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미국 남배우]] [[분류:헝가리의 인물]][[분류:헝가리계 미국인]][[분류:1882년 출생]][[분류:1956년 사망]] Bela Lugosi [[파일:attachment/벨라 루고시/info.jpg]] 전성기 사진. [[파일:attachment/벨라 루고시/.jpg]] 말년에 [[에드 우드]], [[돌로레스 퓰러]]와 함께 찍은 사진. [목차] == 개요 == 1882~1956 [[헝가리]] 태생의 [[연극]] 및 [[영화배우]].[* 벨라 루고시는 헝가리인으로서의 자존심이 무척 세서, 미국으로 망명한 후에도 제대로 영어를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드라큘라에 캐스팅 되자 직접 개인교사를 고용해 영어를 연습했다고.] 최초로 영화 속의 [[드라큘라 백작]]을 연기한 배우로 유명하다. == 생애 == 헝가리 이름은 루고시 벨러(Lugosi Béla), 본명은 블러슈코 벨러 페렌츠 데죄(Blaskó Béla Ferenc Dezső)이다. 루고시는 그의 고향이름으로 현 [[루마니아]]의 루고지(Lugoj)라는 도시이다.[* 원래 [[헝가리 왕국]] 영토였으나 [[트리아농 조약]]으로 루마니아에 넘어갔다.] 그가 배우가 되겠다고 하자 은행가였던 부친은 적잖이 반대를 했고, 이때문에 루고시는 부친과 사실상 의절한 뒤 결국 집을 뛰쳐나왔다. 이후 헝가리 국립극단 소속으로 헝가리 배우 노조에서 활동하고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의 여파로 중부 유럽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 결성된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소련의 위성국가 헝가리 인민공화국이 아니다.]에서 활동하였으며, 혁명이 진압되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본래는 연극 배우로 활동하였으며, [[브로드웨이]]에 공연하고 있었던 연극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 백작을 연기하며 명성을 얻었다.[* 아래서 설명할 클라라 바우와의 연애도 이때 겪게 된다.] 이때부터 벨라 루고시 특유의 연극적이고 거창한 연기 스타일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벨라 루고시의 전매특허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연기 스타일은 훗날에 그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1931년, [[토드 브라우닝]]이 감독한 [[브램 스토커]] 원작의 공포영화 [[드라큘라(1931)]]에서 [[드라큘라 백작]] 역을 맡으면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여기서 벨라 루고시는 연극 배우로 활동하던 때의 경험을 살려 호연을 펼쳤는데, 카리스마와 품위가 넘치는 악역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는 평을 듣는다. 마침 루고시의 귀족적인 외모와 독특한 헝가리 억양이 유럽인인 드라큘라 백작의 이국적인 캐릭터에 잘 맞아서 시너지 효과가 생겼던 덕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헝가리]]는 [[루마니아]]와 마치 한일관계처럼 원수관계이다. 게다가 [[블라드 가시공]]은 루마니아에서 [[이순신]]급으로 존경받는 위인이다. 그래서 루마니아인들은 드라큘라를 악역으로 묘사한데다가 헝가리 배우가 드라큘라 역을 맡은 이 영화를 무지 싫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원작의 드라큘라 백작은 블라드 가시공과 동일인물이라기보다는, 실제 루고시처럼 트란실바니아 출신의 헝가리인이다. 이 점은 원작고증(?)인 셈.] 이렇게 드라큘라 역을 소화하면서 호러영화계의 대스타로 거듭난 벨라 루고시는 그 후로도 1941년 작 좀비를 다룬 첫 영화인 [[화이트 좀비]], [[에른스트 루비치]]의 [[니노치카]] [* 참고로 호러 영화가 아니라 코미디 영화다. 소련군 장교를 연기했다.] 등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고딕 호러 전문배우로 활동한다. 30~40년대에 걸쳐 벨라 루고시는 말그대로 호러 영화계의 최고 스타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나 벨라 루고시 특유의 거창하고 [[허세]] 넘치는 연극적인 연기 스타일은 세월이 흐를수록 구닥다리 취급을 받게 되었고, 그가 주로 활동하던 호러영화계도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면서 몰락이 시작되었다. 급기야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점차 사람들의 뇌리에 잊혀져 갔다.[* 당장 5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현대적인 [[메소드 연기]]가 각광받기 시작했으며 메소드 연기에 정통한 [[말론 브란도]]와 같은 대스타가 배출되기도 하였다. 벨라 루고시 특유의 연기 스타일은 이미 시대에 뒤쳐진 구닥다리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개인적인 가정 문제까지 겹쳐 이혼을 4번이나 하는 등[* 결혼을 다섯 번이나 했다. 특히 세번째 아내였던 베아트리체 윅스와의 관계는 즉흥적인 관계였는지 일년도 못가서 이혼서류에 서명을 하며 끝이 났다. 그 후 릴리안 루고시와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얻었으나 그녀와도 이혼했다. 마지막 아내는 그에게 매일같이 팬메일을 썼을 정도로 열렬한 팬이었지만 결혼 생활 1년 만에 루고시가 사망해버린다.] 삶도 불우해졌고, 결국 우울증과 1차대전 참전시 겪었던 다리부상의 통증 때문에 [[모르핀]] 중독에 시달리며 그저 그런 단역배우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그는 젊은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던 [[에드 우드]]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찍은 《[[글렌 혹은 글렌다]]》, 《[[괴물의 신부]]》 같은 B급 [[괴작]]영화들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말년을 보낸다.[* 물론 아예 에드 우드와 함께 한 것 만은 아니었고, TV 쇼에 출연하거나 혹은 에드 우드와 흡사한 B급 영화를 주로 감독하던 레지널드 르 보그의 《검은 양》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1956년, 벨라 루고시는 에드 우드와 함께 《뱀파이어의 무덤》이라는 영화를 찍게 되었는데, 제작비 마련이 안 된 터라 달랑 카메라 한 대만 가지고 몇 장면을 찍어야 했다. 그 해에 벨라 루고시는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고, 드라큘라 복장과 함께 관에 묻혔다. 벨라 루고시가 에드 우드와 함께 촬영한 마지막 필름들은 훗날인 1958년, 에드 우드의 최고의 괴작영화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에서 쓰이게 되면서 그의 유작이 되어버렸다. 그의 라이벌격의 인물로는 [[프랑켄슈타인]] 전문 배우 [[보리스 칼로프]]가 있는데, 생전에 그와 견주는 걸 죽도록 싫어했다. 바로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인조인간 역을 처음에 벨라 루고시에게 맡기려고 했던 걸 루고시가 거부하여 칼로프[* 이전 글에는 칼로프가 러시아에서 이민왔다고 적혀있었는데 틀린 정보이다. 이 이름 탓에 종종 국내 영화지에서도 오류를 저질렀는데 [[보리스 칼로프]]는 영국인으로 본명부터 윌리엄 헨리 플랫이다. 러시아랑 상관없다.]에게 맡겼는데 이게 대박을 거두면서 칼로프가 출세했기 때문이었다. 칼로프도 루고시처럼 호러 캐릭터로 너무 이미지가 박혔지만[* 칼로프는 40대 중순 프랑켄슈타인에 나올 당시, 이미 80편이나 되는 영화에 나온 중견배우였다. 로맨스에서 서부물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에 나오던 배우였는데 이거 하나로 평생 호러단골 배우가 되어버렸다.] 그는 죽기 1년전인 81살 나이 때까지 꾸준히 배우로 활동하고 사생활적으로 꽤 평온[* 그런데 생애동안 결혼을 무려 6번이나 했다.(...) 루고시보다 한번 더 한 셈.]했기에 루고시와 대조적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정작 루고시와 칼로프는 영화에 함께 출연하면서 서로 절친한 [[친구]]로 지냈다는 것이다. 연기나 영화에 대한 사상이 비슷해서 죽이 잘 맞았다고 한다. 루고시가 프랑켄슈타인을 거절한 걸 두고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껄껄 웃었을 정도였다니 정말 친했던 모양이다. 둘은 [[로버트 와이즈]]의 [[바디 스내처|시체 도둑]]에 함께 출연해 명연을 펼치기도 했다. 다만 루고시가 사망한 뒤 열린 장례식에 칼로프는 참석하지 않았다. [[우표]]수집광으로도 유명했다. 네 번째 아내인 릴리언의 증언에 의하면 그가 모은 우표 수는 자그마치 15만 장 이상이었다고. 그 외에 축구팬이기도 해서 잘 나갈 때는 축구팀에 기부금을 모아주기도 했다. 자녀로는 넷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벨라 조지 루고시가 있으며[* 1938년생으로 나이 56세에 늦게 얻은 아들이다. 벨라 루고시 주니어라고 불리우는데 드라큘라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자신이 벨라 루고시의 아들임이 언제나 자랑스러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가 아이들 넷을 둠으로서 루고시의 네 손주가 되고 그 손주들의 자녀는 총 일곱으로 루고시의 증손주들이 된다. 말년에 자신이 평생동안 일군 부와 명예를 모두 상실하고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때문에 자신의 아들에게는 연예계에 발도 들이지 말 것을 권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들인 조지는 [[변호사]]가 되었는데 아버지를 닮은 미남인데다가 여러 사람들의 경제 문제에 관한 변호를 해주는 등 많은 선행을 베풀어서 평판이 좋은 편이다. 그가 죽고 난 뒤에, 그가 죽을 때까지 간직하며 집에 걸어두었던 한 여성의 [[누드]]그림이 경매에 나왔는데 이게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이 누드화의 모델이 다름 아닌 당시의 섹시스타였던 [[클라라 바우]] [* 어드벤처 게임 [[로라 보우 시리즈]]의 주인공 [[로라 보우]]의 모티브가 되었던 사람이다. 1920년대 [[플래퍼]] 시대의 아이콘이기도 하다.]였으며, 그녀 또한 죽을 때까지 벨라 루고시의 사인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둘 사이의 로맨스가 이후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자세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루고시가 아직 영화가 아닌 연극 드라큘라 배우로 유명세를 타고 있을 때 이미 스타였던 바우가 그의 공연을 보고 그에게 반해서 먼저 무대 뒤로 찾아왔다고 한다. 꽤나 격한 로맨스였던지 루고시는 이따금 절친들에게 자기 몸에 난 손톱자국을 보여주면서 [[섹스|클라라가 남겼다]]고 웃었다고 한다. 그 후 약혼까지 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헤어졌으나, 그녀를 잊지는 못했는지 그녀의 그림을 주문제작해서 마지막 두 아내와 살면서도 집에 늘 걸어두었다고 한다. 바우는 주변인들의 말에 의하면 '자기와 사귀는 남자들을 미쳐버리게 만드는 [[마성]]의 여자'였다나. 1979년에 [[바우하우스]]라는 영국의 [[고딕 록]] 밴드가 이 분의 이름을 딴 '''Bela Lugosi's Dead'''라는 곡으로 데뷔했다. 참고로 이 곡이 최초의 본격 고딕 록 노래. [[납골당의 미스터리]]에서는 호러물 단골배우이던 벨라 카디프가 어거지로 괴물 역과 살인자 역을 맡다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어렵게 살던 끝에 정말로 [[괴물]]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래서 감독과 제작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독을 넣은 술로 그들을 몰살시키고 죽어가는 그들을 즐기면서 본다는 에피소드가 나온 바 있다. 이름이나 호러영화 전문 배역이라는 걸 봐도 알 수 있지만 모델이 누가 봐도 벨라 루고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