 [[교수형]]에 처하고, 다섯 명의 [[네덜란드]]인을 [[스파이]]라는 이유로 처형하는 등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그러다가 결국 정체가 들통나 아우리히(Aurich)의 현지 육군 지휘관에게 체포되었고, 헤롤트가 자신이 장교를 사칭했음을 자백하여 관할 지역인 노르덴의 [[크릭스마리네]] 군사법원으로 압송되었다. 그러나, 종전을 앞둔 와중의 혼란 덕에 헤롤트는 어이없게도 석방되었다. === 체포 및 처형 === 헤롤트는 [[항구]] 도시이자 [[해군]] 주둔지인 [[빌헬름스하펜]]으로 향했고, 입대 전 생업으로 삼기 위해 교육 받았던 굴뚝 청소부 일을 하며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5월 23일, [[빵]]을 훔치던 중 군정을 실시하기 위해 주둔중이던 [[영국 해군]]에 [[체포]]되었고, 수사 과정에서 그가 앞서 언급한 학살극을 지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국 육군 [[군사경찰|헌병]]에 인계된 헤롤트는 1946년 2월 1일, 12명의 부하 탈영병들과 함께 자신이 최초로 학살을 저질렀던 아셴도르퍼모어 수용소 부지로 이송되어, 그 곳에서 학살한 이들의 유해를 도로 파내는 작업에 동원됐다. 이 과정에서 195구의 유해가 발굴되었고, 올덴부르크로 다시 이송된 헤롤트와 부하들은 H. 브라운 영국 육군 [[대령]]에게 [[재판(법률)|재판]]을 받았다. 8월 29일, 최종적으로 기소된 헤롤트와 6명의 부하들(카를 하게발트(Karl Hagewald), 베른하르트 마이어(Bernhard Meyer), 카를 쉬테(Karl Schütte), 요제프 오일러(Josef Euler), 헤르만 브란트(Hermann Brandt), 오토 파엘러(Otto Paeller)) 중 1명을 제외한 헤롤트 외 5명은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그 해 11월 29일 볼펜뷔텔(Wolfenbüttel) [[교도소]]에서 [[단두대]]로 [[참수형]]에 처해졌다. 헤롤트는 처형당할 당시 불과 21세였다. == 의의 == [[범죄]] 역사상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든, 상당히 황당하면서 특이한 범죄 이력을 갖고 있다. 헤롤트 본인은 어려서부터 사고를 치거나 전과가 있는 몸도 아니었고, 공군에 입대해서는 병 신분으로 받기 힘든 1급 철십자장을 받는 등 꽤 모범적으로 군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평범한 인물이 "제복 효과"로 인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전쟁]]의 광기와 결합되면 얼마나 큰 비극을 낳는지를 보여주는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 각종 매체에서의 등장 == * [[영화]] [[더 캡틴]]이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