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tablealign=right><table width=360px> {{{+2 '''부거역'''}}} || ||<-3> [include(틀:지도, 장소=북한 함경북도 부가역, 너비=100%, 높이=225px)] || ||<-3><bgcolor=#c0c0c0,#3f3f3f> '''다국어 표기''' || || [[영어]] ||<-2> Pugŏ || || [[한자]] ||<-2><|2> 富居 || || [[중국어]] || || [[일본어]] ||<-2> プゴ || ||<-3><bgcolor=#c0c0c0,#3f3f3f> '''주소''' || ||<-3>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부거리 || ||<-3><bgcolor=#c0c0c0,#3f3f3f> '''관리역 등급''' || ||<-3> 불명[br](청진철도총국) || ||<-3><bgcolor=#c0c0c0,#3f3f3f> '''운영 기관''' || || [[평라선]] ||<-2><bgcolor=#ffffff,#19191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파일:DPRK_railway_logo.png|width=200px]]]] || ||<-3><bgcolor=#c0c0c0,#3f3f3f> '''개업일''' || || [[평라선]] ||<-2> 1965년 6월 10일 || ||<-3><bgcolor=#c0c0c0,#3f3f3f> '''철도거리표''' || ||<width=110px><bgcolor=#ffffff,#191919> [[평양역|{{{#585858 {{{#!html<div style="font-size:13px">평양 방면</div>}}}}}}]][[사구역|사 구]][br]← 3.9 ㎞ ||<width=110px> '''[[평라선]]'''[br]부 거 ||<width=110px><bgcolor=#ffffff,#191919> [[라진역|{{{#585858 {{{#!html<div style="font-size:13px">라진 방면</div>}}}}}}]][[삼해역|삼 해]][br] 9.6 ㎞ → || {{{+1 富居驛 / Pugŏ Station}}} [목차] [clearfix] == 개요 == [[평라선]]의 철도역.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부거리 소재. == 상세 == 말 그대로 부자들이 살았던 마을이라 해서 부거리. 어차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부자들이 남아나기는 좀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아, 물론 친일파라면 예외였겠지.~~ 그러다 보니 마을이 좀 크기는 컸던 모양이다. 지금도 역 서쪽으로 200호 정도 되는 마을이 있을 정도니까. 왕년에는 [[부령군]] 부거면의 면 소재지였었다. 역의 동쪽으로는 언덕이 가로막고 있고, 역의 서쪽은 좁긴 하지만 경작지가 있다. 함경북도의 특성상 해안에서 조금만 깊게 들어가도 산지가 나타나 버리기 때문에 경작지가 좁은 것. 그 외에는 사실 딱히 별볼일없는 시골의 조그만 역이다. 인근에 도로가 있는데 이 도로는 [[평라선]]과 나란히 달리는 도로. == 여담 == 이 역과 선로는 [[한국전쟁]]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한국군]]이 평라선에서 가장 북쪽까지 올라간 지점'''이다. 1950년 11월 30일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이 부령~부거 지역까지 진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수도기계화사단은 [[장진호 전투]]개시와 동시에 후퇴명령을 받고 후퇴길에 올랐다. 거리상으로 본다면 [[라진역]]과 불과 44.2km 떨어져 있으니 중공군의 개입만 없었다면 평라선 전 노선이 한국의 손안에 들어오고 며칠내에 [[남북통일]]이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서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서남쪽으로 2km쯤 가면 합전(合戰) 구릉이 나오는데, 여진족(혹은 발해)의 오래된 무덤 380여 기가 있다. 고분의 평균 직경이 6~8m는 될 정도로 크다고 하며 [[구글 어스]]로도 확인할 수 있다. [[평양역]] 기점 757.7km. [[분류:평라선]][[분류:북한의 철도역]][[분류:1965년 개업한 철도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