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밀양 박씨]][[분류:달서구 출신 인물]][[분류:1881년 출생]][[분류:1950년 사망]][[분류:건국포장]] || 성명 ||<(> 박재근(朴再根) || || 이명 ||<(> 박재근(朴在根) || || 본관 ||<(> [[밀양 박씨]] || || 생몰 ||<(> [[1881년]] [[4월 15일]] ~ [[1950년]] [[9월 14일]] || || [[출생지]] ||<(> 경상도 대구도호부 월배면 도원동[br](현 [[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대구)|도원동]])[*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김용판]] 현 국회의원도 이 마을 출신이다.] || || 추서 ||<(> 건국포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재근은 1881년 4월 15일 경상도 대구도호부 월배면(현 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김복한]]을 중심으로 한 [[충청도]] 유림과 [[김창숙]]·[[곽종석]] 등의 영남유림 137명이 대표가 되어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영남유림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하였다. 이들은 '파리장서'를 통해 일제가 자행한 [[명성황후]]·[[고종황제]]의 시해와 한국 주권의 찬탈과정을 폭로하면서 한국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1919년 4월 12일 경상북도 성주군의 만세운동과 관련하여 당시 독립청원서 서명자의 한 사람이었던 [[송회근]]이 붙잡히는 바람에 발각되었다. 이 때문에 박재근도 일경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다만, 일제는 이들 유림이 한국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었으므로 민족적 감정이 더욱 번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 이후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9월 14일 별세하였다. 200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