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원삼국시대]] ||||<table align=right><table width=400> '''{{{+3 북옥저 (北沃沮)}}}[br](치구루(置溝婁))''' || |||| [[파일:external/www.gnedu.net/p6_01.jpg|width=100%]] [br]▲옥저와 주변국 지도 || || '''존속기간''' ||기원전 3세기 ~ 244년(기원후 3세기)[br](기원전 3세기)[* 고고학으로 확인했을 경우.]|| || '''위치''' ||[[북간도]][br][[연해주]] 남부 지방|| || '''군주''' ||[[군장(동음이의어)|군장]] (읍군, 삼로)|| || '''종족''' ||[[예맥]][* [[삼한]], [[여진]] 등] || || '''언어''' ||[[고대 한국어]]|| || '''사건''' ||[[주몽]]에 의해 복속|| || '''성립 이전''' ||부족사회|| || '''멸망 이후''' ||?[* 고구려로 다수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차] [clearfix] == 개요 == 북옥저는 개마산 동쪽에 있었던 한국의 옛 나라로, 치구루라고도 한다. 후에 [[주몽]]에 의해 [[고구려]]에 흡수되었다. == 기록 == 《후한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북옥저가 있는데 일명 치구루(置溝婁)이다. 남옥저에서 팔백여리를 간다. 그 풍습이 모두 남옥저와 같다. 경계는 남으로 [[읍루]]이고, 읍루 사람이 배 타는 것과 노략질을 즐기니, 북옥저가 이를 두려워하여 늘 여름에는 바위구멍에 숨어있다가 겨울에 이르러 뱃길이 통하지 않으면 아래로 내려와 읍락에서 살았다. 한 늙은 노인이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에서 베옷을 하나 얻었는데 그 모양은 보통사람 옷과 같으나 양 소매가 삼장이나 되었다. 또 그는 말하기를, 언덕 위에서 보니 한 사람이 부서진 배를 타고 오는데 목 복판에도 얼굴이 하나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이 서로 통하지 않아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죽었다. 또 말하길 바다 가운데에 여인국이 있어 남자가 없다. 혹 전하기를 그 나라에는 신의 우물(神井)이 있어 이를 보면 쉽게 아이를 낳는다. [* 위지(魏志)에 관구검이 왕기를 파견하여 구려왕 '궁'을 쫓아 옥저 동쪽 경계에 이르러 늙은 노인에게 물어 전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남옥저]]와 320km 정도[* [[서울]]에서 한 [[부여]] 정도 거리] 떨어져있었고 [[읍루]]에게 상당히 당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