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瓚熙 1897년 1월 29일 ~ 1972년 03월 02일 [[대한민국]]의 전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7년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도]] [[와세다대학]] 정경학과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고향에서 3.1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6개월의 옥고를 겪었다. 석방된 후 다시 도쿄도로 돌아가 와세다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도쿄도 유학생 조직인 학우회에서 [[백관수]], [[김도연(1894)|김도연]] 등과 항일운동을 하였다. 1925년부터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였다. [[1936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 말소사건|일장기를 말살하여 게재한 사건]]으로 동아일보가 정간 처분되자 퇴사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대한민국 참의원|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분류:진천군 출신 인물]][[분류:1897년 출생]][[분류:1972년 사망]][[분류:초대 참의원의원]][[분류:민주당(1955년) 국회의원]][[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와세다대학 출신]][[분류:기자]][[분류:기자 출신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