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의 공산주의자]][[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제주 부씨]][[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1908년 출생]][[분류:1944년 사망]]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부덕환.jpg|width=300px]] || || 성명 ||<(> 부덕환(夫德煥) || || 본관 ||<(> [[부(성씨)|제주 부씨]] || || 생몰 ||<(> [[1908년]] [[3월 12일]] ~ [[1944년]] [[7월 5일]] || || [[출생지]] ||<(> [[전라남도]] 제주군 신좌면 조천리[br](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부장환]]은 그의 친동생이다. == 생애 == 부덕환은 1908년 3월 12일 전라남도 제주군 신좌면(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아버지 부병익(夫秉益)과 어머니 김종윤(金鍾允)의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천공립보통학교(현 조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9월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 거주했다. 그는 피혁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1931년 6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화학노조 오사카지부에 가입하였다. 1932년 7월 구로주미(黑住剛)의 권유로 당시 한국과 일본 사회주의자들이 연계하여 반제국주의 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일본공산청년동맹(共産靑年同盟)에 가입하여 일제 타도와 조국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0700930|#]] 1932년 8월 일본공산청년동맹의 중앙위원회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침탈의 날에 전조선 노동자, 청소년에게 보냄'이라는 격문을 제작 및 배포하여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한·일 노동자 청년들의 공동투쟁을 제의하였다. 부덕환은 이와 같은 일본 공산청년동맹 중앙위원회의 [[칸사이]]지방위원회(關西地方委員會) 오사카시위원회(大阪市委員會) 남지구(南地區) 산하의 조직원으로 활동하던 중 체포되어 1933년 3월 29일 오사카지방검사국에 송치되었으며[[http://db.history.go.kr/id/tcmd_1933_03_29_0020|#]], 1934년 6월 18일 대판공소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미결구류 320일 산입)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7804&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12349&actionType=det&flag=2&search_region=|#]]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옥고의 여독으로 1944년 7월 5일 별세하였다. 사후 2000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