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연방준비제도 의장)] [include(틀:타임지 올해의 인물/2000년대)] ||<-2><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0><table bordercolor=#333333><bgcolor=#ffffff>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attachment/200708130063.jpg|width=100%]]}}} || ||<-2><bgcolor=#333333> '''{{{#ffc224 제14대 연방준비제도 의장}}}''' || ||<bgcolor=#333333> '''{{{#ffc224 이름}}}''' ||<bgcolor=#ffffff> '''Ben Shalom Bernanke[br]벤 셜롬 버냉키''' || ||<bgcolor=#333333> '''{{{#ffc224 출생}}}''' ||<bgcolor=#ffffff> [[1953년]] [[12월 13일]] ([age(1953-12-13)]세) || ||<bgcolor=#333333> '''{{{#ffc224 출생지}}}''' ||<bgcolor=#ffffff>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노스오거스타 [[파일:미국 국기.svg|width=28]] || ||<bgcolor=#333333> '''{{{#ffc224 학력}}}''' ||<bgcolor=#ffffff> [[하버드 대학교]] {{{-1 ([[경제학]] / [[학사|B.A.]])}}} (1971-1975년)[br][[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대학원]] {{{-1 ([[경제학]] / [[석사|M.A.]])}}} (1975-1977년)[br][[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대학원]] {{{-1 ([[경제학]] / [[박사|Ph.D.]])}}} (1977-1979년) || ||<bgcolor=#333333> '''{{{#ffc224 소속}}}''' ||<bgcolor=#ffffff> [include(틀:공화당(미국))] ([[2015년]]까지)[br][include(틀:무소속)] ([[2016년]]부터) || ||<bgcolor=#333333> '''{{{#ffc224 경력}}}''' ||<bgcolor=#ffffff>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br][[프린스턴 대학교]] 교수[br][[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이사[br][[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br]브루킹스연구소 상임연구원 || [youtube(vLSNp9UOVu0)] [목차] == 개요 == [[미국]]의 [[경제학|경제학자]]로 [[앨런 그린스펀]] 의장의 뒤를 이어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했다. 1953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노스오거스타의 [[유대인]] 이민가정에서 태어났다. 친가는 [[우크라이나]], 외가는 [[리투아니아]] 출신이다. == 상세 == 초창기에는 [[앨런 그린스펀]]의 통화완화 정책으로 말미암은 [[2003년]] ~ [[2007년]]의 세계 대호황([[골디락스]] 경제)에 대해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통화흡수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다가 [[대침체]]가 터지면서 공격적인 통화완화와 경기부양을 감행했다. 미국의 [[기준금리]]를 제로금리까지 떨어뜨리고 [[양적완화]] 정책까지 밀어붙였다. 다만, 2008년 금융위기 직후에는 효과가 어느 정도 나타났지만 이런 정책이 3년 넘게 지속되면서 효과가 떨어진 게 단점이다. 원래는 [[세계 대공황]] 연구를 많이 한 경제학자였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원 거시경제학 과정에서 그의 논문을 거의 반 학기 동안 접할 정도라고. 그리고 [[잃어버린 10년/일본|일본의 버블 붕괴]]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여 당시 일본 정부의 정책적 실수들을 지적, ''''자산 붕괴에 대한 공포가 시장에 만연할 때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지체없이 투입해야 한다''''[* 그는 교수 재직 시절 일본의 버블 붕괴 이후 장기간 [[디플레이션]]을 당시 [[일본은행]]의 소극적인 통화정책 탓으로 돌리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8&aid=0002455180|#]]]는 결론을 얻게된다. 위에 언급된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의 [[양적완화]] 정책이 이런 취지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린스펀 역시 대공황 전문가였던 버냉키를 추천했다고. 아이러니하게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와의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대공황을 연구한 그의 학술적 배경은 부각조차 되지 않았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의장이라는 직책이 위기 대응시에만 필요한 자리도 아니고 '앞으로 크나큰 경제 재앙이 찾아올 것이니 과거에 있었던 비슷한 사례를 많이 연구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07년, 이미 모기지 관련 부실이 슬금슬금 지적되고, 이것이 연쇄적 파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지자 [[http://naver.me/5xNtIQaM|'그럴 일 없다. 안전할 것이다' 같은 입장을 공개표명]]한 [[흑역사]]가 있다. 물론 대공황 연구자로서, 그런 위기를 인정했을 때 벌어질 집단적 공포가 파국을 가속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뻥카를 친 것일 수도 있으나, 그렇게 보기에는 당시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할 때까지 이렇다할 대책이 없었다. 따라서 버냉키 본인도 모기지 사태에 안일하게 대응한 일정 책임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일이 터지고 나서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11945/1|소방수로서 활약한 공]]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정도. 그 유명한 [[양적완화]] 정책은 2014년 10월 종료 선언을 하였고, 후임인 [[재닛 옐런]]이 금리 인상을 저울질하다가 결국 결국 2015년 12월부터 서서히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 사람의 정책 덕에 그나마 금융위기가 [[대공황]]급 막장으로까지 가지 않고 비교적 수습이 잘 되었다는 게 통설이다. 실제로 버냉키의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톤의 정치학, 경제학 논문들은 버냉키가 없었다면 그 어떤 시나리오로도 제3차 세계 대전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장에 풀린 자금이 민간투자 쪽보다는 [[주식시장]]으로 흘러가면서 실질적인 경기부양 효과는 미미했고 주식을 보유한 부유층과 그렇지 못한 중산층 사이의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고 보는 분석도 있다. [[http://weekly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08/2015050801781.html|#]] 후임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1009_0012419730&cID=10104&pID=10100|재닛 옐런 부의장을 공식 지명]]했다. 공화당 소속이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출마한 이후로 공화당을 [[탈당]]해서 현재 [[무소속]]이다. 2019년 탄소세 도입을 위해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들과 함께 탄소세 도입 성명서에 서명을 하였다. [[분류: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출신 인물]][[분류:1953년 출생]][[분류:유대계 미국인]][[분류:미국의 경제학자]][[분류:연방준비제도 의장]][[분류:타임지 올해의 인물]][[분류:하버드 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