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일제강점기의 천도교 신자]][[분류:평원군 출신 인물]][[분류:1883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건국훈장 애족장]] || 성명 ||박인송(朴寅松) || || 생몰 ||[[1883년]] ~ ? || || [[출생지]] ||[[평안남도]] [[평원군(평안남도)|평원군]] 동송면 청룡리 || || 사망지 ||미상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인송은 1883년생이며 평안남도 평원군 동송면 청룡리 출신이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18일 김억만, 한준겸, [[신언준]] 등과 함께 오산학교 천도교인 학생대표로서 시위 행진에 앞장섰다. 그는 주민 160여 명과 함께 각 지역을 돌면서 계속적으로 시위운동을 벌이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6월 1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상소했으나 8월 1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때 그는 재판장에게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조선민족의 당당한 의무로서 조선독립과 동족을 보안하기 위해 만세를 호창한 것으로 그 어찌 죄가 되고 그것을 죄라 하는 법이 있을 것인가." 이후 그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박인송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