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군인 출신 정치인]][[분류:1930년 출생]][[분류:1985년 사망]][[분류:마산합포구 출신 인물]][[분류:밀양 박씨]][[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통령경호실장]][[분류:박정희 정부/인사]][[분류:간암으로 죽은 인물]]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동명이인, rd1=박종규(동명이인))] [include(틀:역대 대통령경호처장)] ||<-2><tablebordercolor=#012060><tablebgcolor=#ffffff,#1f2023><tablealign=right><tablewidth=42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12060 0%, #012060 20%, #012060 80%, #012060)" '''[[대통령경호실장|{{{#ffffff 제2대 대통령경호실장}}}]][br]{{{#ffffff {{{+1 박종규}}}[br]朴鐘圭 | Park Jong Gyu}}}'''}}}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박종규 경호실장.png|width=100%]]}}} || ||<width=100><|2><colbgcolor=#012060><colcolor=#FFFFFF> '''출생''' ||<(> [[1930년]] [[5월 28일]] || ||<(> [[경상남도]] [[창원시]] || || '''사망''' ||[[1985년]] [[12월 3일]] (55세) || || '''본관''' ||[[밀양 박씨]]|| || '''경력''' ||제25회 대한체육회 KOC위원장 제25회 대한체육회 회장 10대 국회의원 1964.5~1974.8 제2대 [[대통령경호실장]]|| || '''가족''' ||슬하 2남|| [목차] == 개요 == 朴鐘圭(1930년 5월 28일~1985년 12월 3일)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체육행정가, 교육인[* [[경남대학교]] 총장], [[대통령경호처장|청와대 경호실장]],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지냈다. 본관은 [[밀양 박씨|밀양]]. == 생애 == 1930년 [[경상남도]] 창원군 구산면[* 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일본]]에 건너가 [[교토시]]에서 성장하였다. 1947년 국방경비대에 입대해 하사관으로 복무 중 육군종합행정학교 제5기로 입교해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파일:/image/001/2011/05/15/PYH2011051507040001300_P2.jpg|width=500]] 1961년 5월 18일,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5.16 군사정변 지지 시위를 지켜보는 정변의 주도 세력. 왼쪽부터 [[박정희]] 소장, 박종규 소령, [[이낙선]] 소령, [[차지철]] 대위. 1961년 [[5.16 군사정변]]의 핵심 요원으로 참가하여 [[박정희]]의 경호, [[공수부대|공수특전단]] 출동, [[국무총리]] [[장면]] 체포 등의 임무를 담당하였으며 반도[[호텔]] 장면 집무실로 쳐들어왔을 때 걸려온 [[CIA]] 한국지부장 드 실바의 전화를 받고 5.16 군사정변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미국]]측을 설득시키려 하기도 하였다.[* [[영어]]가 유창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5.16 군사정변 후 박정희의 [[경호]] 책임자로 발탁되었고 [[국가재건최고회의]] 발족과 동시에 경호대장이 되었다가 1964년에는 [[대통령경호처장|대통령경호실장]]으로 [[승진]]했다. 대통령경호실장으로 있으면서 [[전두환]], [[노태우]] 등의 [[하나회]]를 후원했으며 경호실장으로 있으면서 암살사연구(1971)와 그 속편(1973)을 집필하였다.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10809004625c000c010-001.jpg]] 박정희 대통령(왼쪽)과 함께. 1973년 12월 자신과 [[권력]] 다툼을 하던 [[이후락]] [[국가정보원장|중앙정보부장]]이 [[윤필용 사건]]과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실각하자 [[2인자]] 노릇을 하였다. 이 때 이후락을 몰아내고 자신이 중앙정보부장이 되기 위해 윤필용 사건을 크게 키웠다는 설이 있다.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육영수 저격 사건]]으로 인하여 경호실장에서 물러났다. 자신의 휘하에 있던 경호원이 [[문세광]]과의 총격전을 벌이다가 실수로 합창단원인 장봉화 양[* 당시 [[성동여자실업고등학교]] 2학년]에게 총을 쏴 사살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했으며 박종규는 '피스톨 박'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권총]]을 떨어뜨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대응을 못해 더 까였다. [[파일:u4VoBh2.png]] [[파일:/image/108/2005/02/11/2005021119402128109_1.jpg]] 당시 송출된 [[방송]] 화면 캡쳐 장면.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박종규 경호실장이고 왼쪽 하단의 검은 형체가 [[문세광]]이다. 1978년 12월에는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마산시-진해시-창원군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1979년 10월 박정희가 [[김영삼]]을 구속하려 하자 [[지역구]] 민심 때문에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같은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신민당(1967년)|신민당]]의 [[황낙주]]와 자주 접촉하였다. 1980년 5월 [[신군부]]에 의해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조사를 받고 [[재산]]을 헌납해야 했다. 이후 죽기 전까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지내다가 1985년 12월 향년 55세로 [[사망]]하였는데 사인은 [[간암]]. 그러나 [[노스롭 스캔들]]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재산 헌납 후에도 다른 이의 명의로 이미 많은 재산과 [[회사]]를 소유하고 있던터라 정재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것은 물론 전두환에게도 접근 가능했다.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 이 점이 묘사되었는데 본인이 헌납 대상 명단에 포함된걸 이미 알고 대놓고 전두환에게 '날 밟고 가시오'라고 자폭해준다. == 여담 == * [[사격]]을 무척 좋아했으며 별명이 "피스톨 박"이었다. 1970년부터 1985년 사망할 때까지 대한사격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1978년 국제 사격 선수권 대회를 유치했는데 [[한국]]이 최초로 개최한 세계구급 [[스포츠]] 대회이고 이 대회를 위해서 [[태릉(문정왕후)|태릉]] 국제사격장을 만들었다.[* 애당초 태릉이 어떤 곳인지 생각해보자. [[문화재]]인 [[왕릉]] 옆에 사격장을 짓는다는 자체가 요즘 시대라면 택도 없는 얘기다. 이게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 교육의 악영향으로 [[조선]] 왕조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널리 퍼져 있었데다 [[유교]] 사상에 대한 반감 또한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IOC 위원과 대한사격연맹 회장으로 당시 국제 스포츠계에서 말빨이 통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 [[김운용]]은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나서 국내외에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1981년 [[1988년 서울 올림픽|서울 올림픽]] 유치에 막후에서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별명이 붙은 까닭이 좀 지저분한 것이, 그가 [[과잉충성]]때문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총]]을 겨누면서 [[안하무인]]으로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전라북도]] 현지 시찰을 갔을 때 [[이춘성]] 전북도지사[* 1923~1984. 후일 [[시에라리온]]/[[뉴질랜드]] 대사, [[문공부]]차관 직을 역임했다.]가 박정희에게 담뱃불을 붙였는데 [[라이터를 켜라|라이터가 고물이었는지 불이 높게 치솟아 박정희가 흠칫 놀라고 말았다.]] 박정희가 다치지도 않았고 큰 소동이 없었는데 박종규는 박정희가 안보는 틈을 타서 전북도지사를 골목으로 데려가서 때렸다.(...) 나중에 이춘성 지사가 박정희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 했는데 박정희는 그 말을 듣고 "임자 나한테 몇대 맞은 셈 치세."라고 달래서 유야무야되었다. 물론 이 일이 있은 후 박종규에게 이딴 식으로 할거면 때려 치우라고 질책하기도 했다. * 하지만 사격을 좋아하는 것 치고 사격 솜씨는 매우 형편 없었다.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당시 범인인 [[문세광]]과 총격전을 벌였는데 박종규가 쏜 총알 중 1발이 아무 상관없는 합창단원 장봉화 양을 사살했다. * 박정희가 시찰 중에 대구사범 출신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는 무의식적으로 "야 박정희 오랜만이다!"라고 했으며 박정희도 반갑다고 [[인사]]했다. 둘이 헤어진 뒤에 박종규가 손을 써서 그 사람을 직장에서 [[해고]]되게 만들었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박정희를 다시 만나서 "아무리 권력자라지만 명색이 우리 둘이 친구 사이인데 반말 한번 했다고 이럴 수가 있느냐?"라고 항의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결국 박정희는 친구를 직장에 복직시키고 박종규를 불러다가 일을 이따위로 할 수가 있느냐고 질책했지만[* 사실 박종규가 사람 팰 때마다 질책했다.] 고쳐지지 않았다. * 자기 부하한테도 그런 폭행은 얄짤없었던 모양인지 [[채명신]] 장군은 본인의 회고록인 "[[베트남 전쟁]]과 나"에서 밝히기를 [[베트남]]에서 돌아온 후 [[대구광역시|대구]] 2군사령부에 사령관으로 재직할 당시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이 대구에 지방 순시를 나오자 채명신 [[장군]]은 대통령의 마중을 나갔다. 이 때 경호원이 [[경상북도]] 경찰국장인 서재근 [[경무관]]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던 것을 보고 대통령과 경호실장이 있는 자리에서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자 즉시 경호원을 반쯤 두들겨패고 다시 자리에 합석했다고 한다. * 박종규는 [[과잉충성]]으로도 유명했는데 대표적인 예로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로 [[영남대학교]] 근처를 지나가면서 "여기선 대학이 안보이네"라고 한마디 하자 즉시 거대한 탑[* 넓디넓은 영남대학교 [[캠퍼스]] 가운데 유난히 멀리서 봐도 우뚝 솟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건물]]이 영남대 중앙[[도서관]]이다. 3~5층 정도의 고만고만한 건물 중에서 유독 22층이라는 초고층을 자랑하는데 2005년에 1번 리노베이션을 하여 현재는 당시 세워진 건물 그대로는 아니다.]을 세워서 그곳을 지날 때마다 영남대학교가 보이게 했다고 한다. * [[육영수]]와는 영 좋지 못한 사이였다. 경호처에서 박정희의 술 시중 돕는 여성들을 섭외하는 이른바 채홍사 역할을 할때마다 육영수는 박종규를 불러 "각하를 망칠 작정인가"라며 야단을 쳤다고 한다. 육영수의 호출이 떨어질 때마다 박종규는 부하 직원들에게 "도살장 끌려간다"며 푸념을 했다고 한다. * 박정희가 [[경상남도]]의 [[저도#s-1|저도]]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던 도중 낮에는 저도에 가서 쉬다가 저녁에 [[진해시|진해]]해군공관으로 돌아오고는 하였다. 며칠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대통령 일행이 이동을 하게 되니까 자연히 [[해군]]의 경호가 따르는 등 여러 사람들이 수고하는 것을 보고 저도에 위치한 목조 주택을 수리해서 그곳에서 잠을 자는게 좋겠다고 지시를 내리자 [[정주영]]과 함께 목조 주택을 석조 주택으로 둔갑시킨 전력도 있어 다음 해에 온 박정희가 노발대발하기도 했다.[* 이 건물이 [[대한민국 대통령]] 휴양지인 [[청해대]]이다.] * [[김종필]] 증언록에 따르면 [[술]]에 만취하면 [[청와대]] 본관 앞에서 박정희 나오라며 소리를 지르고는 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이튿날 가볍게 꾸짖었다고 한다. --보복, 명령불이행, 하극상 안짤린게 용하다-- * 박종규가 사용하던 권총이 현재 [[http://shootingmaster.co.kr/arms/03.htm?ptype=view&idx=5080&page=1&code=gun_02|목동 사격장에 있다.]][* 사격장과 박종규의 인연은 또 있는데 사격장의 운영자인 [[박종길(1946)|박종길]](국가대표 사격 선수 출신,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박종규가 발탁해 국가대표가 되었던 인물이기 때문. 박종길 씨는 '리틀 피스톨 박'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 의외일 수 있겠지만 학구파적인 면모가 있었는데 하사관 시절부터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영어]], [[독어]], [[불어]]에 능통하였고 죽기 몇 년 전에도 [[러시아어]]와 [[히브리어]]를 [[공부]] 중이었다고 한다. * [[재일교포]] [[야쿠자]]인 [[정건영]]과 친분이 깊어 경호실장 권력을 앞세워서 사업적인 지원을 많이 해주었는데 그 때문에 [[외환은행]] [[도쿄시|도쿄]]지점이 무너질 뻔 한 적도 있다. * [[동양고속]]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인물인데 동양고속 [[주식]]을 갖고 있었다. [[노스롭 스캔들]]에 연관된 [[기업]] 중에 동양고속이 있었으며 동양고속의 실 소유주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 정도였다.[* 노스롭 스캔들 당시 동양고속 사장 [[이민하]]는 박종규의 처남이었다.] * 김영삼의 [[사돈]]이었던 김웅세 [[롯데월드]] 사장은 원래 철도청 [[공무원]]이었는데 박종규가 청와대 경호실 직원 [[아파트]]를 짓기 위해 철도청 소유 [[토지]]를 헐값에 넘길 것을 요구했으나 담당 공무원이었던 김웅세가 거부를 하자 전화를 걸어 쌍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김웅세를 소신있는 공무원이라고 높이 평가했는지 이런저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 미디어에서 == [[파일:ParkJK-4.jpg]] * MBC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 - [[박근형]][* 이후 제4공화국에서 [[김재규]]를 연기하였다.] * KBS 다큐멘터리 극장, MBC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 MBC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 - [[김봉근(배우)|김봉근]][* 제일 비슷했었고 비슷한 문제아 [[캐릭터]]로 나온 차지철과 투 샷이 잡히면 시너지가 [[대박]]이었다.] * SBS [[코리아게이트(드라마)|코리아게이트]] - [[정성모]] * MBC [[영웅시대]] - [[이규복]] [[분류:제10대 국회의원]][[분류:민주공화당(1963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