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ktor Frankl. 우리나라에서는 영어 발음인 '빅터 프랭클'로 알려져 있다. [[분류:1905년 출생]][[분류:1997년 사망]] 1905년 3월 26일 출생 - 1997년 9월 26일 "삶이 의미가 있는지 묻는 대신, 매 순간 의미를 부여하는 건 우리 자신이다." [[오스트리아]] [[빈(오스트리아)|비엔나]] 출신의 정신과 의사로, 초기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알프레트 아들러]]의 심리학을 따르다가 후에 독창적인 길로 가게 된다. [[빈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레지던트를 마친 후 1937년 개인병원을 냈지만, 1938년 나치의 오스트리아 인수가 시작되자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리안"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을 금지당한다. 유대인을 받던 로스차일드 병원으로 간 그는 의도적으로 잘못된 진단을 하여, 나치 안락사 프로그램에 의해 몇몇 환자들이 안락사 되는 것을 막았다. 이후 1941년에 틸리 그로슬러와 결혼하게 된다. 그렇지만 1944년 10월 19일 그의 일생을 바꾸게 되는 [[아우슈비츠]]로 끌려가게 되고, 1945년 4월 27일 미군에 의해 풀려나게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여동생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사망하고 말았다. 1946년 자신의 경험담을 책으로 출판한다. 처음 제목은 Trotzdem Ja Zum Leben Sagen: Ein Psychologe erlebt das Konzentrationslager 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만하다고 말할수 있다: 한 심리학자의 강제수용소 체험에서' 라는 제목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Man's Search for Meaning, 한국에선 '[[죽음의 수용소에서]]'로 제목이 바뀌게 된다. 이후 빅터 프랭클은 나치의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심리학자로서 사람들의 대처와 반응을 관찰한 것을 토대로 [[의미치료]](logotherapy)를 확립하기 위해 일생동안 노력한다. 1955년 [[빈 대학교]]에서 신경정신과 교수직을 맡았고, 일생동안 49개 언어로 된 32권의 책을 썼다. 미국 정신과 협회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는 종교와 정신과에 대한 중요한 공헌을 인정해 1985 년 오스카 피스터 상을 프랭클에게 수여했다. 1997년 심부전으로 사망했고, 비엔나 중앙 묘지 (Zentralfriedhof)의 유대인 구역에 영면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Viktor_Frankl| 빅토르 프랑클 (위키백과 영어문서)]]] [[분류:심리학자]][[분류: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