βαχλο[* 영어로도 [[박테리아]](bacteria)와 딱 한 글자 차이로 뜻이 달라진다.] [목차] == 개요 == [[고대]] [[트란스옥시아나]] [[중앙아시아]]의 지명. 아무다리야(آمودریا) 강과 힌두쿠시(هندوکش) 산맥 사이의 평야 지대로써, 현대의 [[아프가니스탄]] 북부 일대를 가리킨다. [[사산 왕조]] 이후 [[이슬람]] 시대에는 [[토하리스탄]](Tokharistan), [[중국]]에서는 대하(大夏)라고 불렀다. 좁은 의미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정복 이후 박트리아 지역에 들어섰던 헬레니즘 국가인 그리스-박트리아 왕국(Greco-Bactrian Kingdom)을 가리키기도 한다. 서양권에서는 [[낙타]] 중 쌍봉낙타를 박트리아 낙타라고 하기도 하는데, 유럽에서 가장 가까운 쌍봉낙타 서식지가 그 주변이기 때문이다. 단봉낙타는 아라비아 낙타라고 한다. == 초기 역사 == [[인도유럽어족]]의 발상지에서 [[인도]], [[이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지역인 데다 강이 많아 토지가 비옥하였으므로 고대부터 정착 사회가 발달했으며, [[이란]]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웃한 지역인 [[소그디아나]], [[마르기아나]][* 소그디아나는 사마르칸트(Самарқанд), 부하라(Buxoro) 등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 [[우즈베키스탄]]동부와 [[타지키스탄]] 일대를 가리키며, 마르기아나는 메르프(Merw)를 중심으로 한 [[투르크메니스탄]] 동부 지역을 가리키는 고대 지명이다.]와 합쳐서 [[옥수스]][* [[아무다리야 강]]의 다른 이름이다.] 문화권이라고 하기도 한다. [[페르시아]]의 국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선지자 [[조로아스터]]가 태어나 처음으로 교세를 편 곳도 박트리아였다. [[키루스 2세]]에 의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병합된 후에는 비옥한 토지, 중앙아시아와 이란, 인도를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지라는 입지 덕택에 [[이집트]], [[바빌론]]에 버금가는 번영을 누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케메네스 왕조에 쳐들어왔을 때,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패배한 다리우스 3세가 도망쳐 재기를 도모한 곳도 박트리아였다. 하지만 그는 박트리아의 [[사트라프]]였던 베소스에게 살해당했고, 베소스 역시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살해당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디아도코이]] 전쟁의 결과 다른 동부 지역들과 함께 [[셀레우코스 왕조]]의 땅이 되었다. ==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 [[헬레니즘 제국]] || ||<|3><:> [[셀레우코스 제국]] ||<|3><:> {{{+1 →}}} ||<|3><:>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3><:> {{{+1 →}}} ||<:> [[인도-그리스 왕국]] || ||<:> [[파르티아]] || ||<:> [[인도-스키타이]]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Greco-BactrianKingdomMap.jpg]] == 이후 == 대월지를 서방에서는 토하르인(Tokharians)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박트리아 멸망 이후에는 이 지역을 [[페르시아어]]로 토하리스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중국]]에서 이곳을 대하(大夏)라고 부른 것도 그것을 음역한 것이다. 3세기경 쿠샨 왕조가 해체되는 와중에 [[페르시아]]에서 일어난 [[사산 왕조]]에 의해 정복되었고, 다시금 확고한 페르시아 문화권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는 [[에프탈]]이나 [[튀르크]]의 침입, [[이슬람]]의 대정복과 호라즘과 같은 트란스옥시아나의 다른 페르시아 문화권 지역들과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게 된다. 하지만 쿠샨 왕조 시기까지는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서부의 문화가 상당한 정도로 그리스화된 배경이기도 하다. [[분류:기원전 2세기 멸망]][[분류:아시아의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