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1978년]] [[9월 26일]] 오후에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번데기(음식)|번데기]]를 사먹은 어린이들, 같은 날 [[파주시]]에서도 번데기를 훔쳐먹은 [[어린이]]들 중 10명이 사망하고 27명이 중태에 빠진 사건이다. == 상세 == 이 사건의 원인은 '''맹독성 농약'''인 파라티온[* 1940년대 개발된 강력한 에스테르계 살충제로 강한 독성 때문에 [[DDT]] 등과 함께 1970년대 이후 사용이 금지되었다. [[http://www.nifds.go.kr/toxinfo/SearchUtil_getDetailChemTcd.action?hddnToxicCode=T1000000331|식약처 독성정보제공시스템]] 참조.]을 보관한 포대에 번데기를 담은 것이였다. 당시 번데기는 "밀봉해야 하는 식품"이 아니라 시중에서 파는 여러 채소들처럼 일반 농산물로 취급되었다. 따라서 농사에서 흔히 쓰이는 포대에 담아 운반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이 포대가 농약을 보관한 포대였던 것이다.[* [[번데기(음식)|번데기]]항목을 봐도 알 수 있지만, 누에는 농약에 워낙 민감해서 약품의 접근을 엄금하는 가축이다.] 그 후 [[경찰]]은 이 사건의 관계자를 체포했으며 이 이후 불량식품[* 물론 번데기 자체가 불량식품인 것은 아니다. 이 경우는 번데기 보관의 위생문제 때문에 불량식품인 것.]이라면 백안시하던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불량식품]]의 무서움을 설파, 그 수요가 급격히 하락해 한동안 소라라든가 [[냉차]], [[뽑기]], [[쫀디기]]같은 또다른 길거리 식품이 철퇴를 맞고 [[암흑기]]에 빠져들었다. 사망자 중 김주용 군(당시 6살)은 아버지 김희철 씨(당시 44세)가 시장에서 사준 번데기를 먹고 2시간 뒤 복통, 구토 증상을 일으켜 아버지가 '''2시간 25분 동안 11곳의 병원'''을 돌아다녔으나 '손이 모자라다', '병실이 모자라다', '진료를 해줄 상황이 아니다' 등의 핑계를 대면서 진찰을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김 군은 진찰 한 번 못 받고 다음날 새벽 1시 40분 경 농약중독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이후 아버지 김 씨도 [[1979년]] [[3월 21일]]에 농약 음독자살로 아들의 뒤를 따르는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9032200209207024&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9-03-22&officeId=00020&pageNo=7&printNo=17678&publishType=00020|뉴스 라이브러리]] [[분류:음식 사건사고]][[분류:제4공화국/사건사고]][[분류:1978년/사건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