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42600329207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4-26&officeId=00032&pageNo=7&printNo=10022&publishType=00020|당시 사건을 다룬 기사]] [[1978년]] [[4월 8일]]에 백화양조의 계열사 사장의 아들인 강 모군(당시 18세)이 김 모양(당시 18세)을 백화양조 실험실에서 살해한 사건으로 이 사건으로 회사의 이미지가 상당히 추락했다. == 사건의 전말 == 강 모군은 김 모양과 사귀는 사이였으며 4월 3일에는 김 양이 어머니에게 "부잣집 아들과 가까워져서 이제 나도 잘 살 수 있게 됐다." 고 말했고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인 4월 7일에는 강 군이 김 양의 집에 전화해 다음 날에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러다가 4월 8일에 강 군이 김 양을 그녀의 집 앞에서 만나 백화양조 앞을 지나가다가 경비원이 없는 틈을 타 실험실로 들어가 김 양의 남자 관계에 대해서 추궁하다가 김 양이 "나는 너 외에는 사귀는 남자가 없다." 고 말하면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옷을 모두 벗은 후 경련을 일으키며 실신하자 술통에 빠트려 익사시켜버렸다. 참고로 이 때 김 양은 그저 기절한 것뿐이라서 잠시 시간이 지나면 깨어날 상황이었는데 이 바보가 죽은 줄 알고 술통에 빠트려서 죽은 것이다... == 재판 == 4월 26일에 강 군이 살인 및 시체 유기 혐의로 구속되었다. 8월 26일에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의 이명재 검사가 강 군에게 단기 5년, 장기 10년의 [[징역]]을 구형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8260020920701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8-26&officeId=00020&pageNo=7&printNo=17505&publishType=00020|#]] 10월 14일에는 선고공판에서 살인죄와 주거침입죄가 적용되어 단기 2년 6개월, 장기 3년의 징역이 선고되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101400329207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10-14&officeId=00032&pageNo=7&printNo=10166&publishType=00020|#]] 그 뒤 강 군은 만기 출소하였고 근황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 기타 == * [[양조장 발효통 안에 빠진 사람]]이라는 도시전설과 유사하다. *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거짓말탐지기]]를 도입한 수사기법을 사용했다. 다만 이것은 실용화 단계이며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2년 후 일어난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부터이다. *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사건으로 인해 백화양조의 이미지가 상당히 추락했는데, 그 중에서도 이 회사에서 판매된 소주인 '백화소주'는 시체가 들어간 상태로 출시되었고 당시 주간경향에서 심층보도를 하고 백화양조 측에서 재판매했다는 내용을 번복하는 등 기사 내용을 두고 주간경향과 백화양조 간의 신경전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 백화양조는 이 일로 위기를 맞았지만 이 사건과는 상관없이 양주 부문에서 강세를 보였는데, 당시 판매되었던 브랜드는 '조지 드레이크', '베리나인', '알렉산더', '삼바25' 등이 있으며 1982년에 회사명 또한 베리나인으로 독립하였고 이후 [[두산그룹]]이 인수하게 되었다. * 해당 사건이 일어났던 공장은 사건 이후에는 [[롯데주류BG]]의 공장으로 존재하고 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살인사건/한국)] [[분류:1978년/사건사고]][[분류:제4공화국/살인사건]][[분류:군산시의 사건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