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함양 박씨]][[분류:영암군 출신 인물]][[분류:1907년 출생]][[분류:1958년 사망]][[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동명이인인 인터넷 방송인, rd1=북한남자)] || 성명 ||박유성(朴裕成) || || 이명 ||박진상(朴珍相) || || 본관 ||[[함양 박씨]] || || 생몰 ||[[1907년]] [[6월 30일]] ~ [[1958년]] [[11월 30일]] || || [[출생지]] ||[[전라남도]] [[영암군]] 북일시면 선암동[br](현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함양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박수봉(1909)|박수봉]]도 이 마을 출신이다.] || || 사망지 ||[[전라남도]] [[영광군]]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대통령표창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유성은 1907년 6월 30일 전라남도 영암군 북일시면 선암동(현 덕진면 운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2년 3월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서 김판권(金判權)·최판옥(崔判玉) 등이 주도한 소작쟁의에 참여해 지주들의 소작권 이전 횡포에 항거하여 그 방지 방법에 관한 협의를 하였다. 이어 6월에는 박유성을 비롯한 청년회원 수십 명이 모여 덕진면 운암리와 백계리(栢溪里) 방면에서 구(舊)소작인의 집에 돌입하여 소작권 이전의 부당함을 꾸짖고 동인들을 구타 응징한 후 소작쟁의 만세를 고창하고 노동가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하는 등 기세를 올렸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33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8월을 받고 공소하여 1934년 3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 및 벌금 20원을 받기까지 미결기간 동안 1년 9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영광군으로 이주하여 조용히 지내다 1958년 11월 3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박유성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5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