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유엔 사무총장)] [[파일:external/ncc.phinf.naver.net/11.jpg|width=200]] '''Boutros Boutros-Ghali''' '''بطرس بطرس غالى''' [[1922년]] [[11월 14일]] ~ [[2016년]] [[2월 16일]] [목차] == 개요 == 1992년 1월 1일부터 1996년 12월 31일까지 5년간 제6대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한 인물.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다. == 생애 == [[1922년]] [[이집트]] [[카이로]]의 [[콥트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집트의 총리인 부트로스 갈리의 손자이다. 이름인 부트로스는 [[아랍어]]로 [[베드로]]라는 뜻. 1946년 [[카이로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 대학교에서 [[국제법]]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49년부터 [[카이로 대학교]]에서 [[국제법]]과 국제 관계를 강의하는 교수로 지내다가 [[1977년]]부터 [[공무원]]과 [[외교관]]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77년에 [[사다트]]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동행하였고, 이에 대해 이집트 외무장관인 이스마일 파미가 항의하면서 외무부 장관직을 사퇴하자 그 후임으로 이집트 외무장관 자리에 취임하였다. 이집트 외무장관으로서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분리/평화정책을 추진하면서 국제적 명망을 얻었다.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의 산파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국제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능동적으로 개입하였고, 1990년에는 [[넬슨 만델라]]의 석방에 기여하였다. 1991년 12월 3일 [[아프리카]]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재임 기간(1992년 1월 1일~1996년 12월 31일) 동안 [[미국]]과 여러 차례 충돌하였고, 결국 [[미국]]의 연임 거부권으로 인하여 역대 사무총장 중에서는 '''유일하게''' 단임으로 머물고 말았다. 유엔 내부에서는 부트로스 갈리 전 총장에 대해 "미국에 맞서 유엔의 독립성을 높였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반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는 혹평"이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290087#csidxcb0e59e5cf8413da717dd7da6a3d13f|엇갈린다]]. 유엔 사무총장 퇴임 이후 1997년부터 2001년까지 프랑코포니 사무총장을 지냈다. 정치학과 국제 사건에 관한 저서를 많이 썼고, 특히 논문은 100편을 넘게 썼다. 약 20개가 넘는 나라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2016년 2월 16일 향년 94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 [[분류:1922년 출생]][[분류:2016년 사망]][[분류:이집트의 정치인]][[분류:법학자]][[분류:UN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