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왈라키아 공]] [[분류: 바사라브 가문]] [[루마니아어]]: Vlad Dracul (블라드 드라쿨) 생몰: 1395년 이전 출생~ 1447년 사망 재위: 왈라키아 공(1436년 ~ 1442년, 1443년 ~ 1447년) [목차] == 개요 ==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작위)|공작]]. 바사라브 가문의 드라큘레스티 혈족이다. 위대했던 [[미르체아 1세]]의 서출 아들이자, [[드라큘라]]의 모델로 유명해진 [[블라드 가시공|블라드 드라큘라]], 즉 '[[블라드 가시공]]'의 아버지. [[오스만 투르크]]를 없애기로 맹세한 [[드래곤 기사단]]의 일원이자, [[오스만 투르크]]의 도움을 통해 [[왈라키아 공국]]의 [[프린스|보이보드]]가 되었던, 모순적이고 양면적인 인물. 용의 사악함에 빗대어서 악마공(惡魔公)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고 하나(실제로 현대 루마니아어에서 'Dracul'은 '악마'를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설득력은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블라드 2세 자신은 딱히 '사악' 하다고 볼 수 있는 행적을 남기지 않았을 뿐더러, 드래곤 기사단에 가입하면서 지기스문트로부터 드라쿨이라는 별명을 하사받은 것인데 만약 악마공이라고 번역하는 것이었다면, 지기스문트는 자신의 신하이자 한 기사단을 맡는 기사단장이자 공국의 군주에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욕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의 형제들은 총 3명이 있었는데, 모두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이 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공작에 오른 셈. 유일한 적자인 첫째형은 미카엘 1세로 공작이 된지 3년만에 [[오스만 제국]]에게 패해서 전사하고, 서출인 둘째 형 라두 2세는 큰삼촌의 아들, 단 2세와 7년간 4번에 걸쳐 공작이 되었다가 쫒겨나기를 반복하며 싸우다가 전사한다. 역시 서출인 세번째 형제는 동생인 알렉산드로 1세로 이 동생이 6년간 집권한 후에, 드디어 블라드 2세가 공작에 오르게 된다. == 생애 == === 즉위 이전 === '위대한 [[미르체아 대공]]'의 서출 아들로 탄생. 아버지인 [[미르체아 1세]]가 [[오스만 제국]]에게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받은 피해 때문에 [[왈라키아 공국]]을 포기하고 [[헝가리 왕국]]으로 도피한 1395년, [[헝가리 왕국]]에 볼모로 남겨지면서 당시 젊었던 헝가리 왕, [[지기스문트]](28살)와 만난다. 이후로 그는 부다페스트, 뉘렘베르그등의 [[헝가리 왕국]]이나 [[신성 로마제국]]의 영토 안에서 지내며 교육을 받게된다. 1418년, 아버지, [[미르체아 1세]]가 64세의 나이로 죽는다. 아버지가 죽고 2년 후, 단 2세가 반란을 일으키고 알불(Albul)과 우트메스(Utmeș)같은 많은 [[보야르]]들이 이에 가담한다. 거디다가 단 2세는 [[오스만 제국]]측의 원조를 받기로 약속까지 하게된다. 결국 미카엘 1세는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자리를 차지하려던 다니스티 일족의 단 2세와의 싸움에서 패해 죽는다. 이후로 자신의 서출 형인 라두 2세와 사촌 형제인 단 2세와의 끝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1423년 그는 [[지기스문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부다페스트를 떠나 폴란드로 가려고했지만 국경을 넘기 전에 잡히고 만다. 1423년부터 1429년까지 [[동로마 제국|로마 제국]]에 가 있었지만, 당시의 [[동로마 제국]]이 자신을 왈라키아 공으로 만들어주지 못할 것이라 판단, 헝가리로 돌아갔다. 이 사이인 1425년, 첫째 아들이자 서출인 [[블라드 수도공]](1425 ~ 1495)을, 1428년에 둘째 아들이자 적출인 미르체아 2세(1428 ~ 1447)를 낳는다. 1431년 [[지기스문트]](64세)의 후원을 받으며 [[드래곤 기사단]]에 들어가게된다. 당시 [[드래곤 기사단]]에는 아라곤의 알폰소 5세, 리투아니아의 대공작, 비타우타스 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기스문트]](64세)는 블라드 2세로 하여금 [[왈라키아 공국]]을 차지하도록 돕지는 않았으며, 결국 자신의 배다른 동생인 '알렉산더 1세 알데어'가 [[몰다비아 공국]]의 도움을 받아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이 된다.(1431년) 이 해 훗날 드라큘라라고 불리게 될, [[블라드 가시공]](1431 ~ 1476)이 태어난다. 이 후, 블라드 2세는 당시 [[헝가리 왕국]]에 속해있던 [[트란실바니아]]로 간다. 1432년,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이 된 배다른 동생인 '알렉산더 1세(생몰년: 1397 ~ 1436, 40세, 통치기: 1431 ~ 1436, 6년간)'는 [[오스만 제국]]의 봉신이 되기위해 [[에디르네|아드리아노플]]에 간다. 이 때 블라드 2세는 쫒겨났던 [[보야르]]들과 함께 [[왈라키아 공국]]에 쳐들어가려 했으나, 실패한다. [[지기스문트]](67세)는 1434년에야 블라드 2세로 하여금 무기를 사고 군사를 규합하도록 허락한다. 1435년, 알렉산더 1세(39세)는 병들어 회복하지 못하고, 이 때 [[왈라키아 공국]]으로 쳐들어가지만, [[오스만 제국]]에게 도움을 받은 알렉산더 1세(39세)에게 다시 패배하고 만다. 결국 1436년 알렉산더 1세(40세)가 죽고 나서야 그는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으로 취임하게된다. === 재위기 === 1436년 왈라키아 공이 되었으나, 1437년 [[지기스문트]]가 70세로 사망하자, 변심하여 [[오스만 투르크]]에 신종하였다. 이후 1442년까지 7년 정도의 1차 통치 후, 네 명의 아들 중 차남 미르체아 2세에게 공작위를 물려줬으나, 그해에 [[후녀디 야노시]](36살)의 도움을 받은 다니스티 가문의 바사라브 2세(단 2세의 첫째 아들)에 의해 [[왈라키아 공국]]을 뺐기게 된다. 이 시기인 1437년에 막내아들인 [[라두 3세]](1437 ~ 1475)를 낳는다. === 복위기 === 1443년, [[오스만 제국]]에게 훗날 [[블라드 가시공]]이 되는 셋째(13살)와 [[라두 3세]]가 되는 넷째 아들(7살)을 포로로 보내면서 도움을 받아 1년 후인 1443년에 다시 왈라키아 공이 되어 4년간의 2차 통치기를 시작한다. 이 2차 통치시기인 1444년, [[추기경]] 체자레니는 대오스만 동맹결성을 촉구하였고 여기에 호응한 [[교황령]], [[헝가리 왕국]], [[폴란드]], 부르고뉴, [[베네치아 공화국|베네치아]], [[제노바 공화국|제노바]]의 연합군이 결성되었다. 이를 헝가리 십자군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왈라키아 공국]]도 참전하게 되었다. 당시 왈라키아 공이던 [[블라드 드라쿨|블라드 2세]]는 이 원정을 막으려 지도부를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왈라키아로 물러났다. 이 원정에 참여한 것은 블라드의 아들이던 미르체아 2세(17살)였다. 하지만 헝가리 십자군은 안타깝게도 [[바르나 전투]](1444)에서 [[오스만 제국]]에게 패하게 되고, 왈라키아를 거쳐 퇴각하려고 한다. 이 시점에 [[블라드 드라쿨]]과 그의 아들 미르체아는 퇴각하던 후냐디를 투옥시켰다가 풀어주는데 그 이유는 확실치 않다. 단지 바르나 전투에서 오스만군에 대한 공격을 주장하고 직접 지휘를 맡았던 것이 후냐디였기 때문에 [[블라드 드라쿨]]이 후냐디의 책임을 물으려 했던 것이라고 생각될 뿐이다. 여담으로 이 사건이 후일 블라드 드라쿨의 아들, [[블라드 가시공]]의 인생을 질곡으로 밀어넣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 후로 3년 후, 차남(20살)과 함께 [[왈라키아]]의 귀족 계급인 [[보야르]]들에게 암살당한다. 이때 첫째 아들인 [[블라드 수도공]]은 22살, 셋째 아들 [[블라드 가시공]]은 17살, 막내 아들 [[라두 3세]]는 10살이었다. == 자손 == *장남: [[블라드 수도공|수도공 블라드]] *차남: 미르체아 2세 *삼남: [[블라드 가시공|가시공 블라드]] *사남: [[라두 3세|미남공 라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