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후궁견환전 후궁일람)] ||<-2><tablebordercolor=#800000><#800000> {{{#FFD700 '''后宮甄嬛传 등장인물'''}}}[br]{{{+2 {{{#FFD700 '''부찰귀인'''}}}}}}[br]{{{#FFD700 '''부찰 의흔'''}}} || ||<-2><#FFFFFF>{{{#!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견환전_부찰귀인.jpg|width=100%]]}}}|| ||<#800000> {{{#FFD700 '''이름'''}}} ||<#FFFFFF>'''부찰 의흔''' || ||<#800000> {{{#FFD700 '''배우'''}}} ||<#FFFFFF>조진 || ||<#800000> {{{#FFD700 '''민족'''}}} ||<#FFFFFF>만주족 정백기 || ||<#800000> {{{#FFD700 '''입궁일'''}}} ||<#FFFFFF>[[9월 11일]] || ||<#800000> {{{#FFD700 '''거주지'''}}} ||<#FFFFFF>연희궁[* [[안릉용]]과 같이 거주했다.] || ||<#800000> {{{#FFD700 '''가족관계'''}}} ||<#FFFFFF>남편: [[옹정제(후궁견환전)|옹정제]] || ||<#800000> {{{#FFD700 '''파벌'''}}} ||<#FFFFFF>황후파 || ||<|2><#800000> {{{#FFD700 '''품계'''}}} || ||<width=80%><rowbgcolor#FFFFFF> 부찰귀인 || [목차] == 소개 == [[후궁견환전]]의 등장인물. 드라마에서의 이름은, [[바이두 백과]]엔 부찰 의흔이라고 하는데 원작 소설에 의흔이라는 후궁은 나오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두 양제(사후 념비로 추존됨)로 나오는 두패균이 이 인물이다. 1부에서만 나오는 탓에 품계변동은 없다. 거주는 [[하동춘|하상재]], [[안릉용]]과 같은 연희궁이다. 만군기 출신으로 부찰씨는 만주 팔대성씨 중 하나인데다 [[팔기군]] 중에서도 상3기에 속하는 정백기 소속이다. 후속작인 [[후궁여의전]]에 등장하는 효현순황후 [[부찰 랑화]][* 다만 이쪽은 양황기 소속이다.]와 철민황귀비 부찰 제영도 부찰귀인과 같은 가문 출신. == 작중 행적 == 첫등장은 3화, [[견환]]과 같은 시기에 간택된 신입 후궁들이 모두 모여 [[오라나랍 의수|황후]]와 [[연세란|화비]]에게 첫 문안 인사를 드리는 장면에서 [[하동춘|하상재]]가 화비를 까는 말을 걸자 대답조차 하지 않고 귀찮아하는 모습을 보이며 첫 선을 보인다. 그 전에도 견환을 [[심미장]]과 더불어 귀인으로 삼자니 만군기에는 귀인이 부찰씨 한명 뿐이라 곤란하다든가, 하상재의 처소를 결정할 때 부찰귀인 옆으로 보내라는 등, 다른 등장인물들이 언급하는 장면으로는 종종 나온다. 이처럼 부찰귀인은 별로 비중은 없었고, 중간에 운 좋게 회임을 했으나[* '''[[옹정제(후궁견환전)|황제]]가 오랜만에 딱 한 번 찾아갔는데 그때 임신했다.'''] 후궁들이 다들 꽃구경을 나온 날에 그만 유산해버렸다. 이는 [[안릉용]]의 짓이고,그 뒤에는 [[오라나랍 의수|황후]]가 있었다. [[옹정제(후궁견환전)|황제]]가 부찰귀인에게 향이 진한 화장분을 선물했는데, 황후의 애완 [[고양이]] 송자가 그 향을 맡고 날뛰는 바람에 그대로 고양이가 부찰 귀인의 배에 부딪치고 그 뒤에 덩달아 넘어진 견환의 목과 팔을 할퀴고 도망쳤다. 이렇게 유산한 후, 그저 그런 후궁으로 지내다, 총애를 잃은 완빈 시절의 [[견환]]에게 화풀이를 하다 견환이 총애를 되찾고 조금 갈구자[* [[한고조]]의 아내인 [[여후]]가 태후가 된 뒤 자신에게 불경하게 대한 후궁인 척부인의 사지를 자르고 눈을 멀게 해 가둬 놓고 인간 돼지로 불렀다는 충격적인 설화를 들려줬다.] 멘탈이 말 그대로 개박살이 나면서 퇴장한다. 냉궁에는 가지 않고 자기 처소에 갇혀 치료를 받는 듯하다. 이후 [[연세란|화비]]나 [[이정언|제비]], [[심미장]] 등 죽은 비빈들이 추존될 때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걸로 보아 아직도 정신이 되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목숨은 부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옹정제(후궁견환전)|옹정제]]가 죽은 이후에는 자녀가 없으므로 절로 들어가는 것이 맞으나 그 정신상태로는 절에서 수행하라고 할 수 없으니 그냥 자기 처소에서 치료만 받는 게 분명하다. == 성격 == [[견환]]과 [[안릉용]]에게 '''열등감'''을 드러내는 모습이 꽤 보인다. 먼저, [[견환]]의 경우, 유산했을 때 [[조금묵|조귀인]]이 견환을 밀쳐버리는 바람에 견환이 부찰귀인을 넘어뜨리고 같이 넘어졌는데, 다른 이들은 견환이 아이를 구하려했다고 넘어갔지만 부찰귀인은 견환을 증오하게 된다. 게다가 하필 그 타이밍에 견환의 회임사실이 알려진지라 유산을 했음에도 [[오아 성벽|태후]] 등에게 뒷전이 되어버린 탓도 있었다. 견환의 아이가 자기 아이를 죽였다고 생각하며 견환에게 열등감을 표하는데, 나중에 유산하고 총애를 잃은 견환을 대로에 꿇어앉히고 벌을 받도록 할 때에 그 속마음이 제대로 나온다. 이런 심리는 자기 언니 [[순원황후|순원]]의 아이가 자기 아이를 죽였다고 생각한 [[오라나랍 의수|황후]]의 피해망상과 맥이 통하는 데가 있다. 자신의 가문이 더 좋은데 총애는 견환보다 못하고, 회임을 해서 앞서나 했는데 또 역전됐다고 생각해서 더 그런 건지도 모른다. [[안릉용]]의 경우, 총애를 두고 열등감을 드러내는 모습이 꽤 보인다. 대놓고 깐 적도 많다. 사실 부찰귀인은 견환이 처음 입궁한 인입 시절에는 [[심미장]]과 더불어 가장 총애를 많이 받은 후궁이었다. 총애를 잃은 것까지는 좋은데, 안릉용을 황제가 찾을 때마다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안릉용의 수석 시녀 보견이 학을 뗄 정도이다. 하긴, 자기 집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미한 애가 자기는 승진 한 번 못할 때, 어느새 자기와 똑같은 귀인 자리까지 올라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부찰귀인은 일단 만주 팔대 성씨 중 하나인 부찰씨란 명문 가문 출신이고, 그 만큼 가문부심도 상당히 가지고있다. 가문이 좋다고 날뛰는 [[하동춘|하상재]]를 견제하기 위해 [[연세란|화비]]가 부찰귀인과 하상재를 같은 궁에 배속시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부찰귀인은 거기에 자부심이 대단한 듯 한데, 그 전에도 무시하긴 했지만 안릉용이 총애를 얻자 그의 가문을 한미하다고 툭하면 까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실컷 [[견환]]을 괴롭히다가 견환이 망토에 나비를 넣어 총애를 회복하자 부찰귀인은 같이 견환을 괴롭힌 제비와 나름대로 대책을 세워보려고 하는데, 이때 '''"2대 1인데 설마 지겠어요?"''' 라는 소리를 하다가, 제비에게 "총애가 머릿수로 결정되는 줄 아나?" 라고 까였다. ~~이게 무슨 맞짱뜨는 것도 아니고~~ [[연세란|화비]]가 부찰귀인을 불러다 "[[옹정제(후궁견환전)|황제 폐하]]께서는 만주족과 한족이 하나라 하셨으니 귀인도 [[한자]]를 배워야겠지?" 라고 갈구었다.[* 만주족 귀족 여성들은 한자를 굳이 배우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았기 때문에, 한자를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만주어]]가 만주족의 전통이라지만 황족들은 한자를 배우며 내명부 문서 같은 것도 다 [[한자]]로 씌어 있으니 '''사실상 글 읽을 줄 모르는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실제로 청 황실에서는 이런 이유로 한족 출신 후궁들이 더 총애받았다는 말도 있다. 게다가 드라마에서 황자들이나 롱월공주도 한자를 공부하는 모습이 나오니, 부찰귀인이 문맹인 것은 확인 사살로 봐도 무방하다. === [[무한이기주의]] === [[안릉용]]의 궁생활 초창기에는 다른 후궁들에게 좀처럼 간섭을 안한다는 언급으로 보아 그다지 말썽을 부리지는 않는듯 했으며, 또한 처음으로 비중있게 등장했을 때 [[오라나랍 의수|황후]]의 건강을 위해 밤늦게까지 불공을 드리고 귀가하는 모습이었기에 조금 심약할 뿐이지 기본적으로는 착한 여인으로 등장했고, 또한 그가 기절했을 때 제비는 물론이고 [[순아|순상재]], [[안릉용]], [[여영풍|흔상재]]까지 많은 후궁들이 병문안을 온 것으로 보아 대인관계도 나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사실 부찰귀인에 대해 깊게 까보면 까볼수록 '''성격이 더럽게 자기중심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 더러운 성격 때문에, 같은 황후파이며 자주 어울려다니는 [[이정언|제비]]를 제외한 대다수의 후궁들과 사이가 좋지 않으며 [[옹정제(후궁견환전)|황제]]에게도 총애받지 못한다. [[견환]]보다 먼저 회임을 했는데, 진짜 임신이냐며 사람들이 묻자 견환 쪽에게 들으란 듯이, 가짜 회임 사건으로 당시 연금되어 있던 [[심미장]]의 일을 들먹이며 "그럼요, 난 누구처럼 거짓말은 안 해요." 라고 말했다. 33화에선 [[이정언|제비]]와 견환이 실수로 부딪히자, 그냥 넘어가려던 제비를 충동질해 대로에 꿇어앉히고 시종을 시켜 견환의 뺨을 때리게 한다. 꿇어앉은 견환에게 '완빈마마'라 부르며 비웃었다. 그러나 그 사건을 계기로 오기가 생긴 견환이 다시 총애를 얻자, 보복을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했고 견환이 척부인을 언급하자 쉽게 무너진다. 같은 처소의 [[안릉용]]은 신분이 낮다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대놓고 까고, 괴롭히고, 열등감을 자극하기도 했다. "[[순아|순상재]]도 쇄옥헌으로 가는데, 너는 쇄옥헌에 못 가는 이유는 다 니가 무능해서가 아니겠냐?" 라는 말과, [[옹정제(후궁견환전)|황제]]가 안릉용을 찾아기기로 했던 날에 갑자기 마음을 바꿔 [[견환]]에게 가자 "모처럼 한 꽃단장이 필요없게 됐네?" 라면서 안릉용을 비웃는다. 역병이 돌 때도 방역용으로 나눠준 약재와 향료를 자신의 회임을 빌미로 모두 가져가 버려서, 같은 처소의 안릉용은 구경도 못 했다. 이때 견환이 말리니 도리어 자길 협박하냐고 역성을 내기도 하고 결국 자신만 챙기는 등, 이기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임신 유세에 [[연세란|화비]]는 물론이요, [[여영풍|흔상재]]도 학을 뗐다. 그 끝도 없는 임신 유세를 이해해 준 것은 현모양처 연기를 하고 있던 [[오라나랍 의수|황후]] 뿐이다. 부찰귀인은 일단 같은 만군기라서 그런지 황후와는 사이가 좋다. 연회에서 술잔을 들어올리며, 황후마마의 보살핌에 항상 감사한다고 아첨을 떠는 부분이 꽤 있다. 다만 만군기 외에 사이가 좋은 이유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심지어 처음에는 황손이 귀한 황실에 큰 경사라며 부찰귀인의 회임을 기뻐했던 [[옹정제(후궁견환전)|황제]]마저도, 역병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걸핏하면 아프다고 불러대니 지겨워했다. 나중에는 부찰귀인이 아프다 해도, 과식이랑 아픈 것도 구별 못하냐고 타박만 한다. 사실 부찰귀인은 가문이 좋았기 때문에 정치적 계산으로 총애한 것인데 '''부찰귀인은 입궁 초기에 [[심미장]]과 더불어 신입 후궁들 중에서는 가장 많이 총애받았다.''' 4화에서 [[연세란|화비]]가 내명부를 들춰보며 1위인 자기 뒤에 공동 2위로 심미장과 부찰귀인이 있는 것을 보고[* 그 달에 황제는 후궁들을 고작 7번만 찾았다. 1위인 화비는 3번 승은을 입었고, 심미장과 부찰귀인은 각각 2번씩 입었다.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화비로서는, 압도적인 승은 1위를 차지하지 못하였으니 뿔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부찰귀인을 자기 처소로 불러 먹을 갈라고 갈구는 장면이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총애를 잃었다. "딱 한 번만 갔는데 하필 그때 회임이라니..." 라는 언급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왜 총애를 잃었는지 언급은 없으나, 이런 성격이 한 몫한 듯 싶다. === 유리멘탈 === 겉보기에 드센 성격과 반대로 멘탈은 상당히 약한 편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무서움을 많이 탄다. 무서움 외 다른 멘탈은 그렇게 약한 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유산을 하고 난 후, 멘탈이 결코 약한 편이 아닌 [[견환]]도 회복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는데[* 견환은 드라마 기준으로 30화에서 유산한 뒤 3화 걸렸는데, 하루종일 배냇저고리를 들고 침대에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나 심미장과 함께 냉궁 견학을 다녀온 일+제비&부찰귀인에게 괴롭힘당하면서 오기 덕분에 회복한다.], 부찰귀인은 그 견환보다 좀 더 빠르게 회복했다. 일단 유산 후 연희궁이 떠나가라 울어댔다는 말이 나오긴 하지만, 견환보다 빨리 회복한 것을 [[옹정제(후궁견환전)|황제]]가 연회에서 [[여영풍|흔상재]]의 건배는 안 받고 부찰귀인의 건배를 받는 것으로 칭찬하여 견환에게 얘 좀 본받으라는 말을 돌려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무서움과 관련된 멘탈이 부찰귀인을 파멸로 인도한 최대 약점이다. 복선은 예전부터 깔려 있었는데 견환이 [[여앵아|여답응]]을 조종한 배후를 끌어내기 위해 일으킨 귀신 소동에서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때 부찰귀인의 시종인 상아는 주인을 내팽개치고 튀기 바빴고. 드라마에서 퇴장한 사유 역시 멘탈 문제로 때문이다.[[견환]]이 다시 총애를 회복한 후, 복수를 위해 마련한 [[조금묵|조귀인]]과 동석한 자리에서 내내 불안에 떨던 그는, [[여후]]와 [[척부인]]의 사람돼지 고사를 언급하자 두려움에 떨다가 기절하고 정신줄까지 놓아버린다. 같이 있던 조귀인은 굉장히 멀쩡했고, 오히려 신나게 이를 거들어줬다. 결국 정신붕괴를 일으켜 미쳐버린 부찰귀인은 자기 처소에 감금되어 치료를 받는 신세로 전락하며, 마지막까지 더 이상의 등장이 없는 걸로 보아 치료는 되지 않은 걸로 보인다. [[비운연|여빈]]에 이은 네 번째의 퇴장 인물이다. == 특기 == 선진숙녀의 걸음걸이가 특기라는 언급이 있었다. 버들가지처럼 하늘거려서 아주 우아하다고. 참 독특한 특기이다. [[견환]]을 한창 갈굴 때 [[안릉용]]이 견환을 도와준다고 나서며 "[[옹정제(후궁견환전)|황제 폐하]]를 위해 연습하셨다는데 언니의 선진숙녀의 걸음걸이 좀 보여주세요." 라면서 인증한 바 있다. 여기서 선진이란 선진시대를 말하는 것이며 원작에선 진방의가 총애받기 위해 익힌 특기다. 쟁(箏)을 탈 줄 안다. 나름대로 특기인지, 극 초반의 새해맞이 연회에서 쟁을 연주한다. == 원형 == 드라마의 부찰귀인은 원작의 두패균과 진씨를 섞어서 만든 캐릭터다. 유산된 건 두패균, 견환을 모욕한 건 종2품 소용 육씨와 종4품 방의 진씨이다. 진씨는 총애를 되찾은 견환이 여태후와 척부인의 고사를 들려주자 두려움에 미쳐버렸고, 육씨는 스스로 종4품 순의로 강등하고는 처소를 옮겨 진씨와 같이 지낸다. 두패균은 후반부에 [[섭란의|녕귀인]]이 표범을 부려 황제를 죽이려 한 연회에서 사망했다. 사후 념비로 추존. 수정판에서는 두패균이 진씨와 합쳐지면서 견환을 모욕했다가 총애를 회복한 견환에게 두려움을 느껴 결국 미쳐버렸고, 후반부에 녕귀인이 부린 표범에게 죽은 이는 시위로 변경되었다. [[분류:후궁견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