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Boston Massacre''' / 보스턴 대학살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ostonMassacre_byAlonzoChappel1878.png]] || ||<bgcolor=#DCDCDC><:> '''[[https://en.wikipedia.org/wiki/Boston_Massacre|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 [목차] == 개요 == >오늘은 별다른 일이 없는 무료한 날이었다. >---- >- 토마스 프레스턴. [[1770년]] 3월 5일의 일기에서 [[영국]]에선 킹 [[거리]] 사건(incident on King street)이라 부르는 사건이다. [[7년 전쟁]]으로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영국 [[의회]]는 식민지에 조세를 강화하는 법안을 여러번 상정했고 이는 [[인지조례|인지세]], 타운센드법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에 따라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은 본국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던 1770년 3월 5일, 보스턴 시에 주둔한 [[레드코트|영국 육군]] 제29[[보병]][[연대(군대)|연대]] [[병력]]들과 주둔지 앞에 모여있던 시민과의 갈등이 발단이 되어 보스턴시에서 인부 9명과 영국군 사이에 우발적인 분쟁이 일어나고 일부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곧 보스턴 시민들과 군인들의 무력 충돌이 일어나고 위협을 느낀 [[육군]] [[병사]]들이 [[장교]]의 명령이 없음에도 [[머스킷]] [[소총]]을 쏘면서 시민 5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당하는 [[유혈사태]]로 확대된다. 발포한 병사 8명과 당일 [[당직사관]]으로 이들에 대한 지휘책임을 지고 있던 토마스 프레스턴 육군 보병[[대위]]가 군사재판에 회부되나 무죄판결을 받고, 나머지 병사들도 두 명이 자그마한 벌[* 엄지손가락에 H자 낙인이 찍히는 벌. 지금 생각해보면 후덜덜한 벌이지만, 당시는 이 정도는 '가벼운 처벌'로 받아들이던 시절이었다.]을 받는 선에서 처벌이 마무리되었다[* 다만 이게 틀리지 않았다는 의견이 있다. 말이 다섯 명 죽은 거지 실제로 당시 영국군 또한 미국 시민들에게 상당한 협박과 위협을 당했고, 결정적으로 당시 영국군을 변호한 변호사는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된 존 애덤스였다. 다시 말해, 같은 미국인들도 탐탁치 않게 보았다는 것. 사실 고작 다섯 명 죽었다고 학살이라면... 아래 반론 항목 참고.]. 이로 인해 식민지의 대영 여론은 더 악화되었다. 이후 식민지에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욱 힘을 얻으며 후에 일어나는 [[보스턴 차 사건]]과 [[미국 독립 전쟁]]의 시발점이 된다. == 명칭에 대한 논란 == ||<-2> [[파일:masscre_really_.png|width=750px%px]] || || 보스턴, 매사추세츠 / 1770년 3월 5일 [br] 5명 사망, 6명 부상 || [[운디드니 학살사건|운디드니, 사우스 다코타]] / 1890년 12월 29일 [br] 300명 사망, 50명 부상 || ||<-2> {{{+2 '''자 그럼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Q: 다음 중 진짜 학살은 무엇일까요?''' }}} || 미국 개척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한 사건들은 대학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데 비해 이 사건에는 대학살이라고 하는데 다소 비판이 있다. 사실 대학살이라고 표현하기엔 사상자들의 수가 매우 적으며 미국이 이 사건을 계기로 반 영국심리를 고조시키기 위해 붙인 단어였다는 논란도 있고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대학살이라는 단어선택은 잘못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더군다나 '''누가 먼저 공격을 시작했는지'''조차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영국군이 먼저 총을 쐈다는 의견과 미국인들이 눈뭉치를 던지는 등 먼저 위협적으로 나가고 총까지 쐈다는 주장이 대립하는 사건. 사실 이 사건이 알려진 건 폴 리비어의 판화(위의 밈에 묘사된, 영국군들이 일방적으로 시민들을 학살하는 판화) 때문인데, 이 판화가 위의 위키피디아판 그림과는 달리 미국인들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장면으로 묘사해서 여론몰이를 했다는 의견이 대다수. 실제로 리비어가 그런 성향이기도 했고. 《책 속의 책》이라는 책을 90년대에 쓴 폴 임이란 재미교포는 지들이 수백만 단위로 벌인 미국 원주민 학살은 서부개척으로 빚어진 결과라고 넘어간 주제에 고작 5명 죽은 게 학살이라며 비웃는 글을 쓰기도 했다. == 대중매체에서 == === 게임 === [[어쌔신 크리드 3]] == 관련 문서 == *[[미국 독립 전쟁]] *[[보스턴 차 사건]] *[[존 애덤스]] [[분류:1770년]][[분류:미국의 역사]][[분류:미국의 사건사고]][[분류:학살]][[분류:전쟁범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