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74ca1><tablebgcolor=#074ca1> '''{{{#ffffff 배대웅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bgcolor=#fff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 [include(틀:삼성 라이온즈 주장)] ---- ||<-5><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라이온즈}}}]] {{{#ffffff 등번호 3번}}}''' || || 팀 창단 || → || '''배대웅(1982~1986)''' || → || [[정윤수]](1988) || }}} || ---- ||<-2><table align=center> [[파일:/image/410/2012/12/13/20121213_1355356425.JPG_59_20121213094407.jpg|width=450]] || || '''이름''' || 배대웅(裵大雄 / Dae-woong Bae) || || '''생년월일''' || [[1953년]] [[3월 20일]] ([age(1953-03-20)]세) || || '''출신지''' || [[대구광역시]] || || '''학력''' ||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 || '''포지션''' || [[2루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멤버 || || '''소속팀''' || 기업은행 야구단 (1972~1977[* 1976~1977년까지 군 복무.]) [br] [[포항제철 야구단]] (1978~1981) [br] [[삼성 라이온즈]](1982~1986) || || '''지도자 경력''' || [[삼성 라이온즈]] 수비·주루코치(1987~1995) [br] [[롯데 자이언츠]] 1군 수석코치(1997) [br] [[롯데 자이언츠]] 1군 작전·주루코치(1998~1998.6.) [br]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1998.6.~1998) [br] [[한화 이글스]] 1군 작전코치(2001) || [목차] == 소개 == 전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했다. 1971년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남우식]], [[천보성]], [[정현발]] 등의 동기, 1년 후배 [[황규봉]], [[이선희(야구)|이선희]] 등과 함께 대통령배, 청룡기, 봉황기, 황금사자기에서 모두 우승했다. 어려웠던 가정형편 때문에 고교 졸업 후 바로 실업팀인 기업은행에 입단했다. 1975년 아시아선수권대회부터 국가대표 2루수로 자리 잡으며 당시 유격수 [[김재박]]과 1981년까지 7년간 키스톤 콤비를 이뤘다. 김재박이 화려한 수비를 자랑했다면 배대웅은 안정적인 수비로 내야진을 이끌었다. 배대웅을 기업은행으로 스카우트했던 [[김성근]] 감독은 '포지션은 달랐지만 [[박진만]] 같은 선수였다'고 평가했다. [[1978년]] [[포항제철 야구단]]으로 팀을 옮기고,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며 당시 실업야구선수라면 은퇴를 고려했을 만 28세의 나이로 연고팀인 [[삼성 라이온즈|삼성]]에 입단했다. 팀내에서 [[황규봉]] 다음 가는 연봉을 받았으며 다년의 국가대표 경험 덕분에 초대 주장을 맡았다. 프로야구 첫 몰수게임의 원인 제공자였다. [[1982년]] [[8월 26일]] [[이승엽 야구장|대구구장]]에서 열린 [[MBC 청룡]]전에서 4회말 1사 1,2루 상황에서 [[정현발]]이 유격수 땅볼을 치자 배대웅은 병살타를 막기 위해 MBC 2루수 [[김인식(1953)|김인식]] 쪽으로 거칠게 슬라이딩했다. 김인식은 넘어졌다가 일어나선 배대웅의 얼굴을 쳤다. [* 근데 이게 머리를 툭 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때문에 [[벤치 클리어링]]도 일어났고, 심판은 김인식을 퇴장시켰다. 김인식이 퇴장되자 [[백인천]] MBC 감독이 왜 김인식만 퇴장시키냐며 항의하다가 선수들을 모두 철수시켜 몰수게임이 선언됐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끼리는 잘 해결했다. 김인식은 배대웅의 얼굴을 친 후에 바로 사과했고, 동기인데다 오랜 기간 국가대표를 같이 했던 사이라 배대웅도 [[다혈질]]적인 김인식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 사과를 받아줬다. 그리고 이 몰수게임이 있었던 다음날에는 같이 술을 마시며 이 일을 두고 얘기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타자였다. 팀이 8:3으로.지고 있던 198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 2사 후에 타석에 들어서서 유격수 땅볼을 치며 시리즈를 끝냈다.~~허용타자~~ 1983 시즌에는 0.285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1983 시즌 후 무릎수술을 하는 등 점점 잔부상으로 결장하는 일이 잦아지며 백업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은퇴하기 전까지도 경기 후반에 대수비로 들어서 안정적인 수비를 자랑했다. 프로 5년간 통산 실책이 20개로, 1년당 4개를 범한 셈. 1986 시즌 후 은퇴하며 [[천보성]], [[황규봉]]에 이어 삼성 선수 중 세 번째로 코치가 되었다. [[삼성 라이온즈|삼성]], [[롯데 자이언츠|롯데]], [[한화 이글스|한화]] 3팀을 거치며 2001년까지 코치로서 선수들을 지도했다. 현재는 KBO 육성위원 및 리틀야구 영남지부장을 맡은 한편 음식점을 경영 중이다. == 연도별 성적 == ||<-15><table align=center><bgcolor=#000000> {{{#ffffff 역대 기록}}} || ||<rowbgcolor=#0066b3>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 || {{{#ffffff 타수}}} || {{{#ffffff 타율}}}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타점}}} || {{{#ffffff 득점}}} || {{{#ffffff 도루}}} || {{{#ffffff 4사구}}} || {{{#ffffff 장타율}}} || {{{#ffffff 출루율}}} || || 1982 ||<|5> [[삼성 라이온즈|삼성]] || 71 || 235 || .230 || 54 || 9 || 0 || 5 || 27 || 30 || 7 || 25 || .332 || .304 || || 1983 || 78 || 228 || .285 || 65 || 10 || 2 || 2 || 22 || 27 || 6 || 25 || .373 || .353 || || 1984 || 43 || 104 || .240 || 25 || 2 || 0 || 0 || 5 || 5 || 4 || 11 || .260 || .313 || || 1985 || 91 || 161 || .273 || 44 || 8 || 1 || 3 || 18 || 18 || 5 || 9 || .391 || .312 || || 1986 || 72 || 94 || .266 || 25 || 3 || 0 || 1 || 11 || 5 || 2 || 6 || .330 || .310 || ||<-2><bgcolor=#ffff88><color=#373a3c> '''[[KBO 리그|KBO]] 통산''' [br] (5시즌) ||<rowbgcolor=#ffffff,#191919> 355 || 822 || .259 || 213 || 32 || 3 || 11 || 83 || 85 || 24 || 76 || .346 || .321 || == 관련 문서 == * [[야구 관련 인물(KBO)]]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53년 출생]][[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분류:삼성 라이온즈 은퇴/이적]] [[분류:경북고등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