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우즈베키스탄의 세계유산)] [[파일:external/mujiza.ucoz.ru/15468.jpg]] [[파일:CB3BFB5B-C7D7-4D8C-AF78-EB72F03613EB.jpg]] 볼로 하우즈(Bolo Haouz) 모스크 ||<-3><table align=right><bgcolor=#000> '''[[유네스코|{{{#fff 유네스코}}}]] [[세계유산|{{{#fff 세계유산}}}]]''' || ||<-3><bgcolor=#fff>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 ||<|4> 이름 || 한국어 || 부하라 역사 지구 || || 영어 || Historic Centre of Bukhara || || 러시아어 || Исторический центр города Бухара || || 프랑스어 || Centre historique de Boukhara || |||| 국가·위치 ||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주 || ||<-3> [include(틀:지도,장소=Ark of Bukhara, 너비=100%, 높이=224px)] || |||| 등재유형 || [[세계유산#s-3.1|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93년]][* 2016년 수정] || |||| 등재기준 || (ii)[*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iv)[*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vi)[*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 |||| 지정번호 || [[https://whc.unesco.org/en/list/602|602]] || [[파일:external/www.airpano.ru/mosque_big.jpg|width=500]] 부하라 구시가 [[파일:external/club.foto.ru/1721515.jpg|width=500]] 부하라의 이미지 중 하나인 육중한 아르크의 성벽 * [[우즈베크어]] : Buxoro * [[타지크어]] : Бухоро * [[러시아어]] : Бухара́ * [[영어]] : Bukhara [목차] [clearfix] == 개요 == [[우즈베키스탄]] 중부에 위치한 [[도시]]. 부하라 주의 [[주도(행정구역)|주도]]. == 상세 == 부하라는 고대부터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도시이다. 그리스계 [[박트리아]] 왕조 시절의 금화가 출토되었으며 [[사마르칸드]],[[발흐]]와 함께 불교가 매우 융성했던 지역이었다. 고대에는 인도 쿠샨 왕조와 중국 사이의 중개 무역으로, [[사산 왕조]]와 튀르크족 사이의 무역으로 번영을 누렸으며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와 [[마니교]]의 영향도 많이 받은 국제도시였다. 무역만 했던 것은 아니고 기원원년 전후로 인도의 관개 농업 기술을 도입하여 양질의 과일을 많이 생산했다. 이슬람화 이후에는 중세 초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 중 하나로 명성을 떨쳤는데, 부하라 시민들에게 물어보면 이슬람에서 가장 권위있는 [[하디스]] 편집본인 사힛 알 부하리가 바로 부하라 출신 학자 무함마드 알-부하리(부하라 사람 무함마드)에 의해서 수집되고 편집되었다고 자랑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특히 [[사만 왕조]] 시절에 부하라의 번영은 절정에 달하였다 전해진다. 한 때 몽골군의 의해 도시 인구가 전멸했던 적도 있지만, 탁월한 지리적 입지 덕분에 다시 복구되었다. [[티무르 제국]]이 몰락한 뒤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부하라 칸국]]의 실질적인 [[수도(행정구역)|수도]]이기도 했다. [[사마르칸트]], [[히바]]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은 물론 [[중앙아시아]]를 대표하는 역사 도시이기도 하다. 위 사진에 보이는 아르크(성)과 구시가지는 완벽에 가깝게 보존되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부하라는 원래 성곽 도시였지만, 현재 도시 성벽은 일부만 남아 있다. 인구 약 26만 명 규모의 도시이지만, 구시가지가 그렇게 크지는 않아 전부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다. 과거 에미르가 살던 아르크나 부하라의 랜드마크인 칼론 미나렛, 구시가지의 중심 랴비하우즈를 둘러싼 수많은 모스크와 수백 년 된 가옥 등 볼거리가 즐비하다. 주민 중에는 [[타지크|타지크인]]이 많이 산다. 부하라는 [[사마르칸트]]와 함께 역사적으로 타지크/페르시아인이 주도한 도시였고 현재에도 타지크인이 다수이기 때문에 여전히 타지크어가 일상생활에 널리 쓰인다. 부하라 주민의 약 90%가 타지크어를 모어로 쓰며, 도시 곳곳에서 타지크어를 많이 들어볼 수 있다. 애초 [[소련]] 시대에는 전부 한 나라였으므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지금도 국경선으로 민족이 딱 나뉘지 않는다. 도시 자체는 등장하지 않지만 역사 만화 [[신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 부하라 일대의 반유목, 목축 공동체들이다. === [[부하라 유대인|부하라의 유대인]] === 부하라는 과거 16~18세기동안 중앙아시아 지역 [[유대인]]들의 중심지였다. 페르시아가 계속 사막화되면서 점점 빈곤해지고 그 와중에 [[아르메니아인]]들이 페르시아에서 유대인들의 경제기반을 잠식하자 [[페르시아계 유대인]]들의 3분의 1 가까이가 부하라로 이민을 간 것으로 추정된다. [[부하라 칸국]]에서는 새로 시나고그를 건립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새로 [[마스지드]]를 짓는 일을 후원한 후 그 부속시설로 시나고그를 함께 짓는 방식으로 예배 장소를 확보했다. 이들은 새로 이주한 부하라에서 무슬림인 척 행세할 때가 많았으며, 통치자의 성향에 따라 대놓고 유대인으로 살 때도 있었다. 대게 무슬림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집 안에서는 몰래 유대교를 믿었다고 한다. 이들은 우즈베크어 대신에 타지크어 방언을 사용한다. [[소련]]에서 유대인의 이스라엘 이민을 허용한 이후 대다수가 [[이스라엘]]로 건너갔으며, 소련 붕괴 이후에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독교 선교단체의 후원금으로 미국으로 이민갔다. 이스라엘에는 부하라 유대인 후손이 10~12만명 정도 있으며, 미국에는 뉴욕 [[퀸즈]]를 중심으로 5만명 정도가 거주한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전체를 통틀어 1500명 정도 되는 부하라 유대인이 남아 있으며 ~~우즈벡이 이슬람권에 해당되는 국가인 사정상 이들은 러시아인 이름을 쓰고 러시아인인 척 하면서 '''아주''' 조용히 지낸다고 한다.~~[* 사실 우즈베크인들은 유대인들이랑 크게 관계가 나쁘진 않고, 그냥 보통이다. 심지어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은 이스라엘과 외교를 맺고있기도 하다. 다만 국민들 중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부하라에는 150명 정도만 남아있다. 유대인 묘지나 [[시나고그]]가 구시가지에 남아 있다. 원래 중세 초에 중앙아시아에서 유대인이 제일 많았던 도시는 [[사마르칸트]]였지만, [[칭기즈 칸]]의 군대가 사마르칸트를 파괴하는 와중에 전멸한 후 맥이 끊겼던 듯 하다. 근세 사마르칸트에도 유대인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부하라 유대인과 같이 16~18세기에 페르시아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의 후손이다. == 교통 == 도심부 근처에 부하라 국제공항이 있고,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교통|시 남동쪽 외곽 코곤이라는 도시에 부하라 역이 있다]].[* 다만, 코곤도 부하라 주에 있는 도시이긴 하다. 코곤에서 부하라까지는 10여km, 20~30분 거리이다.] 타슈켄트에서 부하라까지 이동할 때는 주 4회 운항되는 [[우즈베키스탄항공]] 국내선 혹은 타슈켄트 역에서 철도(일 8~10여편, 그 중 2편은 아프로시욥이다)로 이동할 수 있다. 고속버스도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동할 때는 [[택시]]를 이용하기도 한다. ~~택시비랑 버스비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부하라 국제공항에서는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크라스노다르 로 가는 국제선이 운항된다. 그 외 국가로 이동하려면 [[타슈켄트 국제공항]]을 이용하자. [[분류:옛 수도]] [[분류:우즈베키스탄의 도시]] [[분류:우즈베키스탄의 세계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