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원사)] ||<-2><tablealign=right><tablewidth=300><tablebordercolor=#004db1><tablebgcolor=#004db1><tablecolor=#000> '''{{{#fff 원나라의 황후[br]{{{+1 卜答失里 | 부다시리}}}}}}''' || ||<width=60> '''[[시호|{{{#fff 시호}}}]]''' ||<bgcolor=#fff><(> 없음|| || '''[[성씨|{{{#fff 성}}}]]''' ||<bgcolor=#fff><(> 옹기라트(弘吉剌)|| || '''[[휘|{{{#fff 휘}}}]]''' ||<bgcolor=#fff><(> 부다시리(卜答失里)|| || '''{{{#fff 출생}}}''' ||<bgcolor=#fff><(> ???|| || '''{{{#fff 사망}}}''' ||<bgcolor=#fff><(> 1340년 || ||<|8> '''{{{#fff 재위}}}''' ||<:>'''{{{#fff 원나라의 황후 (1차)}}}'''|| ||<bgcolor=#fff><:>1329년|| ||<:>'''{{{#fff 원나라의 황후 (2차)}}}'''|| ||<bgcolor=#fff><:>1329년 ~ 1332년|| ||<:>'''{{{#fff 원나라의 황태후}}}'''|| ||<bgcolor=#fff><:>1332년 ~ 1335년|| ||<:>'''{{{#fff 원나라의 태황태후}}}'''|| ||<bgcolor=#fff><:>1335년 ~ 1340년|| || '''{{{#fff 배우자}}}''' ||<bgcolor=#fff><(> [[문종(원)|문종]] || [목차] [clearfix] == 개요 == Будашири/卜答失里 皇后 (? ~ 1340) [[원문종]] 투그테무르의 [[황후]]. 옹기라트 부족의 유력 가문인 노왕 왕가 출신. 한자를 한국식으로 읽으면 복답실리인데 이 이름으로 드라마 [[신돈(드라마)|신돈]]의 초반에 나온 적도 있다. 문종을 옹립하는데 큰 공을 세운 [[엘테무르]]가 문종과 부다시리 황후의 둘째 아들 엘테구스(El Tegüs, 燕帖古思)를 집에서 양육하고 대신 자신의 아들 [[텡기스]]를 황제의 양자로 궁중에서 자라게 하였다. 엘테무르는 [[원명종]] 쿠살라의 장남인 [[원혜종|토곤테무르]]의 어머니쪽 가문이 한미하다는 것을 들어 명종에게는 친자식이 없다고 트집을 잡아 토곤테무르를 [[고려]]의 대청도로 유배를 보냈다가 광서 지방으로 옮겼다. [[영종(원, 10대)]] 린칠반이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하자, 엘테무르는 엘테구스를 황제로 만들려고 했다. 이 때 부다시리는 형 쿠살라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투그테무르의 유언을 존중하는 것과 동시에 엘테구스가 권력에 휘말리게 되는 것을 우려해서 어리다는 이유로 반대했으며, 이로 인해 엘테무르는 어쩔 수 없이 토곤테무르를 수도로 다시 불렸다. 엘테무르도 죽고 [[원혜종]] 토곤테무르가 즉위한 후 내부 정쟁이 일어나 [[토크토아]]에 의해 권신 [[바얀#s-2|메르키트 바얀]]이 제거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둘째 아들인 엘테구스와 반역을 획책하였다는 혐의로 인해 그녀는 [[태황태후]]의 자리에서 폐위된 후 대도에서 추방당했다. 이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기황후]]의 모략이었다는 설이 강하다. 이 때문에 그녀는 [[시호]]를 받지 못해 [[원나라]] 측 기록에선 이름인 '부다시리'로 칭하는 경우가 많다. == 관련 문서 == * [[몽골인]] [[분류:원나라의 황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