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백제의 왕족]][[분류: 백제의 유민]] * [[개로왕]]은 해당 항목 참조. [include(틀:역대 백제 국왕)] ||<:><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black><tablebgcolor=#fff,#2d2f34><black>{{{#white '''당 작위'''}}} ||<(>대방군왕(帶方郡王)|| ||<:><black>{{{#white '''당 직위'''}}} ||<(>웅진도독(熊津都督)|| ||<:><black>{{{#white '''성씨'''}}} ||<(>부여(扶餘)|| ||<:><black>{{{#white '''이름'''}}} ||<(> 경(敬) || ||<:><black>{{{#white '''생몰년도'''}}} ||<(>? ~ ?|| [목차] [clearfix] == 개요 == [[백제]]의 왕족. [[의자왕]]의 증손자로, [[부여융]]의 손자. 부여융의 아들로는 부여문선, [[부여태비]] 묘지명에서 언급된 부여덕장(扶餘德璋)이 확인되지만 두 사람 외에도 아들이 더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 아버지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단, 부여융 사후 부여문선, 부여덕장이 살아있었음에도 그들을 제치고 부여융의 손자인 부여경이 대방군왕에 임명된 점을 본다면[* 부여문선은 신당서 돌궐전에 따르면 698년 총관에 임명된 기록이 남아있고, 부여태비 묘지명에서 부여덕장은 자신의 딸인 부여태비를 690년에 낳았다.] 그들의 형 혹은 적장자의 아들로 태어났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 행적 == 677년 당은 백제 [[웅진성]]에 있던 [[웅진도독부]]를 [[요동]]에 있는 [[고구려]] 지역의 [[건안성]]으로 옮기면서 웅진도독부 소속의 백제 유민들도 함께 이주시키고 부여융을 웅진도독 대방군왕(熊津都督 帶方郡王)으로 삼아 다스리게 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백제 전역을 이미 671년 전후로 신라가 차지했기 때문이다. 682년 부여융이 사망한 후, [[측천무후]]가 그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했다. [[동국통감]] 권9 신라기에 따르면 686년 고구려 [[보장왕]]의 손자 [[고보원]](高寶元)이 조선군왕(朝鮮郡王)을 받은 시기와 같다. [[구당서]] 현종본기의 기록에 따르면 725년 내신으로 번국의 고려조선군왕과 함께 백제대방군왕이 언급된다. 이 '백제대방군왕'이 부여경과 동일인물인지는 확인된 바가 없다. == 기타 == 677년 [[건안성]]으로 옮겨진 [[웅진도독부]]에 대한 기록이 전무해서 이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다. 2009년 [[이도학]] 교수는 발해가 8세기 중반 ~ 9세기 초반에 요동반도에 진출했을 때 발해에 흡수되어 사라졌을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건안성으로 옮겨진 백제 유민들이 당으로부터 자립해서 소백제를 형성했을 가능성은 적다. [[구당서]] 현종본기 725년 기사에서 신라, 말갈[* 아마도 [[발해]] 또는 말갈부족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조회하러 온 국가로 기술한 반면 고려조선군왕, 백제대방군왕은 당나라의 내신으로 외국으로 분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고구려]]설이 아직은 학설 수준에 머무는 것처럼 건안성의 백제 유민들이 '소백제'를 형성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둘러보기 == ||<-5><tablealign=center><:><#4eae47> '''[[웅진도독부|{{{#FAFAD2 웅진도독부의 역대 도독}}}]]''' || ||<:><width=30%> 초대 [[부여융]] || {{{+1 ←}}} ||<:><width=30%> '''2대 부여경''' || {{{+1 →}}} ||<:><width=30%> 도독부 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