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tv.pstatic.net/yonhapnews_33722929.jpg|width=150]] 裵聖基 1917년 3월 27일 ~ 1970년 5월 14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17년 [[전라북도]] 전주군(현 [[완주군]] 지역)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후기 [[농업]]에 종사하다가 조선 [[수의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완주군 농회 축산과장, [[전주시]] 사법보호회 상무주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완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입당하였고, 계보상으로는 신파에 속하였다. 1956년 민주당 전라북도 완주군 을 지구당의 상임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6월 [[6.25 전쟁]] 중에 전라북도 남원군, 순창군에서 일어났던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6010020910102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0-06-01&officeId=00020&pageNo=1&printNo=11744&publishType=00010|조사를 할 것을 요청하였다]]. 같은 해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1년 5월 초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정무[[차관]]에 임명되었으나 [[5.16 군사정변]]으로 보름만에 경질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전라북도 완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최영두(1923)|최영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5년 통합야당 [[민중당(1965년)|민중당]]에 속하였다가 민중당을 탈당하여 [[신한당]]에 몸담았다. 1967년 초 다시 통합야당 [[신민당(1967년)|신민당]]에 몸담았다. 같은 해 치러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류범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분류:제4대 국회의원]][[분류:제5대 민의원의원]][[분류:민주당(1955년) 국회의원]][[분류:완주군 출신 인물]][[분류:1917년 출생]][[분류:1970년 사망]][[분류:대한민국의 차관급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