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가톨릭 교황)]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5><#806600> [[교황|[[파일:815px-Emblem_of_the_Papacy_SE.svg.png|height=40]] '''{{{#FFF 가톨릭 교회의 교황}}}''']] || ||<-5> [[파일:66_bonifacio_III.png|height=125]] || ||<width=30%> 제65대 [[사비니아노]] ||<width=5%> → ||<width=30%><#806600> '''{{{#FFF 제66대 보니파시오 3세}}}''' || → ||<width=30%> 제67대 [[보니파시오 4세|성 보니파시오 4세]] || * [[라틴어]]: Bonifacius III * [[이탈리아어]]: Bonifacio III * [[영어]]: Pope Boniface III * 생몰년: ? ~ 607년 11월 12일 * 재위기간: 607년 2월 19일 ~ 607년 11월 12일 [[그레고리오 1세]] 때인 603년 교황 사절로 임명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파견되었고, 이곳에서 동로마 황제 [[포카스]]의 총애를 받고 교회 내 분쟁을 해결함으로써 신망을 얻었다. 606년 2월 교황에 선출되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가 로마에 입성한 것은 1년이 흐른 뒤였다. 보니파시오 3세는 로마로 돌아와 교황에 착좌한 후 즉시 교황 선출과 관련한 두 가지 법을 제정하였는데 첫째는 교황의 살아생전 후임 교황 선출에 대해 논해서는 안 되며 이를 어기면 파문당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교황이 사망한 지 3일이 지나야 후임 교황을 선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보니파시오 3세가 교황이 된 후 1년 간 로마에 입성하지 못한 것이 교황 선출과 관계된 문제였고, 재발 방지를 위해 이러한 법을 제정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가 교황이 되기 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의 활약이 인상 깊었는지 황제 [[포카스]]로부터 "복된 사도 베드로좌는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칙령을 받았는데, 이는 당시 ‘세계 총대주교’를 자처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에게 타격을 주는 한편 로마 교황이 교회 전체의 수장임을 보여준 일이었다. 보니파시오 3세는 607년 11월 12일 사망했고,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다. [[분류:교황]][[분류:동로마 제국의 인물]][[분류:607년 사망]][[분류:성 베드로 대성당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