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한국의 천주교 교구장 주교)] [include(틀:역대 천주교 마산교구장)] ||<-3><bgcolor=#eee8aa><tablealign=center> '''5대 [[천주교 마산교구|{{{#000000 천주교 마산교구}}}]]장'''[br] '''{{{+1 배기현 콘스탄틴}}}'''[br] '''裵基賢''' | '''Constantine Bae Ki Hyen''' || ||<-3><bgcolor=#eee8aa> [[파일:external/cathms.kr/11a3f63cc183e88d031f0480dce98483.jpg|height=399]] || ||<|2><bgcolor=#eee8aa> '''출생''' ||<-2><bgcolor=#ffffff>[[1955년]] [[2월 1일]]([age(1955-02-01)]세) || ||<-2><bgcolor=#ffffff>[[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북동[* 현 진주시 천전동.] || ||<bgcolor=#eee8aa> '''국적''' ||<-2><bgcolor=#ffffff>[[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8]] || ||<bgcolor=#eee8aa> '''재임기간''' ||<bgcolor=#ffffff>[[천주교 마산교구|마산교구]]장 ||<bgcolor=#ffffff>[[2016년]] [[6월 8일]][* 교구장 임기시작은 임명일이 아니라 착좌일 기준이다.] ~ || ||<-3><bgcolor=#eee8aa> [[파일:external/www.catholictimes.org/272775_669_2.jpg|height=299]] || ||<-3><bgcolor=#eee8aa>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Caritas omnia sustinet)'''[* [[고린토서|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3장 7절.] || [목차] == 개요 == [[한국 가톨릭]] 교회의 제5대 [[마산교구]]장 주교이다. [[세례명]]은 '콘스탄틴'이다.[* [[세례명]]인 콘스탄틴은 영어 표기에서 따온 표기이고(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표기는 '콘스턴틴'이다.) 콘스탄티노는 [[라틴어]] 인명인 '[[콘스탄티누스]]'의 탈격을 따른 표기이다. [[http://cathms.kr/xe/A_1|천주교 마산교구 홈페이지]]나 [[http://www.hankookilbo.com/v/fe1141fc75a44301b909c2fbe330f8b9|언론]]에서도 콘스탄틴이라 기입하고 있으며, 생애 부분에 영화 <콘스탄틴 대제>에서 영감을 얻어 세례명을 지었다고 한다.] == 약력 == === 사고뭉치 학창시절 === 배기현 주교는 [[1953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age(1953-01-01)]세) 아버지가 대학교 영문학 [[교수]][* 아버지는 배덕환(1916~2010): 부산 출신. 만주 대동학원 졸업(최규하 전 대통령과 같은 학교를 나왔다). 연극학자. 경남대 교수 역임. 일본 아시아 대학 객원 교수 역임. 창원전문대학 학장 역임. 국내 최초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어머니가 [[의사]]라는, 그 시기에 보기 힘든 유복한 집안이었다. 다른 주교들이 대부분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것과 달리, 배 주교의 아버지는 종교가 없었고 어머니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5살 때 [[마산]]으로 이사했는데, 집 근처에 천주교 월남동 성당이 있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라면 장소는 상관 없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성당에서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여담으로 [[마산]] 지역은 [[가톨릭]] 불모지였다. 그러다 [[한국전쟁]]으로 피난민들이 [[경상남도]]로 몰리면서 마산에도 인구가 늘어 [[천주교 마산교구]]가 1966년 설립되었다. 초대 교구장은 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주교]]로 수품된 [[대구대교구]] [[김수환]] 스테파노 신부였다.] 천주교와 개신교 간 반목이 심했던 일반적인 풍토를 고려하자면 어머니의 신앙관이 상당히 [[교회 일치 운동]]과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러나 배 주교는 학창시절을 상당히 방황하면서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엔 지역의 수재로 꼽힐 만큼 공부를 잘 했기에,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선생님이 욕심을 내 부산의 사립중학교에 응시하라고 했으나 긴장으로 시험에 실패, 낙방한 것. 이에 대한 반동으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고, [[마산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4번이나 정학을 당할 만큼 문제아로써 학창시절을 보낸 것이다. 자유로운 종교관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는 아들이 신앙을 가지고 마음을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성당에 다녀볼 것을 권유하였으며,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께 용돈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마산 월남동 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았다. [[세례명]]은 당시에 유행했던 영화인 [[콘스탄티누스 1세|콘스탄틴 대제]]의 주인공을 보고 [[콘스탄틴]]이라고 정했다고 한다. === 방황했던 신학생 시절 ===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던 배 주교는 문득 [[신부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신학교를 목표로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집안이 [[천주교]]랑 관련이 전혀 없었고 어머니가 [[개신교]] 신자였지만, 배 주교의 신학교 입학을 전혀 막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학창시절에 유명했던 --불량한-- 행실로 인해 성당 신자들에게 '''"네가 [[신부(종교)|신부]]가 되면 개도 신부가 되고, 소도 신부가 된다."'''(배 주교 교구장 착좌 미사 강론 중) 라거나 '''"저런 망나니 같은 애가 무슨 신학교냐? 절대 오래 못 있는다."'''고 할 정도로 걱정을 들었다고 한다. 당시 [[마산교구]] 신학교였던 [[광주가톨릭대학교|대건신학대학]]의 면접에서도 0점에 가까운 교리시험 점수와 학적부에 적혀 있는 4번의 정학을 보고서 면접관이던 교수 [[신부(종교)|신부]]가 "네가 어떻게, 왜 신부가 되려고 하느냐?"라고 묻자 '''"저는 친구를 좋아하는데, 친구들을 만나고 들어와서 혼자 앉아 있으면 그렇게 쓸쓸할 수 없습니다. [[야훼|하느님]]을 찾아가면 '왜 쓸쓸한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비록 행실과 교리시험 점수에서 낙제점을 받았지만 진심 어린 답변으로 인해 신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유분방했던 그에게 엄격한 신학교 생활은 고역이었다고 한다. 특히 새벽 [[미사]] 시간이 고역이었는데 미사에 거의 매일 빠졌다고 전해진다. 담당 사감신부는 당시 마산교구장이었던 [[장병화]] 요셉 주교에게 "신앙심이라는 것은 단 한 톨도 없다."라고 적은 평가서를 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신학생이었던 배 주교를 아꼈던 장 주교는, 그 평가서를 책상 속에 집어넣고 모른 척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배 주교는 신학교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2학년 1학기 때 신학교를 나오게 된다. 원래는 1학년 2학기 때 퇴학 위기까지 갔는데 [[1972년]] [[10월 유신]]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귀가조치가 내려져서 퇴학은 면했다고 한다.[* 원래 항목은 [[3선 개헌]]으로 되어있었는데, 그러면 [[1969년]]으로 시기에 맞지 않는다.] 자퇴한 것이 아니고 휴학했는데, 이때 어머니가 가장 슬퍼하셨고 아들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천주교]]로 [[개종]]까지 하게 된다.[* 배 주교의 어머니 전풍자 모니카 여사는 1973년 [[마산]]에서 개원의 생활을 접고, 소외되고 가난한 [[한센병|한센인]]들이 사는 [[소록도]]에서 헌신적인 의료 활동을 펼쳤다. 1981년 '용신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8년 선종. 참고로 전 여사의 [[세례명]]인 [[모니카]] 성녀는 [[가톨릭]]의 위대한 성인 [[아우구스티노]]의 어머니로, 오랫동안 이단과 방탕한 생활에 빠져 방황하던 아들 아우구스티노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한 어머니로 유명하다.] "그동안 너무 편안하게 살았다."는 생각을 한 배 주교는 군대에 입대하였다. 그래도 다시 신학교에 돌아가고 싶었는지 "신학교에 돌아가려면 고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공수부대]]병으로 지원하였다. 낙하훈련을 받던 중에 허리와 무릎을 심하게 다쳤고,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던 그는 평생 허리통증을 얻게 되었다.[* 지금까지 11번의 허리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제대 후 신학교에 돌아갔다. 제대 후에는 부상으로 인한 건강상 사유로 휴학을 자주 하였지만 그렇게 행복했다고. === [[마산고]] 사고뭉치, [[신부님|신부]]가 되다 === 평균적으로 신학교 입학 후 10년의 양성과정을 거치면 [[신부(종교)|신부]]가 되었지만, 배 주교는 신학교 시절 방황과 건강상 사유로 인해 12년 만인 1985년 [[성품성사|사제품]]을 받았다. 어머니는 "죄 많은 집안에서 신부가 나왔다."며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출신 성당인 [[천주교 마산교구]] 월남동성당에서 첫 [[미사]]를 집전하는데, 제대 위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배 주교를 보고 많은 신자들이 믿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이 소식은 마산 시내에 퍼져서 '배기현 사제 수품'은 '''[[마산고등학교]] 3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고 한다.--그럼 나머지 2개는 뭐지?-- [* [[광주대교구]]장 [[김희중(종교인)|김희중]] 히지노 대주교(1975년 사제 수품, 2003년 주교 수품)의 증언. 다만 배기현 주교가 [[광주가톨릭대학교]] 출신이므로 인연이 있을 수 있다. 정확하게는 배 주교의 신학생 시절 스승이었다고 한다. 김희중 주교가 학기말 시험을 앞둔 신학생들에게 긴장 풀라는 의미에서 사탕을 나눠줬는데 그 사탕에 대한 답례로 사제로 수품된 이후 김 주교에게 '학교로 생선 '''쪼매''' 보내겠습니다.'고 말씀드리고 대형 물차에 한 가득 생선을 보냈다고 한다. 아래 링크된 동영상 44분경부터 그 일화를 직접 들을 수 있다.] 사제 수품과 동시에 남해성당 주임신부로 사제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89년부터 1996년까지 7년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과 [[독일]] 뮌헨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다. 귀국 후에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미국]]에서의 2번의 교포사목과 사천성당 주임신부와 덕산성당 주임신부를 지내다가, 2015년 1월부터 [[천주교 마산교구]] 총대리 겸 사무처장으로 봉직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배 주교는 [[마산교구]]의 살림을 알뜰히 챙기면서도 사회정의를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였는데, 세월호 2주기 미사에서 "[[세월호 참사]]는 [[천민자본주의]]에 찔린 [[물고기]]"라고 강론을 하고 [[남북통일]] 세미나를 주재하는 등의 여러가지 사회 참여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한 "65세에 은퇴하여[* [[천주교]] 성직자들의 정년은 65세이다. 참고로 각 교구 교구장 정년이 75세이다.] 거리의 악사로 살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했을 만큼 음악에도 조예가 깊다. 여러가지의 [[성가]]와 미사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 [[주교]] 수품 이후 === [[2016년]] 4월 19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을 표명한 마산교구장 [[안명옥(종교인)|안명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의 사임청원을 받아들이고, 배기현 신부를 마산교구장 주교로 서임하였다. 그해 6월 8일 주교 승품과 동시에 [[천주교 마산교구]]장으로 착좌하여 공식업무를 시작하였다.--어찌보면 마산고 최대의 미스터리-- 그 동안의 [[사제(성직자)|사제]]생활 동안 특유의 유머를 보여주던 배 주교는 [[http://www.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510965|착좌미사중 축하식 중 여러 축사에 이은 배 주교의 답사에서 첫 마디를 --매우 심각하게--'''"일이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https://youtu.be/YL1mJBvpOIE?t=1h2m20s|1:02:20부터.]] "사제품을 받던 날, '죄 많은 집안에 신부를 주셨다'고 제 어미가 통절히 울었습니다", "(주교로 수품되자) 어릴적 부모님을 그토록 애를 많이 먹였는데, 이제 마지막 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훌륭해서 (주교로) 뽑힌 게 아니라 불쌍해서 불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겸손해서 혹은 겸손을 가장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사실이 그러합니다", "배 주교는 지금도 신부, 주교가 된 것에 대해 ''''기가 차다''''고 말한다." 등의 발언... --[[클레이튼 커쇼|커쇼]] + [[트라웃]] 급 셀프디스-- 특히 [[미사]] 후에는 쾌활한 성격을 보여주듯 신자들을 직접 만나 기쁨을 나누기도 하였다. 평소에 배 주교와 친분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청년들이 가서 "주교님 오늘 멋있으셨어요~~" 하니까 주교는 "야C 멋있는기 뭐꼬? 더워 죽는 줄 알았다" 라고 하였다. 한 어린이에게는 '''"너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해. 안 그러면 장가도 못 가고 나처럼 되는 거야"'''라고 --셀프디스-- 말을 하여 신자들을 웃음 바다로 만들기도 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a0Y8kZ7hiIY|# 증거 영상!]] 배기현 주교는 2017년 3월 열린 2017년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분류:천주교 마산교구장]][[분류:마산고등학교 출신]][[분류:진주시 출신 인물]][[분류:1955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