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러리 진 솔라나스(Valerie Jean Solanas) ([[1936년]] [[4월 9일]] ~ [[1988년]] [[4월 25일]]) [[파일:Valerie_Solanas.jpg]] [목차] == 소개 == 미국의 [[래디컬 페미니스트]]이자, [[앤디 워홀]]에게 총격을 가한 살인미수범이다. 어린 시절 그녀는 친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어렸을 때 이혼했으며, 솔라나스가 그녀의 의붓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자 그녀는 조부모에게 보내졌다. 그녀는 [[알코올 의존증]]자였던 할아버지에게 주기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 인해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매춘]]을 시작했다. 그녀는 가출해 결국 떠돌이가 되었다가,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심리학]]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서의 설명에 의하면 그녀가 레즈비언이라는 언급이 있다. == SCUM 선언문 == > 이 사회에서의 삶은, 최상의 경우에도 지루하기 짝이 없으며, 사회의 모든 측면은 여성을 배제하고 있으므로, [[시민의식]]이 있으며, 책임감 있고, 모험을 원하는 여성에게 남은 길은 [[정부]]를 전복하고, [[화폐]] 체계를 무너뜨리고, [[산업]]의 완전 자동화[* 솔라나스는 기계를 이용해 인류를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를 이루고 모든 남성을 제거하는 것 뿐이다. >...(중략)... > 남성의 존재는 [[생물학]]적 실패이다. 남성 [[유전자]] Y는 여성 유전자 X의 불완전한 형태이며 이는 남성이 유전적으로 불완전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자연주의의 오류|남성은 불완전한 여성이며, 유전자 단계에서부터 실패한, 걸어다니는 실패작이다. 남성은 결핍이며, 정서적 결함이다. 남성성은 결함있는 질병이며, 남자들은 정서적인 불구이다.]][* 사실 남성혐오적 성향이 짙게 묻어나오는 일고의 고려할 가치도 없는 문장이지만, 사실은 이조차도 엄밀히 따지면 틀렸다. 실제로 여성의 경우 X 염색체 중 하나를 바소체(barr body)라는 형태로, 기능적으로 불활성화된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실제로 신체 내에서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실질적인 성염색체의 경우 여성의 경우 1개 뿐이다. 반면 남성의 경우 바소체를 가지지 않고 X, Y 염색체 모두 단백질의 전사 등 생체적 관점에서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만일 백 번 양보해 그녀 말대로 남성이 열등한 존재라고 해도, 그렇다는 이유에서 죽게 만드는 게 정당한가. 그렇다면 인류의 유전자 풀에서 열등 인자를 우생학적으로 제거하겠노라고 선포한 나치즘은 훌륭한 사상이란 말인가.] > - SCUM 선언문 [[1968년]], 그녀는 SCUM[* Society for Cutting Up Men(남성 [[거세]] 단체)의 약자이다. 영어에서 'scum'은 '액체 표면에 떠 있는 불순물 거품', 혹은 '남성의 정액'이라는 뜻의 욕설이기도 하다.] 선언문을 썼다. 이 선언문에서, 그녀는 남성과 여성은 태생적으로 적대 관계에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오직 폭력적 [[혁명]]으로만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과학]] [[기술]]을 이용해, 남성 없이도 인류를 생산할 수단을 확보한 후에 전세계의 모든 남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더해 남성의 존재는 생물학적 실패이며, 남성은 유전자 단계에서부터 여성에 비해 열등하다는 [[우생학]]적 주장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SCUM 선언문이 [[미러링(신조어)|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일 뿐이므로, 진지하게 남성 학살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 책이 올림피아 출판사에서 처음 출판되었을 때 퍼블리셔 Maurice Girodias는 '그냥 농담'으로 생각하였다.[* Girodias, Maurice, Publisher's Preface (N.Y.: 1968), in Solanas, Valerie, SCUM Manifesto (London: Olympia Press, 1971 (ISBN 0 700 410 30 9)), p. xi. ] 그러나 정작 솔라나스 본인은 이 글을 '정말 진지하게(dead serious)'[* Marmorstein, Robert (June 13, 1968). "A winter memory of Valerie Solanis (sic): scum goddess". The Village Voice. New York, NY. XIII (35): 9–10, 20.] 쓴 것이며, 풍자나 패러디의 의미는 없다고 밝혔다. [[https://en.wikipedia.org/wiki/SCUM_Manifesto|영어 위키백과]] 그리고 후술할 사건으로 그것은 풍자나 패러디가 아닌 진심이었음이 확실히 드러난다. == 앤디 워홀 총격 사건 == [include(틀:사건사고)] 그녀는 [[앤디 워홀]]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 [[1967년]]에 그의 영화 촬영에 참여하기도 했다. 어느 시점에서, 그녀는 워홀에게 'Up Your Ass'라는 제목의 [[연극]] 대본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앤디 워홀이 그 작품을 공연해 주길 원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지나치게 [[외설]]적이었기 때문에, 워홀은 그것이 [[경찰]]의 [[함정수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워홀의 작품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몇 차례 경찰에 의해 공연이 중단된 적이 있다고 한다.] 워홀은 그 대본을 방치했고 30년이 지나서 겨우 발견되어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되었다. 이 무렵 솔라나스는 극심한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워홀이 의도적으로 그녀를 배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워홀이 자신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느꼈다. [[1968년]] [[6월 3일]], 솔라나스는 워홀의 작업실 '팩토리'에서 워홀에게 총을 쏘았다. 그녀는 워홀 옆에 있던 미술 평론가 마리오 아마야도 쏘았으며, 워홀의 매니저도 쏘려고 했으나, 탄환이 걸려 포기하고 작업실을 떠난다. 그녀는 그 날 바로 [[경찰서]]에 찾아가 [[자수]]했다. 아마야는 경상으로 당일 퇴원했지만, 워홀은 이 총격으로 인해 흉부를 열고 심장 마사지를 해야 할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평생 의료용보호대를 차고 살아야 하는 [[장애]]를 겪게 되었고, 이는 이후 그의 삶과 작품 활동에 큰 그늘을 드리우게 되었다. 반면 솔라나스는 [[살인미수]]죄로 기소되었으나, 그녀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는 점이 참작되어, 처벌은 3년간 [[정신병원]]에서 치료 받는 정도로 끝나게 되었다. == 이후의 삶 == 워홀을 쏜 뒤로 [[정신이상자]]로서 3년 동안 [[정신병원]]에서 지낸 그녀는 [[1971년]] 석방 이후에도 워홀을 죽인다고 말하다가 정신병원에 다시 갇혔다. 정신병원에서 풀려난 이후, 그녀는 워홀을 [[미행]]하다가 다시 체포된다. 이렇게 여러 번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하던 끝에 사회로부터 미친 여자로 무시 당했다. 페미니스트 예술가 울트라 바이올렛[* 본명은 이사벨 듀프레인(Isabelle Dufresne)]은 늘그막의 그녀를 만났는데, 솔라나스는 집도 없이 [[자서전]]과 여러 책을 낸 수익금으로 여전히 여러 호텔을 오가며 어렵게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1987년]] 워홀이 죽고 나서 솔라나스와 만난 바이올렛의 회고에 의하면 솔라나스는 여전히 워홀을 죽여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고, 이에 바이올렛이 워홀은 이미 병으로 죽었다는 말을 하자 못 믿어 했다고 한다. 결국, [[1988년]] [[4월]] 25일, 그녀는 샌프란시스코 텐덜로앵의 한 허름한 호텔에서 돌보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갑자기 [[폐렴]]으로 죽는다. 솔라나스는 죽기 직전까지도 여전히 워홀을 어찌 죽일까 소리만 했다. == 페미니즘계에서의 평가 == 수많은 저명한 [[페미나치|페미니스트]]들이 솔라나스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표명했다. [[전미여성기구]](NOW)에서는 그녀를 [[정신병원]]에서 석방하라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전미여성협회]] 대표 티그레이스 앳킨슨은 그녀를 "여성운동계 최초의 [[챔피언]]"[* Nickels, Thom (2005). Out in History: Collected Essays. STARbooks Press. ISBN 978-1-891855-58-0.]이라고 평가하였다. 솔라나스의 [[변호사]] 플로린스 케네디는 솔라나스가 "여성운동계에서 가장 중요한 [[대변인]]"이라고 평가했다. 정작 NOW의 수장인 베티 프리댄은 밸러리 솔라나스를 거부했으나 이후 페미니스트들에게 '''[[백래시(도서)|백래시]]적 인물로 평가받게 됐다.''' 베티 프리댄과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대립한 대표적 사례가 티그레이스 앳킨슨이다. 티그레이스 앳킨슨은 원래 베티 프리댄에 동조해서 NOW에 활동했으나 프리댄이 거절해서 NOW를 나간 인물인데, 그런데 그 프리댄이 티그레이스 앳킨슨을 거절한 이유는 티그레이스 앳킨슨이 '''[[앤디 워홀]]을 총격으로 테러한 밸러리 솔라나스를 미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티그레이스 앳킨슨은 밸러리 솔라리스에 대해 '''"여성 권위의 첫 번째 탁월한 챔피언", "페미니스트 운동의 주인공"'''이라고 발언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Ti-Grace_Atkinson|#]], [[https://en.wikipedia.org/wiki/Valerie_Solanas|#]] [[1996년]]에는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I Shot Andy Warhol)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되었다.[* 참고로 이 영화의 음악감독이 앤디 워홀이 후원했던 록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전 멤버인 '존 케일'이다(...). 사실 존 케일 본인도 밴드가 앤디 워홀의 명성에 묻어가는 데에 불만이 컸다고 한다.] 제법 작품성을 인정받아 여러 영화제에서 상도 여럿 받았다. 하지만 브렌 파스 교수는 '솔라나스는 '자신들에게 지지의사를 보내준' 이들의 운동에 동참하고자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오히려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전미여성기구 사람들을 조롱하면서 그들의 운동을 분열시키려고 했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파스는 솔라나스의 삶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의 모순'''도 주장한다. [[레즈비언]]이면서 남성을 상대로 [[매춘]]을 했고, 나중에는 혼동 끝에 스스로 [[무성애자]]라고 주장했고, [[퀴어]] 문화를 거부했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면서 타인에게 관심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애초에 솔라나스가 주장한 본인의 '불행한 과거'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솔라나스의 사촌은 그녀가 [[20대]] 말에서 [[30대]]까지는 [[웨이트리스]]로 일했고 매춘은 하지 않았다고 하며, 그녀의 친구였던 제프리 라기어는 그녀가 멋진 유년기를 보냈다고 말한다. [[분류:미국의 범죄자]][[분류:테러리스트]][[분류:1936년 출생]][[분류:1988년 사망]][[분류:뉴저지 주 출신 인물]][[분류:레즈비언]][[분류:스페인계 미국인]][[분류:페미니스트]][[분류:래디컬 페미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