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亨南 1915년 11월 3일 ~ 1950년 (향년 34세)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15년 [[전라북도]] [[익산시|익산군]] 황등면에서 출생했다. [[전주신흥고등학교|전주신흥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본]] [[니혼대학]] 문과에 재학하다 3학년 때 중퇴하였다. 중퇴 후 귀국하여 전주군 봉동면 사립 영흥학교 교원, 황등면 사립계동학교 교원 및 교장, 황등순국청년동맹위원장 등을 지냈다. [[8.15 광복]] 후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황등지회 부위원장, [[대동청년단]] 익산군단장 및 황등군단장 등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동청년단]] 후보로 [[전라북도]] 익산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전라북도 익산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국민당]] [[소선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6.25 전쟁]] 중 피살되었다. [[분류:전주신흥고등학교 출신]][[분류:니혼대학 출신]][[분류:익산시 출신 인물]][[분류:1915년 출생]][[분류:제헌 국회의원]][[분류:대동청년단 국회의원]] [[분류:1950년 사망]][[분류:살해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