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박처원.jpg]] [[분류:남포시 출신 인물]][[분류:1929년 출생]][[분류:2008년 사망]][[분류:대한민국의 범죄자]][[분류:실향민]][[분류:경찰공무원]] [목차] == 개요 == >'''"[[지랄|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한 발언 (1929~2008)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날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처 처장([[치안감]])으로서 고문자행부터 사건은폐까지 일련의 사건에 대한 실질적인 총책임자.''' == 생애 == [[1929년]] [[평안남도]] 진남포(현 [[북한]] [[남포특별시]]) 출생. 해방 후 월남하여 [[1947년]] 경찰이 되었으며,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 내내 [[고문 경찰]]의 대표격으로 활동하며 [[치안감]]까지 올랐다. 치안감으로 영전하면서부터 치안본부 대공수사처 처장으로서 5공화국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남영동]]의 [[대공분실]]을 총괄하게 되었는데 그의 재임기간 중 수많은 민주 투사들이 남영동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명을 달리하였으며 당시 남영동의 위상은 남산 국가안전기획부, 서빙고 국군보안사령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착각과는 다르게 5공 정권의 고문 행위는 주로 남산 안기부가 아닌 남영동을 비롯한 경찰에 의해 자행되었으며 5공정권의 대표적인 치부인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역시 안기부가 아닌 경찰의 소행이다. 심지어 고문기술자로 악명높은 [[이근안]]도 안기부나 보안사 소속이 아닌 현직 경찰로서 박처원의 경호와 허드렛일을 도맡던 사람이다.] 이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1996년]] [[대법원]]에서 사건 축소 및 은폐 혐의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박처원은 자신이 자행한 고문 행위에 대해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당뇨 증상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았다. 이후 [[2008년]] 사망했다. == 기타 == * 전 경찰공무원 [[이근안]]과도 관련있는 인물로 1970년 이근안이 박처원의 경호원을 맡으면서 이어졌다고 한다.[[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43822]] * 존재 자체로 중죄인이지만 대공처장 현임 시절에 '운동권이라고 무분별하게 잡아들이지 말고 혐의가 확실한 자만 취조하라'라는 지침을 내리는 등 대공분야 지휘관들 중에선 '''비교적''' 유화적이고 합리적인 편이었다고 한다. *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가족은 지주계급이었고, 북한에서 몰살당하고 혼자 도망쳐서 월남했다고 한다. 그가 남대문경찰서와 같이 경찰들 모두가 가길 원하는 요직도 거부하고 대공수사에서만 있었던 이유도 그래서라고. * 요즘도 종종 예능 자막드립이나 방송인들의 애드립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희대의 망언의 시초이다. == 대중매체에서 ==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는 배우 강철이 분했다. 오타인지 실제 박처원의 항의 때문인지 몰라도 계속 박처언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1987(영화)|1987]]에서는 [[김윤석]]이 박처원 역을 맡았는데 스틸컷이나 캐릭터 컷을 보면 싱크로율이 상당하다.[* 김윤석은 박처원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머리를 M자로 올리고 마우스피스와 옷 안에 보형물을 착용했는데 이 때문에 풍채가 상당히 커보인다. 박처원 역시 상당한 거구였음을 감안하면 훌륭한 고증인 셈. 이외에도 평안도 사투리를 쓰거나 공산주의자에게 일가족이 학살당했다는 설정을 부과하여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