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 관련 인물(KBO)]] |||| 박정일(朴正一) || || 국적 || [[일본]] || || 포지션 || [[유격수]] || || 투타 || 우투우타 || || 소속팀 || 크라운맥주 야구단(1964~1965) [br] 한일은행 야구단(1966~1967) || ||<-2><tablealign=center> '''한국시리즈 우승 코치''' || ||<bgcolor=#f01e23> '''[[1986년 한국시리즈|{{{#ffffff 1986}}}]]''' ||<bgcolor=#f01e23> '''[[1987년 한국시리즈|{{{#ffffff 1987}}}]]''' || 한국의 전 야구 선수로 주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재일 한국-조선인|재일동포]] 출신이다. 1963년 [[전국체전]]에 재일동포팀으로 참가하여 재일동포팀의 2년 연속 우승에 큰 기여를 하였고, 이어 동국대학교 야구부에 입단하게 된다. 이 때의 활약으로 인하여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된 것이 한국 국가 대표팀 경력의 시작이었다.[* 이 때 재일동포 출신으로 국가대표에 참가한 인물은 4명으로 [[신용균]], 서정리, 배수찬, 박정일이었다.] 이 대회에서 신용균과 함께 두각을 나타내어 다음 해에 은퇴하게 된 [[김진영(야구)|김진영]]을 잇는 국가대표 유격수의 계보를 잇게 된다. [[실업야구]]에서도 스카웃 제의가 들어와 동국대를 1년만에 자퇴하고 1964년 크라운맥주 야구단의 창단멤버가 된다. 당시 크라운맥주 야구단은 적극적인 물량공세로 실업야구를 평정했다. 이 때의 주축투수가 국대 투톱이었던 [[신용균]]과 [[김영덕]]에 4번타자가 당시 국대 1루수가 [[김응룡]]이었던 흠좀무한 팀이었다. 박정일은 이 때 유격수로 활약하면서도 클린업 트리오에도 들어가기도 하는 등 [[5툴 플레이어]]급의 활약을 보인다. 적극적인 도루도 선보였으며, 사사구도 많은 편이었던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화려한 선수였다. 1964년 금융팀과 실업팀의 대결로 벌어진 한국 야구 사상 최초의 올스타전에서도 실업팀의 주전 유격수로 실업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금융팀은 이후 6년 내리 실업팀에게 참패한다.] 다만, 유격수 수비에 있어서는 다음 국가대표 유격수가 되는 [[하일(야구선수)|하일]]에 비교해서 떨어지는 편으로 하일이 안정감에 있어서는 더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정일이 국가대표 유격수로 활약한 것은 1~2년에 불과하였으며, 이후에는 하일이 고정적인 유격수로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1965년 시즌 이후 1966년 크라운맥주는 한일은행 야구단에 인수되었고, 박정일도 한일은행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1967년 한일은행에서의 활약을 마지막으로 [[신용균]]과 함께 야구계에서 은퇴한 뒤, 일본으로 돌아갔다. 실제로 상당히 짧은 기간의 한국 무대 활약이었으나, 신용균, 김영덕과 함께 일본 야구와의 격차를 절감하게 한 선수들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후 실업팀들이 재일교포 섭외에 열올리더라며 기자들이 분개할 정도였으니 그 정도를 알 수 있다. 1980년대 중반에 잠시 [[해태 타이거즈]] 코치를 지내기도 했지만 그 뒤의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박정일, version=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