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밀양 박씨]][[분류:칠곡군 출신 인물]][[분류:1906년 출생]][[분류:1984년 사망]]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박형동.jpg|width=300px]] || || 성명 ||박형동(朴亨東) || || 일본식 성명||松井亨東 || || 본관 ||[[밀양 박씨]][[http://chilgok.grandculture.net/Contents?local=chilgok&dataType=99&contents_id=GC02300729|#]] || || 생몰 ||[[1906년]] [[6월 21일]] ~ [[1984년]] [[3월 29일]] || || [[출생지]] ||[[경상북도]] [[칠곡군]] 파미면[br](현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형동은 1906년 6월 21일 경상북도 칠곡군 파미면(현 왜관읍 왜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7년 2월 [[신간회]]가 결성되자, 칠곡 왜관지회에 가입하여 무산자 아동의 수업료 면제와 민족교육운동에 힘썼다. 또 1928년 11월 10일 일본 천황 [[히로히토]]의 즉위 축하행사 당시 일본 천황을 욕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구금당했다. 이후 [[동아일보]] 왜관지국을 경영하면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관련되어 구속된 애국인사들을 지원할 목적으로 모금활동을 펴는 한편, [[정행돈]] 등과 함께 독서회를 명목으로 한 비밀결사 성진회(惺進會)에서 농촌계몽과 항일운동을 지속하다 1939년 10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7차례에 걸쳐 구류갱신처분을 당하며 구금되다가[[http://theme.archives.go.kr/next/indy/listkeywordSearch.do?page=1&listSize=10&flag=3&actionFlag=det&keyword=%eb%b0%95%ed%98%95%eb%8f%99&reKeyword=&owner=&organ=&sdate=19040101&edate=19451231&oldAddress=&momentDates=&sort=0&names=&crime=&depth11=&depth12=&ivl_cases=&retIvlRegion=&search_region=|#]] 1941년 3월 17일에서야 대구지검의 예심에서 대구지방법원 공판에 회부되었으며[[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5702&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40999&actionType=det&flag=4&search_region=|#]], 1942년 2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미결 구류일수 전부 본형에 산입)을 언도받았다.[[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5843&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08686&actionType=det&flag=2&search_region=|#]]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8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 이후 1984년 3월 29일 별세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