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생년 미상]][[분류:1929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2><tablealign=right><tablewidth=410><tablebordercolor=#0047a0><tablebgcolor=#fff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박창식}}}[br]朴昌植'''}}}}}} || ||<|2><width=80><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생년 미상 || ||출생지 미상 || ||<|2><color=#fff> '''사망''' ||[[1929년]] [[5월]] || ||[[낭림산]] || ||<color=#fff> '''이명''' ||김강(金剛) ||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창식은 1925년 참의부원으로서 김정수 등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진입한 뒤, 그해 6월 초순 초산군 초산면 직동에서 김수명(金壽命)·송시옥(宋時玉)·김수업(金守業)·임유방(林有芳) 등과 함께 독립군을 밀고하여 많은 동지를 살해하게 한 밀정 김병익(金炳益)을 처단했다. 이후 참의부 제5중대장을 맡은 그는 1927년 참의부, 신민부, 정의부 통합 문제를 놓고 군민의회가 구성되자, 군무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지청천]], [[김좌진]] 등과 함께 활약했다. 1929년 5월 대한혁명군 대원으로서 국내에 잠입하여 [[낭림산]]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했으나 일본 경찰과 교전하던 중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박창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