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동남구 출신 인물]][[분류:1869년 출생]][[분류:1919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박유복(朴有福) || || 생몰 ||[[1869년]] [[9월 10일]] ~ [[1919년]] [[4월 1일]] || || [[출생지]] ||[[충청도]] 목천현 수신면 복다회리[br](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송정리) || || 사망지 ||[[충청남도]] [[천안시|천안군]] 갈전면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유복은 1869년 9월 10일 충청도 목천현 수신면 복다회리(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송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일 홍일선(洪鎰善)·[[김교선]]·한동규(韓東奎)·[[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192|이백하]](李柏夏), [[이순구]] 등이 주도한 갈전면(현 [[병천면]]) 아우내 장날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 그는 이날 오후 1시 아우내 장터에서 [[조인원(1864)|조인원]]·[[유관순]] 등이 주동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한 시위군중 3,000여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시위군중이 헌병주재소를 향하여 접근하자, 이에 놀란 일본 경찰이 주재소에서 기총을 난사하고, 또 [[천안시|천안]]에서 불러들인 일본 헌병과 수비대들도 평화적인 시위대열에 무자비하게 총검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탄압하니, [[유관순]]의 부모를 비롯하여 19명이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고 30여명이 부상당했다. 이때 박유복 역시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박유복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