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color=#ffffff,#191919><table width=100%> '''{{{#000000,#e5e5e5 봉하민의 수상 및 영예 }}}''' || ||<bgcolor=#fff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table align=center>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 ||<bgcolor=#074ca1> '''[[2000-01 KBL 챔피언결정전|{{{#ffcc33 2001}}}]]''' || ---- [include(틀:KBL 역대 기량발전상)] ---- }}} || ||<-2><table align=center> [[파일:봉하민_심판.jpg]] || ||<-2><bgcolor=#ffffff,#191919> ~~KBL 팬들에겐 익숙한 장면~~ ~~[[추일승]]?~~ || || '''이름''' || 봉하민(奉夏玟) || || '''생년월일''' || [[1971년]] [[11월 4일]] ([age(1971-11-04)]세)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신학교''' || 대경상고 - [[동국대]] || || '''신체조건''' || 190cm || || '''포지션''' || [[슈팅 가드]] || || '''프로입단''' || 1994년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기아자동차]] 입단 || || '''소속팀''' ||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기아자동차]] (1994~1995) [br] [[국군체육부대|상무]] (1995~1997) [br]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997~2000) [br] [[부산 kt 소닉붐|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코리아텐더 푸르미]] (2000~2002) [br] [[서울 삼성 썬더스|수원 삼성 썬더스]](임대) (2000~2001) || || '''수상내역''' || [[1992-93 농구대잔치]] 수비상 [br] '''KBL 기량발전상''' 1회 (1999) || [목차] == 소개 == [[1990년대|90년대]] 초 보기 드문 장신 가드였으나, 당시 최강팀이던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기아자동차]] 입단 후 수비 전문 선수로 육성되었다. 은퇴 후 최근까지 [[KBL]] 심판으로 지냈다. == 선수 시절 == === 고교-대학 시절 === 대경상고 3학년 시절, 모교를 동국대총장기 우승으로 이끌며 본인은 MVP를 수상, 전국에 조금 이름을 알린다.[* 당시 결승전 상대는 천재가드 [[이상민(농구)|이상민]](2학년)과 단신슈터 [[조성원]](3학년)이 이끌던 홍대부고였다.] 하지만 같은 학년에 차세대 국가대표 슈터로 꼽히던 광신상고 [[문경은]]에 용산고의 원투펀치 [[김승기]]-[[김재훈(농구)|김재훈]], 송도고 [[홍사붕]] 등 뛰어난 선수들이 워낙 많아 당시 대학 강호들의 스카웃 레이더에서 벗어났고, 대학 하위권 팀이던 [[동국대학교]]에 입학한다. 1~2학년 때까지는 대학 무대에서도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으나, 3학년이던 1992년 1년 선배 박재현(189cm,F), 이병률(196cm,C)과 함께 [[1992 대학농구연맹전|1992 시즌]]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6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MBC배는 4위.] 반짝 활약을 보였고, 덕분에 동국대는 [[1992-93 농구대잔치]]에 출전하는 6개 대학팀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린다. [[1992-93 농구대잔치]]에서도 봉하민은 선배들과 함께 강력한 수비력을 선보이며 풀리그 두 번째 경기만에 금융팀 [[원주 DB 프로미|산업은행]]을 꺾는 등 돌풍을 일으켰으나, '''대회 도중 감독을 경질하는''' 어처구니없는 학교의 행태에 선수단이 흔들리면서 첫 승 이후 내리 '''12연패를 당한 채 14개 팀 중 꼴찌를 차지한다.''' 아쉬운 팀 성적에도 불구, 팀의 에이스였던 봉하민은 '''1992-93 농구대잔치 수비상'''을 수상하며 활약을 인정받는다. 선배들이 졸업하고 다시 전력이 수직 하락하면서 봉하민의 4학년 시절은 전 대회 예선탈락으로 마무리 되었고, 같은 90학번 중 [[문경은]], [[김승기]], [[홍사붕]] 등이 치열한 스카웃 경쟁을 치른데 반해 다소 조용하게 명문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기아자동차]]의 유니폼을 입는다. === 실업-프로 시절 === 비록 주전들의 노쇠화로 [[1993-94 농구대잔치]] 8강에서 어이없이 미끄러지긴 했지만, 농구대잔치 5연패에 빛나는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기아자동차]]는 여전히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강동희]]~~-[[허재]]라는 국가대표 기둥가드의 존재로 인해, 봉하민은 대학시절의 다재다능함을 봉인한 채 [[이훈재]]와 함께 상대 2-3번을 집중마크하는 수비전문 식스맨으로 육성되었고, [[1994-95 농구대잔치]]에서도 [[서울 삼성 썬더스|삼성전자]]의 [[문경은]]을 그림자 수비하며 기아자동차의 통산 6번째 우승에 기여했다. 1995년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한 봉하민은 [[이상민(농구)|이상민]]-[[조성원]]-[[문경은]]-[[조동기]] 등 호화멤버들로 구성된 상무에서 수비 등 굳은 일을 전담하는 식스맨으로 헌신했고, 상무가 2년 연속([[1995-96 농구대잔치|1995-96]], [[1996-97 농구대잔치|1996-97]]) 농구대잔치 결승에 오르는데 기여했지만 2차례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제대 후 원 소속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로 복귀, 프로 첫 시즌을 맞았으나, 대한민국 최강으로 꼽히던 ~~[[강동희]]~~-[[허재]]-[[김영만(농구)|김영만]]의 백코트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고, [[허재]]의 부상투혼 속에 팀이 1997-98 시즌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랐음에도 봉하민은 미미한 활약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시즌 [[허재]]가 [[원주 DB 프로미|원주 나래]]의 [[정인교(농구)|정인교]]와 1:1 트레이드로 떠나면서 하드웨어가 좋은 2번이던 봉하민의 출장시간이 점차 늘었고, 특히 시즌 중반부터는 수비 약점이 드러나버린 [[정인교(농구)|정인교]]를 제치고 아예 주전 2번으로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 시즌 평균 7분이던 출장시간은 두 배가 넘게 늘었고(평균 19분), 특히 플레이오프 들어서는 평균 30분을 넘게 출장하면서 [[김영만(농구)|김영만]]과 함께 플옵 4강 상대 [[서울 삼성 썬더스|수원 삼성]]의 [[문경은]]-이슈아 벤자민(190cm, F) 쌍포를 완벽하게 봉쇄해버렸다.[* 이 4강 시리즈에서 문경은은 4경기 동안 9-8-6-10점으로 제대로 틀어막혔다.] [[전주 KCC 이지스|대전 현대]]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봉하민은 [[조성원]] 봉쇄임무를 부여받고 출전했으나, 주전센터 [[제이슨 윌리포드]]와 노장 식스맨 [[김유택]]의 연이은 부상으로 골밑이 흔들리면서 시리즈 1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고, 봉하민은 마크대상이던 [[조성원]]이 챔프전 MVP를 수상하는걸 지켜봐야만 했다. 그래도 전 시즌 대비 주전으로 도약하며 보여준 맹활약을 인정받아, 봉하민은 '''98-99 시즌 기량발전상'''을 차지하게 된다. 98-99 시즌 동안 봉하민은 '''평균 5.2득점-2.4리바-0.6어시-0.7스틸'''을 기록하며 역시 커리어 하이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99-00 시즌 새로 취임한 [[박수교]] 감독은 2번 포지션에 정인교를 다시 중용하기 시작했고, 봉하민은 수비용 식스맨으로 다시 물러나야 했다. 수비력은 여전했지만 오히려 감퇴해버린 공격력(99-00 시즌 3점 성공률 27.4%) 탓에 출장시간은 자꾸만 줄어들었고, 시즌 중반 이후엔 2년차 [[황문용]][* 99-00 시즌 식스맨상 수상]에게 식스맨 자리도 내어주고 만다. 시즌 종료 후 봉하민은 포지션 경쟁자였던 [[정인교(농구)|정인교]]와 함께 묶여 2:2 트레이드로 [[부산 kt 소닉붐|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로 트레이드 된다.[* 여수 골드뱅크 get: 봉하민, [[정인교(농구)|정인교]] ↔ 부산 기아 get: [[정진영(농구)|정진영]], 박재현] 00-01 시즌 동안 봉하민은 새팀 여수 골드뱅크에서 좀처럼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고, 시즌 중반 [[정락영]]의 부상으로 포인트가드를 급히 찾던 여수 골드뱅크의 요청에 의해 [[서울 삼성 썬더스]]의 [[박성배(농구)|박성배]]와 사상 초유의 1:1 임대 트레이드를 통해 [[서울 삼성 썬더스]] 유니폼을 입는다. 박성배가 여수의 "골든보이"로 불리며 금새 주전 1번자리를 꿰찬 반면, 봉하민은 서울 삼성의 두터운 선수층을 뚫지 못하고 고작 7경기 출전에 그친 채 시즌 종료 후 별 소득 없이 여수로 복귀한다.[* 별소득이 없진 않았다. 00-01 시즌 [[서울 삼성]]이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면서 봉하민은 무임승차(?) 식으로 우승반지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반지도둑-- --박성배 줘라--] 만년 하위권 팀에서조차 출장시간을 잡지 못하던 봉하민은, 결국 01-02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 은퇴 후 == 은퇴 후 동갑내기 김도명, 허영 등과 함께 KBL 심판이 되어 최근(2015년)까지 활약했다. KBL 팬들이라면 알겠지만, 봉하민 심판의 명성은 김도명 심판과 함께 선출심판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는데, 주요 사례들은 아래와 같다. * 2015년 1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테렌스 레더]]가 다가가자 위협을 느꼈다고 테크니컬 파울 선언;;. [[http://star.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078245#cb|기사]][[http://m.ppomppu.co.kr/new/bbs_view.php?id=basketball&no=11933|영상]] * 2013년 11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창원 LG 세이커스|창원 LG]] 경기에서 터치아웃 오심. [[http://m.nocutnews.co.kr/news/1126569|기사]] * 2012년 2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전주 KCC 이지스|전주 KCC]] 경기에서 라인크로스 오심. [[https://nbamania.com/g2/bbs/board.php?bo_table=kbltalk&wr_id=35656|출처 NBA매니아]] ~~전자랜드와 대체 무슨 원한이 있는지...~~ 2014-15 시즌 종료 후 심판 재임용에서 탈락했고, 현재는 농구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나, 경기감독관으로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 관련 문서 == * [[농구 관련 인물(한국)]]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분류:1971년 출생]][[분류:하음 봉씨]][[분류:슈팅 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